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로 작가 © 크리스 로

한국에서 생활하신 지 이제 딱 10년째입니다. 10년 전의 한국 디자인과 지금의 한국 디자인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럼요.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어요. 그것도 꽤 충격적인 속도로요. 한 국가나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 첫인상을 그 나라의 언어로 만들어진 간판으로 느끼는 편이에요. 저는 영문으로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10년 전 제가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 도시 속 간판의 모습과 지금 간판의 모습은 정말 달라요. 전반적인 비주얼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한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나 책 등의 디자인을 보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10년이 절대 긴 시간이 아닌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훌륭한 디자인적 환경이 조성된 것 같아요.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10년간 학교 내에서의 변화도 있을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학생들의 기본적인 실력도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요. 프랑스나 독일, 이스라엘 등 각국에서 교환 학생들이 방문하면 한국 학생들의 작품을 보며 그 실력에 놀라기도 합니다.


학부에서는 건축디자인을 공부하시고 석사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건축디자인에서 그래픽디자인으로 전공을 변경하셨던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늦은 나이에 크게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바로 제가 무언가에 몰입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작업할 때, 특히 그림을 그리거나 3차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의 몰입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원래는 미술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제가 경영학을 공부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일반 대학교의 경영학과로 진학했어요. 역시나 너무 재미가 없어서 성적도 정말 안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잠도 많이 자고요(웃음).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저에게 건축과 수업을 들어보는 건 어떤지 추천했어요. 일반 대학교에서 들을 수 있었던 미술 계통의 수업이니까요. 그렇게 건축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모델 만들기를 하면서 제가 원했던 몰입의 기분을 느끼게 되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크리스 로의 서교동 작업실에 놓인 실크스크린 인쇄용 스크린 © 플레이스일다시삼

그런데 건축 회사에 다니면서는 또 그 ‘몰입’이 사라지더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기준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는 거지만 제가 일을 한창 할 때만 해도 5년에서 7년 정도는 재미없는 일을 해야 했어요. 한 예로 저는 1년 동안 계속 화장실만 그렸거든요. 그러다 보니 몰입의 기분이 없어지고, 하는 일에 재미가 없어졌죠. 더구나 회사 내의 5년 차, 10년 차 선배들의 표정이 정말 좋지 못했어요. 항상 피곤해했고, 출근할 때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건 내게 맞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혼자 고민하던 중에 다른 친구가 그럼 그래픽디자인을 시도해보라고 제안했어요. 학교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으니 한 번 시험 삼아 작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 대화가 계기가 되어서 앨범 표지 한 장을 디자인하게 됐고, 그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몰입감이 다시 느껴졌어요. 그 이후로 퇴근하고 저녁에 서점에 가면 — 그때도 인터넷이 있긴 있었지만 대부분 책을 보던 시대니까 — 책을 뒤져가며 혼자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죠.


건축가로서 일할 때와 많이 다른 경험이었나요?

그렇게 취직한 그래픽 디자인 회사는 정말 좋았어요. 분위기도 훨씬 밝았고요. 아직도 제 첫 면접을 기억해요. 제가 근무했던 건축 회사는 굉장히 보수적인 회사였어요. 항상 셔츠는 바지 속에 넣어 입어야 하고 넥타이를 매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래픽디자인 회사와의 면접에서는 의상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건축 회사에서 일하며 만난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역시나 모두가 넥타이를 하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면접을 보러 갔더니 면접관은 슬리퍼를 신고 구멍 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로 빵을 먹고 있었어요. 저는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간 거고요. 그래서 이분들이 처음에 저를 약간…신기하게 바라봤죠(웃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그럼 그래픽디자이너로 실무 일을 하시다가 후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신 거네요? 어떤 이유에서 일을 시작하신 다음에 공부하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건가요?

그래픽디자이너로 한 4년 정도 일을 했지만, 항상 부족한 마음이 있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제 타이포그래피를 보고 지적을 해도 제가 보기에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정통 교육을 받아서 정교함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었어요.


크리스 로의 최근 작업 © jskstudio

그렇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영문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셨어요. 이후 한국에서 한글로 작업해야 했을 때 한글의 조형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궁금해요.

실패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창피한 실패가 많았죠. 한국에 와서 처음 만들었던 로고는 한국어로 된 로고였어요. 한글의 조형을 이해하지 못하니 영문의 조형적 이해를 기초로 해서 로고를 만들었어요. 아시다시피 한글은 조합형 글자예요.

