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리(b. 1983)는 역사와 정치적 굴레 속에서 개인의 삶이 공동체와 국가에 의해 규정되고 변모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거나 충돌하는지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라진 말과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텍스트, 비디오,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의 궤적을 현재로 소환하고,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시공간적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 전시 전경(아트 스페이스 풀, 2015) © 아트 스페이스 풀

안유리의 작업은 주로 20세기에 걸쳐 발생한 전쟁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상흔을 연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인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2014-2015) 프로젝트에서는 네덜란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해 당시 그가 목도한 동시대의 국가적인 참사를 다룬다.
 
영상 작업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테셀에서 제주까지〉(2014)는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동안 우연히 북해의 한 섬 테셀(Texel)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테셀은 400년 전 제주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이 항해를 출발했던 장소다.
 
안유리는 네덜란드로 오기 전 제주에 관한 작업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왔다. 누군가가 출발했던 장소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착지로 이어지는 과정을 두고 작가는 상상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에서 겪게 되는 상황들, 그중에서도 말과 언어, 즉 모국어의 부재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재인식하는 과정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구성했다.
 
양서류가 물에서 뭍으로 삶의 공간을 이동하는 가운데 진화의 잔재로 남은 ‘딸꾹질’처럼, 안유리 본인이 모국어에서 외국어로,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옮아가면서 새롭게 변화하고 체득한 호흡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안유리, 〈추수할 수 없는 바다〉, 2015, 단채널 영상, 9분 © 안유리

이듬해 발표한 영상 작업 〈추수할 수 없는 바다〉(2015)는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프로젝트의 연작으로, 테셀(Texel)에서 제주로 이어지는 여정에 진도를 추가해 새롭게 제작한 비디오이다.
 
작가가 네덜란드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목도한 몇 가지의 사건들-세월호,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사건 등-을 통해 ‘귀환할 수 없는 존재들’, ‘닻을 내릴 수 없는 마음’에 관한 작가 본인의 경험에 반추하여 작업으로 이어갔다.
 
영상은 집을 떠나 오랜 시간 떠돌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오뒷세우스, 핸드릭 하멜)과 떠나간 사람들의 자리에서 기도와 제를 올리는 존재들(뽕할머니, 영등할매)이 등장하는 신화와 전설을 통해 현재를 다시 읽어낸다.


안유리, 〈월강〉, 2016, 단채널 영상, 1분 8초. © 안유리

나아가, 2016년부터 안유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에 주목하는 작업 ‘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를 전개해 나갔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국가와 민족의 순수성과 고유성에 저항하며 대항하는 존재들인 디아스포라의 언어에 주목했다.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오랜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지배국의 언어와 모국어, 모어와 모국어 사이를 횡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존재한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민족과 국가라는 견고한 틀 너머의 목소리에 주목했고, 대문자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숨결을 담아내고자 했다.


안유리, 〈몸〉, 2016, 단채널 영상, 4분 17초. © 안유리

안유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19세기 말부터 한반도를 떠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조선인의 이주 기록을 살펴보다가 현재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을 만났다. 이들은 여느 코리안 디아스포라들과는 달리 여전히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으나 역사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변화를 겪어온 존재다.
 
작가는 몸은 강을 건넜으나 말은 떠나온 곳과 같고, 시간이 지나 그들의 목소리 즉, 정체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네 개의 영상 작업 〈월강〉, 〈몸〉, 〈말〉, 〈소리〉를 제작했다.


안유리, 〈불온한 별들〉, 2018, 3채널 영상, 16분 16초. 《아직 살아 있다》 전시 전경(청주시립미술관, 2018) © 청주시립미술관

이후 2년 동안 리서치를 지속해 오면서,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공통적 과제-고국과 모국 사이의 괴리감, 동포와 외국인 사이에서 자리 잡기-을 보다 깊숙이 마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결과물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 사이를 오가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후 발표한 작업 〈불온한 별들〉(2018)은 한국과 연변, 연변과 중국, 한국과 중국이라는 3개의 공간적 층위와 관계 속에서 디아스포라들이 겪는 상황을 더욱 다층적으로 표현한다.


안유리, 〈불온한 별들〉, 2018, 3채널 영상, 16분 16초. 《아직 살아 있다》 전시 전경(청주시립미술관, 2018) © 청주시립미술관

〈불온한 별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의 첫 비디오 시리즈 〈월강〉, 〈몸〉, 〈말〉, 〈소리〉의 확장판으로, 북경과 서울을 추가로 촬영해 3개의 채널로 재편집한 결과물이다.
 
