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주, 〈Hummer〉, 2022, 2채널 사운드, 표본테이블,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표본, 레퍼런스 이미지, 초지향성 스피커, 가변설치 © 전혜주

조사,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 제작은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작업 방식 중 하나이다. 시각 예술 작업은 리서치의 내용과 연구 방식과 만나 독특한 형식을 구축하기도 하고, 시각 예술의 접근을 통해 학술 연구는 기존과는 다른 관점을 보완한다. 작가들은 때로 연구자와 시각 예술 창작자 사이의 입장에 서서 양쪽의 경험과 방법론을 조율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형식을 보완하는데 기여한다. 다학제적인 연구의 일환으로서 시각 예술이 과학, 기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 접점을 이루며 결과를 발표하는 일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과학적 조사, 학술적 연구 방식과 시각예술의 문법 사이에서 이를 서로 절충하고 보완하며 작업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전혜주 작가의 소재 선택과 작품 형식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드론과 같은 기술 환경, 식물의 육종 관행, 1950년대에 대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등 폭넓은 사회, 기술, 역사적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특히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현미경과 같은 사물이나, 표본, 보고서 등의 형식을 차용하여 작업이 갖고 있는 조사, 연구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소재의 사실성과 실증적 특성을 강조하는 한편, 영상,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연구된 주제를 관객이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탐구하고 있다.

COVID-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 2020년 이후 작가는 특히 미립자, 음향 무기, 원자력 발전을 위한 원료 등 쉽게 육안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물질을 주요한 주제로 삼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꽃가루를 비롯하여 도심의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포렌시스〉(2020)는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설치를 통해 미세 입자들을 관객들이 전시의 맥락과 경험 방식을 통해 관찰 가능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고, 〈노란경계〉(2021)는 소나무 화분과 원자력 발전의 원료인 우라늄 정광의 공통적인 노란색 가루 형태를 지표로 삼고 병치하면서, 시각적으로 서로 유사한 물질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면서 생태계에 대한 유익하거나 유해한 물질로 전환하는 모순적 상황에 관심을 표한다.

작가는 꽃가루를 추출하는 방식의 묘사를 포함하는 영상과 함께 화분의 표본을 전시하고, 벌의 날개 움직임과 유사한 진동을 생성하는 키네틱 장치를 통해 화분이 전시장의 바닥에 떨어져 노란 흔적을 형성하는 복합적 설치를 통해 기술이 자연의 방식을 차용하며 운용하는 구조를 암시한다.

보이지 않지만 신체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관심은 미세한 소리로 연결, 확장된다. 〈Hummer〉(2022)는 실제 존재하지만 신체가 쉽게 감각할 수는 없는 미세한 파동을 재구성한 사운드를 초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송출하는 설치이다. 관객은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표본, 참고 이미지들을 나열한 긴 라이트 박스 주변의 감상 위치에 도달했을 때 직선으로 송출되는 사운드를 감각하게 된다. 이 특정한 상황의 재구성을 통해 관객은 도시 환경에서 발생하는 미확인 소음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청각에 예민한 사람들, 즉 ‘Hummer’의 상황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되며, 주변의 미세한 소리의 존재에 대해 재인식하게 된다.

〈보디체크〉(2020) 역시 초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기술의 작동 방식을 청각적으로 암시하고 구현하는 설치이다. 작가는 수직, 수평의 레이저 선을 사용하여 이를 공간 속에서 움직이게 하고, 초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하여 특정 위치에 도달했을 때 관객의 청각을 자극하는 사운드를 통해 기술이 인간 신체에 가하는 비가시적인 영향을 암시한다. 어두운 공간과 레이저 선이 주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이미지, 그리고 어딘가 익숙하면서 날카로운 기계음은 불안과 긴장을 유발하며, 기술이 신체에 가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암시한다.

이렇게 작가는 자연 현상과 기술, 시각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리서치와 시각화, 감각화의 과정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과 영향에 관객의 관심을 돌린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 영향을 특히 미시적인 세계와 물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드러내고, 비가시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시각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생명 주체 간의 상호 영향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특히 무엇이 인간의 몸으로 침투하고, 인간의 몸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며 몸은 외부의 세계에 얼마나 열려있는가를 보여준다. 일상에서 인간이 단순히 보이는 것을 아는 것, 이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전혜주의 작업은 우리의 몸이 실은 앎과 무지의 경계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하고, 가시와 가청의 영역의 경계에 있는 것들을 뚜렷이 감각 가능한 것들로 끌어올려 세계에 대한 예민한 이해를 돕는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