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진(b. 1984)은 개인과 사회의 경계에 주목하며, 시각문화에 기록된 젠더와 인종, 정보의 오류를 수집하고 광학기기를 활용하는 기술에 내재한 기준과 차별의 문제를 다뤄 왔다. 나아가 집단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기술적 특성과 시간의 역할을 탐구한다.
 
특히 미디어가 공간과 정치, 역사적 사건은 물론 소문과 같은 개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확산하고 연결하며 반복시키는지 살피고, 이를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통해 근미래적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이제 침대를 망가뜨려 볼까》 전시 전경(아트 스페이스 풀, 2019) © 아트 스페이스 풀

초기 작업에서 송세진은 유리를 매개로 개인과 집단의 경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탐구했다. 작가는 유리조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유리를 다루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규격화하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원심력과 호흡을 이용해 완벽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규격화의 과정이며, 유리 블로잉을 위해 2~3명이 협업하는 과정에서는 사회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석한 것이다.


송세진, ‘Inhale’ 연작, 2017-2019, 유리, 가변크기. 《이제 침대를 망가뜨려 볼까》 전시 전경(아트 스페이스 풀, 2019) © 아트 스페이스 풀

송세진의 ‘Inhale’(2017-2019) 연작은 공방의 도제식 교육이 야기하는 자기 규격화와 사회화 과정에 대한 해체를 보여준다. 협업이 필요한 블로잉 기법을 독자적으로 실행하여 만든 기물들을 탑처럼 쌓은 뒤, 다시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녹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정형화된 규격과 완성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은 다른 유리들이 수축하고 결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다양성이 충돌하고 재편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한편 제작 과정과 결과 모두 기존 공예 문법에 반하는 것으로, 작가의 개인적 저항이 담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송세진, 〈립싱크 포 유어 라이프〉, 2016, 단채널 영상, 6분 28초 © 송세진

이러한 유리 작업에서 느꼈던 개인과 집단의 충돌 문제는 이후 영상 작업의 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영상 작업 〈립싱크 포 유어 라이프〉(2016)는 집단과 개인이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가치판단이 불확실한 정치적 영역을 시각화한다.
 
대통령 탄핵 집회 이후 흩어지는 군중들 사이에서 작가는 드랙퀸 루폴의 얼굴과 작품명이자 드랙퀸 리얼리티 쇼에서 최종 탈락자를 선정하는 경기의 이름인 ‘LIP-SYNC for your life’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립싱크 퍼포먼스를 한다.


송세진, 〈립싱크 포 유어 라이프〉, 2016, 단채널 영상, 6분 28초 © 송세진

작품은 국가에 대한 집단적 저항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에서의 1인 드랙퀸 퍼포먼스와 이를 바라보는 집회 첨가자들의 모습에서 국가와 집단 그리고 개인 간의 연대와 저항, 공존과 단절 이라는 상반된 관계를 형성함과 동시에 끝나지 않은 개인의 저항을 보여준다.
 
또한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음성,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 영상은 젠더, 인종, 정파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념과 가치의 다층적인 관계성을 드러낸다.


송세진, 〈겁이 많은 항해사 게이 헤드는 어느날 우표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의 딸 마서에게 말했다〉, 2019, 단채널 영상, 4K, 8분 11초. © 송세진

이후의 영상 작업에서 송세진은 단순 퍼포먼스에서 나아가 서사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겁이 많은 항해사 게이 헤드는 어느날 우표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의 딸 마서에게 말했다〉(2019)는 미국의 마서스 비니어드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층적 서사 기반의 픽션 영상이다.
 
우표를 붙이다가 혀를 잃은 ‘마서’가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없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수화, 텍스트를 주요 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 영상은 언어와 비언어, 인간과 비인간 나아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있는 낯선 실체에 대한 인식 및 감각을 요구한다.
 
이중 구조의 형식을 기반으로 작업은 집단 간 차이와 다름을 충돌이 아닌 틈으로 은유하며, 여러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계 속 개인의 위치를 다시금 살펴보게 한다.