예를 들어 ‘ㅇ’은 글자 조합의 어느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납작해지기도 하고 길쭉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조합형 글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니 글자 조형의 유동성을 무시한 채 마치 영문을 다루듯이 한글 로고를 만들었어요. 영문은 조합형이 아닌 나열형이기 때문에 어디에 두어도 알파벳 원형이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규칙을 한글에 그대로 적용해버린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정말 못생겼었어요. 이제 그런 태도는 지양하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언어를 조형적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는 점이 아주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실제로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한국의 디자인을 많이 접해볼 일도, 한글을 사용해서 디자인해볼 일도 없으셨을 테니까요.

저는 비록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태어난 2세대 교포지만 한국에 관한 관심과 자부심이 있는 채로 자랐어요. 하지만 실제 해외에서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은 딱 두 번만 언급돼요. 금속 활자 때 한 번,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안상수 선생님의 디자인에서 한 번. 한국 디자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는 건 언어적 제약이 있는 제게는 조금 어려웠어요. 두 시대 사이의 내용이 비어있는 것이 항상 아쉬웠죠. 그래서 한국에 올 때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크리스 로의 실크스크린 인쇄 과정에서 종이와 스크린 사이에 남은 잉크 흔적 © 플레이스일다시삼

이제 지금 하시는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주로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서 작업하고 계시죠?

왔다 갔다 하는 편이에요. 어떤 작품은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어떤 작품은 오프셋 인쇄를 진행해요.


실크스크린 작업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실크스크린이 가진 색감이나 질감의 특성 때문이었나요?

색감 때문도 있고, 손맛 때문도 있어요. 완벽하지 않은 느낌을 좋아해요. 저는 논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논리 대 직관의 싸움이 몸 안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컴퓨터라는 도구를 보면서 아쉬움이 많아요. 컴퓨터의 키워드는 속도, 효율성 이런 것들이니까요. 많을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도구인 것 같아요.

더욱이 지금은 어도비(Adobe.,Inc.)의 소프트웨어 독점이 심화하였으니 레퍼런스를 찾아 핀터레스트(Pinterest), 비핸스(Behance) 등의 사이트를 방문해도 스페인의 디자인, 한국의 디자인, 브라질의 디자인 다 뭔가 비슷해요. 그래서 지금은 개인의 직관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손맛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오래된 복사기로 반복 복사하여 만들어진 질감과 형태 © 플레이스일다시삼

작업 중에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나 과정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결국, 손작업이 가지는 완벽하지 않은 맛을 찾아낼 때가 가장 재미있어요. 요즘에는 손의 거친 느낌을 컴퓨터나 여러 기기로 구현해보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옛날 복사 기계를 활용하기도 하고요. 토너가 없거나 성능이 조금 떨어지거나 하는 이유로 인해 인쇄가 균일하게 되지 않은 모습들이 인간적으로 느껴져요. 아이패드에 손으로 그린 하나의 형태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프레임을 멈췄을 때 흥미로운 형상이 나오면 그 순간이 참 행복하고요. 그 랜덤한 형태를 실크스크린이라는 방식으로 인쇄하면 마지막 과정까지 완벽한 통제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런 부분들이 제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크리스 로가 만드는 여러가지 형태들 (사진출처 : jskstudio) © 플레이스일다시삼

손으로 그린 형태에는 의미도 담겨있나요?

형태에 의미를 모두 부여하지는 않아요. 한 가지 재미있었던 감상이 있어요. 제 작업을 보던 친구가 형태의 애니메이션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영상에 소리는 담겨있지 않은데, 움직이는 도형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음악가에게 사운드 하나하나의 의미에 관해서 물어보지는 않는데 시각물을 만드는 창작자에게는 의미를 물어보는 경향이 있네요(웃음). 저는 그냥 음악을 만드는 느낌처럼, 즐겁게 형태를 만들어요. 소리를 만드는 감각처럼요.


요즘 새롭게 시도해보는 기법이나 방식이 있나요?

종이에 연필 드로잉을 그리고 그 위에 오버프린트를 하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크리스 로의 작업실 한켠 놓인 아크릴판 베이스 작업물 © 플레이스일다시삼

작업과는 별개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추얼(Ritual) 혹은 루틴(Routine)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30년 동안 베이스 클라리넷에를 연주하셨던 분의 공연이었죠. 그 공연을 듣는 내내 벅찬 감정을 느꼈어요. 마치 그 연주자의 영혼이 나에게 음이라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영어로 시를 쓰는 것처럼, 혹은 그 연주자분이 음악이라는 언어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시각적 형태도 하나의 랭귀지,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각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작업을 보시는 분들이 제 작업을 보고 영혼의 언어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런 작업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루하루 끊이지 않고 계속 이 작업을 계속하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루틴이에요.


햇빛이 비치는 작업실의 모습 © 플레이스일다시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