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컬렉션

피노 컬렉션에서 전시 《흐르는 대로의 세상》의 일환으로, 한국 작가 김수자가 2024년 3월 13일부터 9월 23일까지 《호흡 - 별자리》을 선보인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로툰다에서 펼쳐진 그의 설치 작품은 장엄하면서도 공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을 뒤덮은 거대한 거울은 관객이 다가갈수록 건축을 전복시키고, 그와 함께 세상의 질서마저 뒤흔든다. 건물 한가운데에서 하늘이 발아래 펼쳐지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김수자는 또한 ‘패시지’와 미술관 지하 공간의 24개 전시 케이스를 통해 자신의 대표적인 주제인 정체성, 경계, 기억, 망명, 이동성, 그리고 직조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나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지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물과 공기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김수자는 1970년대 후반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경험을 제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왔다. 서울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그는 기존 미술 교육과 기법에서 벗어나 바느질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정체성과 참여, 개인 및 집단의 기억, 그리고 세계 속에서 개인의 위치에 대한 문제를 탐구했다. 1997년,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퍼포먼스에서, 김수자는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 위에 올라탄 채 한국 전역을 열한 날 동안 여행했다. 보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천 보자기로, 탄생, 결혼, 죽음과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는데 사용된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컬렉션


"세계의 결을 꿰매는 바늘" – 김수자의 작업 세계


유목적 예술가, 그리고 그가 스스로 명명한 **"코스모폴리탄 아나키스트(cosmopolitan anarchist)"**인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익명의,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사용한다. 그의 정적인 자세와 수직적인 형태는 마치 바늘처럼 세계의 직물 사이를 꿰매며 지나간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 로툰다 바닥을 뒤덮은 거울 역시 바늘이나 그 자신의 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거울은 몸을 대신하며, 타인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거울을 통해 우리의 시선은 앞뒤로 움직이며, 우리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현실과 내면 세계를 다시 연결한다. 거울은 시선이 오고 가며 직조된 하나의 직물이다.”

김수자는 건축을 초월적인 공간으로 변형시키며, 하늘을 가둔 유리 돔이 깊은 심연으로 뒤집히는 착시를 일으켜 공간에 대한 인식과 신체의 중력 감각을 흔든다. 그는 건축을 비우고, 공간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창출한다. 동시에, 우리의 몸을 〈바늘 여인〉 속 몸과 같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축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타다오 안도가 공허함과 무한성을 탐구하는 건축 철학을 추구했던 것처럼, 김수자는 로툰다의 바닥을 거울로 덮음으로써 공간을 단순한 오브제, 설치, 혹은 이미지 이상의 존재로 전환시킨다. 그의 거울은 단순한 반사체가 아니라, 존재와 부재, 사색과 경이, 가벼움과 놀라움 사이를 오가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수아 청(François Cheng)의 말을 빌리자면, “공간은 더 이상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연결하는 호흡으로 가득 차 있다.”

김수자가 제시하는 거울은 단순한 반영의 도구를 넘어, 공간을 모으고, 전체성을 가능하게 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장치가 된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컬렉션


40년의 작업 세계를 담은 미술관 전시 케이스

이동, 경계를 넘는 행위, 그리고 깊은 유목적 감각을 지닌 작가 김수자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전시 케이스를 자신의 작업으로 채우며, 마치 오랜 여정을 마친 후 가방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는 비물질적인 존재를 탐구하며, 그것을 보이지 않는 것, 덧없는 것과 섬세하게 결합시킨다. 작가는 모래알, 아마씨, 도자기와 점토 구슬, 천 보따리, 지구색을 띤 ‘달항아리’ 등, 구(球) 형태의 오브제들을 배열하여 미니어처 세계, 즉 미시적 우주(microcosm)를 구성한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우주적 운행에 의해 다시 순환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주의 원형과 인간의 존재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는 《구(Spheres)》 3부작(1998–2004)에서 구(sphere)라는 기본 형태를 통해 인류가 물질적·상징적·우주적 환경을 창조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김수자의 점토 구는 그의 손에서 빚어진 원초적 형태로, 인류의 보편적인 우주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동한다.

각 보따리는 인간의 몸을 감싸는 피부와 같으며,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수의(壽衣)처럼 보인다. 이는 개인의 삶과 전 지구적인 시간의 흐름을 잇는 하나의 메타포이자, 아시아와 서구 문화, 일상과 예술, 개인과 보편, 과거와 현재, 지구적 삶과 우주적 시간을 연결하는 요소이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컬렉션


〈바늘여인〉과 거울의 상징성
 
지하 전시 공간에는 김수자의 대표적인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 〈바늘여인〉(1999–2000)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수자는 상하이, 델리, 도쿄, 뉴욕 등 세계 네 곳의 도심 한복판에 홀로 서 있다. 그는 카메라를 등지고 정지한 채, 도시의 소란과 마주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저항한다. 그의 정적인 몸은 마치 바늘처럼 세상의 직물 사이를 꿰매며, 세계의 균열과 틈을 잇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을 통해, 김수자는 세상이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