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비하인드, 비하인드....
구나연(미술비평)
"그렇기에 이명이 느껴질 때면 시간과 기억 같은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송세진, 〈작업〉(2023) 중에서)
생각은 언어의 형태도 아니고, 기억이 이미지의 형태인 것도 아니다. 생각과 기억의 작용은 언어나 이미지로 치환될 뿐, 뇌의 신경세포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 뒤에는 시냅스와 신경세포의 대사의 작용이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 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기억에 아파하기도, 생각에 매몰되기도 한다.
만일 괴로운 기억에 대해, 이건 나의 뇌에서 이동하는 신경물질의 정상적 결과물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통이 분비물, 슬픔은 지방, 비애가 쓸개즙이라면. 그렇지만 '나'라는 신체는 너무나 복잡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닦이지도 않는 분비물, 연소되지 않는 지방, 없으면 병이 되는 쓸개즙처럼, 고통과 슬픔과 비애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송세진의 개인전 《Behind》에서 이명이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이유도, 이것이 증상으로 나타난 이별의 고통과 슬픔이자 비애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이미지와 언어의 형태로 어른거리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지각과 다르고, 끊임없는 오류와 왜곡을 통해 몸 안에 재차 저장되며 치유되지 않은 채 불현듯 역류한다. 우리 안에서 온전히 소진될 수 없는 기억은 마치 불법 시간 여행자가 그러는 것처럼, 현재를 기억의 영토로 소환하여 조합하고 조작한다.
그래서 이명은 걷잡을 수 없이 나타나면서 과거의 기억에 대한 통증의 신호로 잔존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의 뒤편과 기억의 뒤편이 만나는 접면에서 기이한 사소설 같은 공상과학의 서사로 나타나는데, 그것이〈Work〉이다.
싱글 채널 비디오 작업인 〈Work〉는 개별적 경험에서 비롯된 어떤 징후가 오감에서 이탈된 신호인 점, 그리고 이것이 축적된 기억의 관성을 통해 발현되는 낡은 기술의 측면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다. 송세진은 그동안 무관해 보이는 통찰과 경험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영상과 유리와 같은 그의 주력 매체부터, 균사와 심리, 시선과 권력, 정체성과 미디어를 종횡하며 도출되는 새로운 교집합들이 그의 작품 안에 혼융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문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work〉는 어떤 주체가 정체성, 기억, 차원을 넘나들 때 파생되는 원심력으로 이미지와 언어의 무한한 이탈을 생성한다. 그의 서사는 현실에서의 적확한 인덱스가 불가능한 기억이라는 지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데이터 라벨러는 이미지를 지시하는데 실패하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서구, 남성, 백인을 주체로 하는 근대적 역사의 문맥으로 이동한다. 즉 과학기술적 혁신이 근대의 합리성에 기반한 낡은 진보 담론과 결탁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배 구조와 첨단 기억 장치 기술 전반의 인프라에 깊이 연루된 사실은 개인의 기억과 시공의 차원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이반과 이명 증상의 추이와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세진은 작업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Work〉(2023)는 렉처 퍼포먼스 노화된기술(2023)에서 AI를 학습하기위해 데이터셋을 분류하여 언어로 카테고리화 하는 분류자의 정치적인 개입이 들어가는 “자의적인" 방식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 중 (알게 된) 이미지와 사진, 언어, 소리의 자의적인 조합을 주인공이 이별 후 들리기 시작한 이명 빗대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