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보세요. 나무, 양철, 스티로폼까지 집 벽면 소재가 정말 다양하죠. 임시로 집을 지어 이것저것 벽에 덧대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제게는 매우 매력적이에요."


양자주 작가 © 하영문

부산 남구 감만1동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하늘과 머리가 맞닿은 산동네가 나온다. 수십 년 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동네를 양자주 작가는 신난듯 구석구석 누볐다.

양 작가는 부산문화재단 감만창의문화촌이 진행하는 '감만동 리서치 프로젝트'에 참가해 지난 3개월간 감만동 구석구석을 훑으며 동네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빈집에서 가져온 소재로 회화 작품을 만들었다. 오는 14일까지 《감만동 발굴》展을 여는 양자주 작가를 만났다.

"감만동은 옛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매력적이에요. 목욕탕 굴뚝이 땅에 박혀 있고, 판잣집은 물론 무덤과 우물 흔적도 있어요. 지난 3개월간 이곳을 수십 번 드나들면서 맘에 드는 나뭇조각, 양철, 벽지, 타일, 모기장을 조금씩 가져와 그걸 캔버스에 펼치는 작업을 했어요. 그게 전시회에 소개한 'Materials' 시리즈예요. 동네 흔적을 캔버스로 옮겨 새로운 예술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제가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이죠."

'감만동 리서치 프로젝트'는 재개발을 눈앞에 둔 감만동의 문화와 생활사의 자원을 발굴하고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지난해 '초량 1925' 프로젝트에서 같은 방법으로 초량동을 기록하고 회화로 남겼죠. 그걸 보고 감만창의문화촌에서 작업을 의뢰해왔는데, 막막했죠. 이곳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거든요.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니 시각예술 관점에서 흥미로운 풍경과 소재가 많아 신나게 작업했어요."

양 작가는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는 예술인이다. 그는 페인팅을 기반으로 퍼포먼스, 설치, 스트리트 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회화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부산과 서울 말고도 베이징, 베를린 등 여러 도시의 벽면을 캔버스에 옮긴 'Wall' 시리즈와 이번에 전시한 'Materials'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서울 출생인 그는 2011년 예술공간 '아지트'에 레지던시 작가로 머물며 부산의 매력에 빠져 작업실을 아예 옮기고 무빙트리엔날레, 바다미술제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림이 너무 좋아 뒤늦게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저는 굳이 물감이 아닌 여러 소재로, 다양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길거리에서 작업하고, 세계 각지 벽의 질감을 캔버스에 그리고, 쓰레기 같은 자재를 모아 회화로 만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죠. 특히 못골, 온천장, 만덕 등 재개발 현장에서 쓰러진 집과 용역업체가 새긴 빨간색 글자의 벽, 쓰러지기 직전의 폐가를 작업공간 삼아 여러 프로젝트도 시도했어요."

양 작가는 감만1동에 이어 감만2동에서도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한 흔적을 찾아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도전하게 됐다.

"이제 동네를 알 만한데 그만두는 게 아쉬웠어요. 감만동 주민에게 이곳은 생활 터전이겠지만, 제게는 창작 욕구를 북돋우는 공간이거든요. 제가 발견한 감만동의 가치를 예술로 드러냈을 때 주민분들께서 '아, 이럴 수도 있구나'라고 공감해주시는 것, 그것이 예술 아닐까요. 예술을 강요하고, 일부러 끌어내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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