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모눈 공책〉, 2000, 모눈종이 패드, 옵셋 인쇄, 26페이지, 단면 인쇄, 접착 제본, 표지 디자인: 아힘 라이허트, 29.7 x 21 cm © 양혜규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은 탐구의 열정적인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미술의 역사가 리얼리즘이라는 문제의식에 의해 특징지어졌다면, 오늘날만큼 예술이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시기는 없었던 듯하다. 1990년대는 예술과 삶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 등장한 시기였다. 오늘날의 작가는 세계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더 나아가 그 세계를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한 방식을 모색한다.

동시대 작가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펠릭스 가타리의 ‘에코소피(écosophy)’ 개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환경, 사회적 관계, 인간 주체성 사이의 윤리적·정치적 연결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점점 더 생산의 획일성과 복잡한 상호작용이라는 두 축 위에서 구조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나아가 현실 자체를 재구성하는 데 있지 않을까?

가타리에 따르면 예술은 이러한 가치 모델을 가능하게 하며, 예술가는 이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존재론적 영역을 넘어 현실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양혜규의 작업은 “현대 사회의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형식을 탐구”하고, “일상성으로 인해 표현 가능성을 상실한 사실, 사물, 상황, 구조를 드러내며 재평가”함으로써, 오늘날 후기 산업사회에서 규범과 가치의 획일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의 저항의 축은 〈Wall Painting〉에서 시작된다. 이 작업에서 넓은 띠와 긴 선들은 수평에서 단 1도 기울어져 있다. 가까이에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차이지만, 바로 이 1도의 미세한 어긋남 속에서 양혜규는 잊혀진 사물의 단편들, 버려진 삶의 흔적들, 그리고 획일성과 체계적 규범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가 외면해온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예리한 감각을 바탕으로 작가는 현대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시스템을 재검토하고, 그 속에서 간과되어온 삶의 파편들을 길어 올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모눈 공책〉은 십진법 체계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1×1mm로 구성된 모눈종이에 적용되는 수학적 질서를 변형하여, 이를 1×2의 새로운 구조로 전환한 작업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모눈종이처럼 보이지만, 익숙한 단위와 측정 방식을 대체함으로써 정밀성과 규범을 상징하던 체계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사용자의 자율성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전환은 자본주의의 획일성에 대한 저항을 드러내는 동시에, 존재론적 영역의 확장, 목적의 재구성, 그리고 새로운 프로토타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눈 공책〉과 〈Wall Painting〉은 모두 ‘1도’의 차이를 통해 생성된 작업으로, 집단적 이성, 일반화된 일상성, 그리고 우리를 규정하는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Wall Painting〉의 ‘1도 기울기’를 바라볼 때, 그 친숙하고 단순한 조형 언어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가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미학에서 좋아하는 점은, 그것에 스며든 정치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규칙들의 집합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행위는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혜규의 ‘1도 기울기’가 지니는 미학적 의미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비가시적’이라는 데 있다. 바로 이 비가시성은 작가가 현실을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고, 동시에 문화적·경제적·정치적·사회적 시스템을 분석하는 기준으로 삼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으로 작동한다.
 
양혜규는 사진, 설치, 드로잉, 텍스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절제된 제스처를 통해 ‘1도의 미학’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 자신을 작업 안에 개입시키며, 역사적·문화적·경제적·사회적 맥락을 분석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의 일부를 최소한으로 변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최대한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소박한 개입을 실천하는 일이다.

2001년 티라나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무명 학생 작가들의 흔적〉은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중학교 사회·기술 교과서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책의 페이지 곳곳에 남겨진 익명의 학생들의 필기와 드로잉—선, 괄호, 원, 화살표, 별표와 같은 낙서들—에 주목했다. 이는 반복적인 교과 학습의 흔적으로서 남겨진 절대적인 자취들이다. 이러한 흔적은 작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삶의 어느 시점에 남겼던 것이지만, 그것에 지속적인 중요성이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교과서에 인쇄된 텍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개입을 가하면서, 이 흔적들은 점차 드로잉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이 행위는 동시에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체계를 지워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미세한 제스처를 통해, 익명의 학생들이 남긴 일시적 행위는 익명의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드로잉으로 전환된다.
 
이 작업은 관람자의 감정과 기억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문화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지점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기념비성을 역사적 정신이나 사건을 기리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익명의 학생들이 남긴 학습의 흔적은 결코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연약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작업은, 단순히 잊혀질 운명에 놓인 학생들의 흔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을 발산하는 하나의 기념비로 읽힌다. 비록 그것이 정치화된 교육 제도 속에서 학생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에 대한 아쉬움과 성취를 향한 에너지를 암시하는 일상의 미세한 흔적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그것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공부’라는 행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양혜규는 교과서의 내용을 지워버리는 ‘삭제’의 행위와, 익명의 작가들이 남긴 드로잉을 구제하는 ‘기념’의 행위를 병치함으로써, 모순적이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적·역사적·문화적 상황뿐 아니라 오늘날 기념비와 기념비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낸다. 결국 〈무명 학생 작가들의 흔적〉은 가장 비기념비적인 형식과 방법이야말로, 다른 어떤 기념비 못지않게 웅장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양혜규의 작업에서는 과거(기억)와 현재, 사회적·문화적 집합성과 개인 사이의 대화적 관계가, 사소하고 미세한 가능성들을 차용하고 병치하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먼지 동전〉에서 작가는 플렉시글라스 아래 일련의 진열을 구성하고, 그 안에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동전들을 작은 더미로 쌓아 놓는다. 이 과정에서 동전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 동시에, 여행 후 남겨져 종종 잊히곤 했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거나 은행에서 환전될 때에야 재발견되는 잔돈이라는 문화적·경제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화폐적 가치는 재검토되고 유보된다.

베를린 아트 포럼의 VIP 라운지에서 선보였던 〈VIP 학생회〉는 다양한 색과 형태의 의자들—작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을 서로 다른 가정에서 빌려와 구성한 작업이다. 이 ‘차용’이라는 행위는 각각의 의자에 일종의 초월적 성격을 부여한다. 작가는 빌려온 의자들을 하나의 공간에 설치하는 단순한 제스처를 통해 개인과 공공을 병치시키고, 공간의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변화시킨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가져온 의자들이 놓이는 순간, 그 공간은 개인과 공공이 교차하는 장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원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아트 포럼 베를린의 VIP 라운지는 기존의 성격을 상실하고, 보다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먼지 동전〉와 〈VIP 학생회〉은 현실에서는 공존하기 어려운 다양한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요소들을 병치함으로써, 예술과 삶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작업이다.
 
〈구상적으로 넘어지기〉는 작가가 거리에서 버려진 사물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이 이미지들은 일반적인 도시 풍경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고의 비극적 장면도 아닌 삶의 단편들을 보여준다. 확대된 사진에 나타나는 망점은 신문 사진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건으로서의 중요성이 미미하기 때문에 실제로 신문에 실릴 만한 대상은 아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거대한 비극과 비교하면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대형 화면과 흑백의 대비를 통해 극적이고 표현적이며 동시에 모순적인 리듬을 지닌다.

이는 우리가 종종 외면해온 인간 조건의 어두운 구석을 잠시나마 드러내는 듯하다.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거리에서 포착된 이 삶의 파편들을 통해 작가는 비극의 흔적, 고통의 숨결, 그리고 불안한 상태를 전달한다. 그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비극들을 비춘다. 현실의 사소한 단편들을 재현한 사진 연작 〈구상적으로 넘어지기〉는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소외되고 고립되며 버려진 인간적 가치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변형의 에너지로 대체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