송세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10년 프로젝트)〉, 2021, FHD 영상, 34분 53초 © 송세진

서사에 기반한 송세진의 작업은 영상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통해 장기 프로젝트로 확장된다. 10년에 걸친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작업은 파우스트의 서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비디오 작업이다.
 
2021년 발표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10년 프로젝트)〉는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제작한 단편 작업들을 모아 장편 영화로 완성하기 위한 시도의 일부다. 영상에는 카메라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디션장에서 대본을 읽지 못하는 여성 배우, 타인의 시선에 두려움이 없으며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자 하는 채원, 감독의 지시에 따라 거울을 움직여야 하는 퍼포머가 등장한다.
 
송세진은 영상 제작 과정에서 카메라 앞과 뒤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카메라와 배우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위계의 문제를 탐구한다. 결말을 미리 정하지 않은 채 확장되는 이 프로젝트는 약 3년에 걸쳐 제작한 단편 작업들을 40여 분 분량의 중편 영상으로 편집해 선보인다.


《상리공생》 전시 전경(엘리펀트 스페이스, 2022) © 엘리펀트 스페이스

그리고 2022년 개인전 《상리공생》은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서로 다른 생물들의 관계에 영감을 받아, 개인과 사회적 기억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탐색한다. 영상과 유리 오브제를 통하여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사회와 온라인상의 거짓뉴스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질되며 상호 간에 스며드는 현상에 대해 질문한다.
 
송세진은 전시장에 설치된 영상과 유리 오브제를 통해 몸에 흔적처럼 남은 개인의 기억과 이를 조작하고 굴절시키는 출처 미상의 정보 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이로써 물질과 비물질, 경험과 비경험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다.


송세진, 〈버섯과 명상〉, 2022, 단채널 영상, 25분 58초 © 송세진

영상 〈버섯과 명상〉(2022)은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뿌려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과 버섯 균근망의 산발적 확산을 연결 짓는다.
 
두 사건의 연결망은 인터넷, 신체의 검버섯, 개인의 몸의 기억까지 포함시킨다. 영상은 겉보기에 연관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비교와 은유를 통해 엮어내며 개인을 구성하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들의 교차점을 찾고자 한다.


《상리공생》 전시 전경(엘리펀트 스페이스, 2022) © 엘리펀트 스페이스

한편, 유리 작업인 〈swell/Mushroom〉(2022)과 〈shrink/Breath〉(2022)는 유리에 숨을 불어넣고 빼내는 동작을 팽창하고 수축하는 인간의 신체와 연결 지점을 찾고자 하였다.
 
〈swell/Mushroom〉(2022)은 균근망 속에 숨어 있다가 환경적 조건이 충족되면 땅 위로 올라와 포자를 퍼뜨리는 버섯의 생식 작용으로부터 작가의 몸에 기입된 기억을 찾아나가는 작업이다. 숨을 불어넣어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유리의 물성, 부푼 모양으로 생장하는 버섯, 작가 개인의 신체적 기억을 연결 짓는다.
 
〈swell/Mushroom〉과 달리 〈shrink/Breath〉(2022)는 숨을 빼내어 녹아내리는 듯한 형태를 만든 작품으로, 오롯이 혼자가 된 시간에 내뱉는 날숨의 순간에 기억과 감정(분출하기)이 흘러나왔던 경험을 담고 있다.


송세진, 〈노화된 기술〉, 2023, 퍼포먼스(단채널 영상), 36분 4초 © 송세진

이후 송세진은 자신이 겪던 이명을 계기로 신체의 노화와 데이터의 ‘노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렉처 퍼포먼스 〈노화된 기술〉(2023)을 발표했다. 오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이 작업은 노화의 증상이기도 한 이명을 낡은 기준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하고 학습하는 첨단 기술 시스템과 대비한다.
 
작가는 뇌의 기억장치에 내재한 오작동으로서 완치가 어렵고 만성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이명을, AI 기술에 내재한 오래된 기준과 분류 체계에 빗댄다. 이러한 기준은 뿌리 깊은 편견에 기반한 ‘의도적 오류’를 낳고, 이는 억압과 배제로 이어진다.


