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별을 가장 많이 , 잘 그리는 별명 이른바 별 작가가 성희승이다. '별 작가(Starya)'라는 별칭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가는 스스로 별을 그리는 이유를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철학적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성희승, 〈Eternal Becoming〉,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257 x 283 cm © 성희승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빛의 화가 방혜자는 8살 때 우연히 개울가의 물위에서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저런 것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면서 평생 빛을 그리는 운명적인 화가가 되었고 그 빛을 그리면서 행복을 이끌어내는 법을 터득 할 수 있었다.

성희승 작가가 별을 그리게 된 동기와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별빛의 마음을 따라 빛나는 별이 말해주는 빛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그녀도 행복한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있었고, 작품 세계의 핵심인 '별'의 의미를 정립하는 중요한 철학적 모티브도 있었다.


성희승, 〈Eternal Becoming〉, 2002, 2018–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 x 130 cm © 성희승

그녀는 “누구나 어린 시절 밤하늘을 보며 저 많은 별 중에 나의 별은 무엇일까 상상했던 것처럼 별은 언제나 내가 가고 싶은 이상적인 낙원의 상징” 이라고 했다. 
성희승 작가는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를 "한 존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세계"로 보려고 했다.

광활한 우주의 세계가 아니라, 장미 한 송이를 돌보며 관계를 맺고 가꾸어나가는 '책임 있는 삶의 공간'으로서 별을 바라보고자 했다. 

작가에게나 우리에게나 언제나 성희승의 별들은 희망과 위로의 상징이었다. 작가는 "별은 가장 어두울 때 오히려 빛나고 희망을 준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별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까?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어린 시절부터 평생 에드윈 허블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품었던 호기심처럼 성희승의 무수한 별들은 우리를 궁금하게 만든다.


《Eternal Becoming》 전시전경 © 학고재

전시장의 첫 번째 마주치는 대작의 별 그림은 다른 그림에서처럼 숨은 별들이 아니라 거대한 별들의 음성처럼 명확하고 강렬하며 확신에 차있다.
이미 여기에서 성희승은 별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잇고 마음을 연결하는 소통의 매개체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과감하고 힘찬 선들로 만들어진 엮어진 별들의 형상은 충분히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소망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속에 별들은 서로 엉키고 부대끼며 빛나거나 자유롭게 어울려진다. 

작가는 어린 왕자가 여행 중에 만난 가로등지기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빛을 내는 존재들을 '별'로 형상화 한다고 간절하게 고백 했다.
그러나 성희승 작가보다 먼저 별을 사랑하고 별을 그린 몇 명의 화가가 있었다. 

첫 번째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이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밤은 낮보다 더 살아있고 풍부하게 채색되어 있다"고 말하며 빛나는 밤의 빛나는 색채인 별들을 찬양했다.

그러나 고흐가 밤하늘과 별에 매료되어 이를 그린 이유는 성희승의 심경과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 별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도달하고 싶은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는 말처럼, 성희승은 밤하늘을 보며 무한한 우주와의 연결을 느끼며 점점 고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별들은 현실의 삶처럼 때로는 혼탁하고 서로를 침입하고 넘나드는 우리들 삶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초상화처럼 아름답지만 캔버스 화면에서 그다지 찬란하게 화려하게 빛나지만은 않는다.


《Eternal Becoming》 전시전경 © 학고재

“어쩌면 별에 가기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고 기록했던 고흐처럼 성희승 작가의 별은 빛나는 형태와 색채와 어울림으로 교차하며 사유적으로 떠오른다.
이처럼 성희승에게 별을 곧 세상을 살아가는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의 소용돌이치는 삶의 현장을 포옹하는 정신적 격동과 삶의 내면의 메시지와 스토리를 별들에게 투영한 생생한 날것의 목소리이자 노래이다.

〈절규〉로 유명한 뭉크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별이 빛나는 밤의 고흐의 그림처럼 노르웨이의 해변에서 느낀 고독과 우울을 몽환적인 밤하늘에 혼란스러움이 종종 빈번하게 묻어난다.

성희승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역시 밤의 풍경을 〈녹턴(야상곡)〉이라는 제목으로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으로 떨어지는 불꽃을 담아냈다.

성희승의 그림 속에도 그 밤하늘에 터지는 폭죽과 불꽃의 잔상을 마치 별처럼 흩뿌려진 사각의 별들로 화폭을 충만하게 에워싸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수많은 색채와 별들로 뒤덮인 별들은 몽환적이며 드물게 신비로운 별들의 집합이 되어 시골길 위로 쏟아진다.


성희승 작가 © 성희승

그러나 그 별들은 함께 부딪치며 추상적인 메시지에 공감하며 서정적으로 흔들리고 몰려다닌다.
우리가 그녀의 별에서 때로는 성스러움과 인간적인 삶의 현장을 보는듯한 목소리와 과정이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녀의 숨쉬는 화폭에서 발견한다. 그녀가 별을 그리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이자 영적 구원을 향한 쉬지 않는 탐구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가 화폭에 쏟아놓는 별들은 진실한 그녀 삶의 이야기이자 울림이며 기도에 공감하게 된다.

그녀의 별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삶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들 내면을 위한 성찰의 음성이며, 화폭에 끊임없이 터뜨리는 별들의 축제인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