세 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영상은 연변을 넘어,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한 일원으로서 조선족의 위치와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한다. 안유리는 이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국 국가와 민족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 1. 서울 : 침묵의 탑, 불의 집〉, 2017, 단채널 영상, 7분 35초. © 안유리

그리고 2017년부터 시작한 ‘포촘킨 스터디’ 연작은 ‘포촘킨(Potemkin)’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둘러싼 두 개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18세기 중엽, 러시아의 절대군주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의 영토 중 크림반도를 시찰하려고 하자, 당시 총독이었던 포촘킨이 여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잘 정돈된 마을의 풍경을 그린 대형 가리개로 낙후된 실제 모습을 가렸던 일이 있다. 이후 ‘포촘킨 파사드’는 원래의 모습을 가린 채 선별된 전시적 풍경을 가리키는 비판적 용어로 쓰인다.
 
‘포촘킨’이라는 동명을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은 영화 〈전함 포촘킨〉에서 영화문법 중 하나인 ‘몽타주’를 적극적으로 실험하여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선보였다. ‘전함 포촘킨’에서 몽타주는, 대조적인 쇼트들을 이어붙여 선형적 시간과 일치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서사 흐름을 의도적으로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쓰였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 1. 서울 : 침묵의 탑, 불의 집〉, 2017, 단채널 영상, 7분 35초. © 안유리

작가는 전시화된 풍경 ‘포촘킨 파사드’와 이미지와 소리의 재조립을 통해 구성된 제3의 시공간 ‘전함 포촘킨’이라는 두 가지 수사학을 통해, 서울의 두 장소를 재조명한다.
 
첫 번째 작업인 〈포촘킨 스터디 1. 서울 : 침묵의 탑, 불의 집〉(2017)에서는 종묘와 대림동을 중심으로 서울을 읽는 작업을 시도했다.
 
종묘는 50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 하나의 성씨, 즉 ’이씨 왕조’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들의 위패를 모신 성소(聖所)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대림동은 산업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물결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물자와 사람들이 새로운 풍경을 이룬다. 서울에는 이처럼 한 번도 주인이 바뀐 적이 없는 집과 제자리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있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 1. 서울 : 침묵의 탑, 불의 집〉, 2017, 단채널 영상, 7분 35초. © 안유리

안유리는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개인은 자신의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그가 바로 장소이다”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떠난 사람들의 집과 떠날 사람들의 집, 정주민과 이주민, 그 둘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전시적 풍경일까, 모든 장소로부터 소외되는 실존적 외부성(existential outsiderness)을 선택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정착과 이주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공간인 서울을 담담한 시선으로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 2. 베를린에서 도문까지: 물뿌리로 가는 길〉, 2019, 단채널 영상, 11분 35초. © 안유리

1편에서는 한 도시 속에 자리한 상이한 두 장소-종묘와 대림동-를 통해 서울을 읽는 시도였다면, 2편 〈포촘킨 스터디 2. 베를린에서 도문까지: 물뿌리로 가는 길〉(2019)은 분단과 냉전의 기억을 가진 두 개의 도시를 공통의 서사를 통해 조망한다.
 
그 두 장소는 독일의 베를린, 중국의 도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토가 나뉘고 신흥국가들이 탄생했다. 그중 베를린은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한편, 도문은 한반도 최북단 지역을 흐르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해 있는 중국의 국경 도시이다.


안유리, 〈포촘킨 스터디 2. 베를린에서 도문까지: 물뿌리로 가는 길〉, 2019, 단채널 영상, 11분 35초. © 안유리

최근 몇 년 사이, 두만강 일대는 통일 전 베를린이나 DMZ 인근지역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도시로 바뀌었다. 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두만강은 삶의 방향과 뿌리를 옮기는 시작점이 되었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으나,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분계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줄기를 가둘 수는 없어도, 강을 사이로 이념이 충돌하고 공포가 넘나든다. 안유리는 이를 ‘분단의 상흔과 애수의 장소’로서 두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과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재인 것처럼 선형적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도시의 이야기로 읽는다.


안유리, 〈포말(泡沫)의 말(言)〉, 2021, 엽서 14장, 160x90mm © 안유리

한편, 2021년부터 시작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 프로젝트는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는 바다를 뜻하는 ‘공해(公海)’를 키워드로 삼는다.
 
이 프로젝트에서 안유리는 현재는 일본 영토에 속해 있으나, 19세기 전까지 '공해(公海)’로 존재했던 ‘오가사와라 섬(小笠原諸島)’을 항해의 시작점이자 상상의 공간으로 설정한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텍스트 작업 〈포말(泡沫)의 말(言)〉(2021)에서 작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꿈과 좌절,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두 화자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작품은 19세기 말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을 시도하다 오가사와라에 유배된 조선인 김옥균의 삶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그의 목소리가 공명하며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작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화답하는 형식을 통해 혁명이 망명으로, 유배가 유랑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상상한다.


