김범, 〈콩고로부터 온 신문과 함께 만들어진 컵 속 갠지스 강의 물〉, 2016 © 김범

덴마크 오르후스의 쿤스탈 오르후스(Kunsthal Aarhus)에서 개최된 《Water from Ganges River in the Cup Made with Newspaper from Congo》는 한국 작가 김범의 작업 세계와 그의 예술적 방법론을 폭넓게 조망하는 전시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범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관점의 미세한 변화가 사물의 의미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예컨대 개의 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진드기의 시선처럼, 사소하지만 급진적인 지각의 전환을 통해 그는 ‘본다’는 행위와 ‘인식한다’는 행위 사이의 관계를 질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의 작업은 이미지와 상상, 사실과 허구, 시각적 경험과 촉각적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복합적인 구조를 형성해 왔다.

김범의 작업에는 종종 유머와 아이러니가 결합된 접근이 등장한다. 작품의 제목과 언어는 작업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작동하며, 그의 섬세한 이미지와 텍스트에는 언어유희와 역설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는 일상과 사회 속에 내재한 부조리한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인 《Water from Ganges River in the Cup Made with Newspaper from Congo》 역시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서로 다른 장소와 사물들이 기묘하게 결합된 이 제목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이는 그대로의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갤러리 2와 3에서는 김범이 2016–2017년 싱가포르 STPI Creative Workshop & Gallery 레지던시 기간 동안 제작한 작업들이 주로 소개된다. 전시의 중심에는 조각적 형태의 검은 오브제들이 테이블 위에 배열된 〈종이로 포장된 것〉(2016)이 놓인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추상 조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일부 형상이 익숙한 사물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오브제들은 화장실 세정제, 주방 세제, 인스턴트 커피, 초콜릿 바 등 가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생활용품을 종이 펄프로 감싼 것으로, 평범한 사물들이 추상적 형식 속에서 새로운 시각적 관심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종이로 포장된 것〉 주변에 배치된 석판화 역시 추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김범은 이 작업들에서 언어를 통해 추상 이미지와 서사 사이의 간극을 연결한다. 한 작품은 전시의 제목이 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작품은 〈이집트의 공사 현장에서 암염을 맛보는 낙타의 혀〉(2016)이다. 이처럼 제목이 만들어내는 짧은 서사는 관람자가 추상적 이미지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유도한다.

쿤스탈 오르후스의 로툰다 공간에서는 지속적인 연작인 '청사진 및 조감도' 시리즈가 소개된다. 세밀하게 그려진 건축 도면 형태의 청사진 작업들은 〈공중화장실 평면도〉(2016)나 〈경비원들을 위한 주거용 감시탑 복합단지〉(2016)와 같은 가상의 건축 구조를 제시한다. 이러한 드로잉은 사회 제도와 조직 속에서 과도하게 강조되는 질서와 구조에 대한 욕망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지하층의 갤러리 4와 5에서는 1990년대에 제작된 회화와 여러 영상 작업이 함께 설치된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07)에서는 부조리가 자연스러운 질서로 전환된다. 사물과 장소, 존재가 모두 고유한 영적 본질을 지닌다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은 김범의 작업 전반에 나타나지만, 이 작품에서는 바위가 한국 시를 배우는 설정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 다른 영상 작업 〈“노란 비명” 그리기〉(2012)에서는 회화의 붓질이 청각적 경험으로 전환된다. 화가의 목소리와 결합된 붓질은 공포나 슬픔의 비명과 같은 감정을 담은 물리적 행위로 나타나며, 이러한 작업들은 다다와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아방가르드 전통과도 연결된다.

김범은 우리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일상 속의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우리의 지각 체계는 흔들릴 수 있으며, 사물과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의미로 머물지 않는다.

덴마크와 한국의 외교 관계 수립 60주년을 기념하여 2019년은 양국의 공식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되었다. 쿤스탈 오르후스는 덴마크에서 열리는 문화의 해 공식 개막 행사를 맡았으며, 개막식에는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자 총감독인 선정, 덴마크 문화부 장관 메테 보크(Mette Bock), 오르후스 시장 야콥 분스고르(Jacob Bundsgaard), 그리고 양국 대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