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Eveningness》, 2023.01.18 -2023.02.25, 페로탕 도쿄
2023.01.16
조안나 로보탐 | 탬파 미술관 현대 및 동시대미술 큐레이터
Installation view ©Perrotin
페로탕
도쿄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박가희의 작품을 선보이며, 그녀의 신작 회화 및 드로잉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활동하는 박가희는 서울에서의 성장 과정과 미국에서 처음 마주한 삶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는다. 개인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그녀의 회화는 일상의 사물과 몸짓을 통해 친밀함과 욕망을
탐구하는 도발적인 장면들을 그려낸다. 《Eveningness》는
페로탕 갤러리와 박가희가 함께하는 네 번째 개인전이다.

GaHee
Park, Picture with Fruit, Flower and Flies, 2022. Oil on
canvas. 96.5 x 81.3 cm ©Perrotin
박가희의
화면에서는 서로 얽혀 있거나 고독한 순간을 포착한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지만, 그녀의 작업은 정물화라는
장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녀는 감각적인 신체 표현과 기묘한 초상을 통해 관객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지만, 작품 속 주변 요소들이 각 장면의 내러티브와 맥락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Picture with Fruit, Flower and
Flies에서는 벽에 걸린 한 이미지가 근육질의 상반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물의
어깨 위에는 헐겁게 걸친 흰 수건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팔꿈치 램프와 활짝 핀 장미가 놓여 있고, 그
주변을 파리가 맴돈다. 몸을 둘러싼 램프의 수직적 형태와 꽃의 곡선적 실루엣은 은근하게 욕망을 암시한다. 멜론 조각과 펼쳐진 잡지는 이 장면의 즉각성을 나타내며, 관객이
막 의자에 앉아 달콤한 과육과 누드 이미지를 동시에 감상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잡지 속 얼굴은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바라봄과 관찰, 그리고
GaHee
Park, Domaine de Fatigue, 2022. Oil on canvas. 63.5 x 76.2
cm ©Perrotin
Domaine
de Fatigue는 박가희의 회화에서 내재된 심리적 긴장감과 유희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다. 민트색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위에는 칵테일, 정어리
한 상자, 그리고 와인 병이 놓여 있다. 한 사람은 테이블
위에 지친 듯 고개를 떨구고 있으며, 칵테일 잔을 통해 관객과 시선을 맞춘다. 처음에는 인물이 자신의 팔 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팔은 화면 밖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의 것일 수도 있다. 익숙한 친밀감이 담긴 이 장면에서, 인물의 코가 다른 사람의 손목에 편안하게 기대어 있다. 박가희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길고 뾰족한 손톱은 감각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배의 은유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 중 다수는 시간의 흐름을 탐구한다. 박가희는 계절과 빛의 변화를 활용해 특정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특히 Domaine de Fatigue에 등장하는 와인 라벨에는 겨울비 구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작품 속 관계가 이미 지나간 것임을 암시할 수도 있다.
Still Life with Slugs에서 아침노을처럼 퍼지는 살구빛 하늘은 무언가의 시작을 연상시키며, 새벽녘에 서로 얽힌 민달팽이들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박가희의 새우 드로잉들은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담아내며 마치 영화의 연속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태양이
솟아올랐다가 바다로 가라앉는 동안, 빛과 색이 지평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상상력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