안유리, 〈약속의 땅, 추방된 기억〉, 2021, 이미지, 텍스트, 웹사이트 © 안유리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오가사와라 섬’을 둘러싼 상상의 여정을 대화 형식으로 담아냈다면, 〈약속의 땅, 추방된 기억〉(2021)은 서로 다른 시간 축에서 벌어졌던 실제 상황을 각색하여 텍스트와 이미지로 풀어낸다.
 
두 개의 장소로 태국-미얀마 국경 지역의 멜라 난민캠프와 홍콩을 설정했고, 2010년 실제 방문 당시 기록했던 사진이 출발점이 되었다. 이 두 장소를 둘러싼 이야기의 공통점은 정치적 상황의 격변기를 통과하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지거나 동시에 제한되었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따른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안유리는 1988년 미얀마 민주항쟁, 1997년 홍콩 반환이 2019년의 홍콩 민주항쟁, 2021년 미얀마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2010년 두 장소에서 경험했던 상황과 이야기들을 접속 지점으로 설정했다.
 
작업은 각기 다른 두 장소를 ‘선택된 시간 축’으로 연결하여 서로에게 과거이자 미래를 공유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팬데믹과 정치적 대립 상황으로 인해 물리적 이동과 접속이 더 어려워진 시점에서, 이야기의 힘을 통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022,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아트스펙트럼 2022》 전시 전경(리움미술관, 2022) © 리움미술관

한편, 2022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스틱스 심포니〉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흐르는 강이자 그 강의 여신을 가리키는 ‘스틱스(Styx)’를 모티프로 삼아, 20세기에 발생했던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안유리는 일본, 폴란드, 미국, 한국의 4명의 여성 시인들(구리하라 사다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마야 안젤루, 고정희)이 남긴 시(詩)어에,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그는 이 시인들이 직접 겪거나 목격한 역사적 사건들-히로시마 원자 폭격, 나치와 소비에트, 흑인 민권 운동,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고 공명할 수 있는지 주목했다.
 
〈스틱스 심포니〉에서 4명의 시인과 8명의 여성이 스틱스가 되어 역사 속에 이름도 흔적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금-여기로 불러낸다. 이로써 그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과 차별 혐오에 저항하며, 연대와 용기를 향한 몸짓이 된다.


안유리, 〈은막(銀幕)의 방랑자〉, 2024, 단채널 영상, 9분 27초. © 안유리

한편, 2024년 영상 작업 〈은막(銀幕)의 방랑자〉(2024)는 고대 그리스에서 저녁별 ‘헤르페로스’와 새벽별 ‘포스포로스’로 불리며 궤도의 위치에 따라 비치는 모습만 변했음에도 완전히 다른 두 천체로 여겨졌던 금성처럼, 국가와 시대의 요구로 극명히 다른 페르소나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두 명의 실존인물을 조명한다.
 
‘리샹란’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인 행세를 하며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한 ‘야마구치 요시코’, 청나라의 공주이자 일본 스파이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가와시마 요시코’는 공교롭게도 ‘요시코’라는 동일한 이름을 공유했고, 이들은 작가에게 서로 다른 외양을 내비치나 결국은 공통된 근원에서 비롯된 ‘저녁별’과 ‘새벽별’로 여겨졌다.
 
영상은 ‘은막(銀幕)’의 가장자리로 사라진 두 인물의 삶이 잠시 교차하는 ‘환등상(Phantasmagoria)’의 무대로 설정되어 개인의 삶이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굴절되어 남긴 변곡점들을 치밀하게 좇는다.


안유리, 〈은막(銀幕)의 방랑자〉, 2024, 단채널 영상, 9분 27초. © 안유리

이렇듯 안유리는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에서 겪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의 서사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냉전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해 온 ‘아시아’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며 소외된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의 작업은 영상, 사운드, 텍스트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직조하고, 흩어지고 희미해진 존재들을 현재로 다시 불러내 서로 연결한다. 나아가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갈등과 대립, 차별과 폭력의 상황 속에서 연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사라져가는 말들과 기억되길 원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부서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풍화된 말들을 입속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때때로 그들의 말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긴다. 나는 그 길이 불러주는 노래를 듣는다." (안유리, 작가 노트)


안유리 작가. 사진: 성재연. © 안유리

안유리는 2014년 네덜란드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강》(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6), 《항해하는 말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추수할 수 없는 바다》(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5)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보더리스 시네마》(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6), 《경계 위의 그녀》(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26),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_영화 이후》(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5), 《루프 랩 부산 2025》(뮤지엄 원, 부산, 2025),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약장수와 약속의 땅》(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3), 《아트스펙트럼 2022》(리움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안유리는 루프 바르셀로나 비디오아트 프로덕션 어워드 2021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