송세진, 〈Work〉, 2023, 단채널 영상, 22분 5초 © 송세진

같은 해 발표한 영상 〈Work〉(2023)는 〈노화된 기술〉에서 AI를 학습하기 위해 데이터셋을 분류하여 언어로 카테고리화 하는 분류자의 정치적인 개입이 들어가는 “자의적인" 방식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 중 알게 된 이미지와 사진, 언어, 소리의 자의적인 조합을 주인공이 이별 후 들리기 시작한 이명 빗대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송세진, 〈Work〉, 2023, 단채널 영상, 22분 5초 © 송세진

〈Work〉는 2065년 미래를 배경으로 두 불법 시간 여행자의 대화를 담은 SF 소재의 영상 작업이다.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기능이 약해져 생기는 뇌의 ‘신호’인 이명으로부터 출발한 이 작업은 실재하는 소리와 이명과 같이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연결에 대해 다룬다. 영상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이명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와 시간의 교차점에 간섭하고, 소리와 이명 즉,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에게 이명은 뇌의 신호와 같이 단순한 신체적 현상을 넘어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시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작품은 현재에서 다시 쓰는 과거, 과거의 반추로 비춰보는 현재를 넘나들며 이명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과 헤어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송세진, 〈노화된 기술: 부정과 불능〉, 2024, 퍼포먼스. 《노화된 기술》 전시 전경(금천예술공장, 2024) © 송세진

나아가, 〈노화된 기술〉은 2024년 개인전 《노화된 기술》을 통해 퍼포먼스, 영상, 텍스트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통해 소수자의 시각에서 기술, 기록, 그리고 공간에서 선택되거나 삭제되는 자료와 기억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확장된다.
 
그중, 퍼포먼스 작업인 〈노화된 기술: 부정과 불능〉(2024)은 2024년 대형 화재로 사라진 이태원을 복원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이태원을 온전히 복원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특히, 공식적인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태원의 14구역과 15구역은, 화재 발생 30년 후인 2054년 이태원 복원 지도에서도 여전히 빈 곳으로 남아 있다.


송세진, 〈노화된 기술: 부정과 불능〉, 2024, 퍼포먼스. 《노화된 기술》 전시 전경(금천예술공장, 2024) © 송세진

선택된 과거의 자료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와 그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 퍼포먼스는 두 명의 관객과 두 명의 공연자가 1:1로 매칭되어 진행된다.
 
관객은 무대 위 25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이태원 지도를 따라 이동하며, 블루투스 헤드폰을 통해 공연자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이태원의 공공 데이터와 구술 자료를 번갈아 듣는다. 같은 공간 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은, 기억과 기록의 간극을 경험하게 된다.


송세진, 〈지나가는 현재와 보존하는 과거〉, 2024, 단채널 영상, 4K, 7분 47초 © 송세진

이렇듯 송세진은 오늘날의 기술을 개인과 집단의 기억과 경험이 반영되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장치로 해석한다. 작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기술이 개인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정체성을 어떻게 선택하고 삭제하며 굴절시키는지에 주목하며, 그 이면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기술과 사회의 관계뿐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이 충돌하는 지점들을 보여주며 사회를 구성하는 다층적이고 미시적인 관계성을 드러낸다.

"저는 지금의 과정들이 어떤 메모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집의 과정은 낙서를 하는 것이고 전시의 과정은 낙서를 쉽게 볼 수 있는 메모의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완성될 메모에서 관객이 저와 작업 사이의 경계에 들어오고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길 기대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송세진,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인터뷰 중)


송세진 작가 © 서울예술상

송세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유리조형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노화된 기술》(금천예술공장, 서울, 2024), 《Behind》(스페이스 애프터, 서울, 2023), 《상리공생》(엘리펀트 스페이스,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아트선재센터, 서울, 2026), 《세계의 저편》(주일(도쿄)한국문화원, 도쿄; 주홍콩한국문화원, 홍콩; 주오사카한국문화원, 오사카; 2024),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일민미술관, 서울, 2024),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23), 《장소, 곳, 공간》(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 2022), 《개인들의 사회》(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송세진은 금천예술공장(2024),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3),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2),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스튜디오(2020-2021)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