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잊혀지지 않는.》 전시전경 © 갤러리팩토리

개인의 차원에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적인 거리를 벌리며 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행위이며,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행위에서 소멸되어가는 내밀한 순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록의 행위는 일기와 같은 형식으로 지난 시간의 묶음이 되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서랍의 한구석을 차지하거나 꽁꽁 봉해지곤 한다. 하지만 국동완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작가는 망각에 저항하며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지난날의 시시각각을 기록한다.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우연하고 낯선 일상의 순간을, 개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떤 사건을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고 드러내어 타자와의 만남이 또 다른 하나의 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숨기고 싶은, 그래서 자신의 의식조차 닫지 못하는 구석에 봉인하기보다는, 그것이 타인과 만나 만들어내는 순간을 더 깊이 존중하고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전이되는 순간이 하나의 사건이 되기를 희망한다.

《기억나지 않는, 잊혀지지 않는.》 (2011, 갤러리 팩토리)에서 작가는 지난밤 꾼 꿈을 기록하고, 자신이 세운 규칙을 바탕으로 몇 가지의 꿈들을 선별하여 시각화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조금씩 희미해져 그날의 일과를 시작할 때쯤이면 선명했던 꿈은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곤 한다. 작가는 흐릿해진 꿈의 끄트머리부터 시작하여 간밤의 꿈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노트에 기록하고, 그것으로부터 모종의 이야기를 구축해 나아간다.

잠재된 무의식의 영역인 꿈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자유연상을 하듯 논리와는 무관하게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는 일견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상징주의적 독해로 이해해야 할 듯싶다. 하지만, 작가는 꿈의 기록으로부터 하나의 패턴이나 관계성을 도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러한 관점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기록한 것에 대해 “그것은 읽을 때마다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고,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라고 언급했듯이, 해석-번역을 위한 최초의 단계에서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는 밑그림으로서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꿈은 언어적 서술이나 간단한 드로잉으로 기록되고, 작가가 세운 모종의 규칙을 바탕으로 시각언어로 다시 또 번역되며, 거듭되는 번역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이미지는 그것을 ‘읽는’(번역하는) 관객의 시각에 의해 더욱 확장하게 된다. 결국, 국동완이 주목하는 지점은 연쇄적인 번역의 과정에서 삭제되어버린 다양한 결들과 그 부분을 새롭게 채우는 다양한 감각,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각자의 순간에 있다.


《The Automatic Message》 전시전경 © 갤러리 조선

작가의 은밀하고 내밀한 개인적 순간, 꿈으로부터 시작했던 기록은 외부적 요인들과의 접점에서 촉발되는 정서에 눈을 돌림으로써 더욱 확장되어 나아간다. 《A hard rain’s a-gonna fall》 (2013, 아트스페이스 모)은 윤가림 작가와의 2인전으로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음악을 매개로 각 작가가 차지한 자리가 겹쳐지거나 뒤섞이고, 서로를 보듬거나 침투하며 조화로운 파장을 만들어낸다.

개인에서 비롯된 작가의 기록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조우하는 외부의 요인에 대응하여 또 다른 정서를 촉발하고, 그것을 다시 또 내부로 수렴하여 눈앞의 현장을 하나의 정지된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가장 최근의 개인전인 《The Automatic Message》 (2016, 갤러리 조선)에서는 외부의 요인을 보다 의식적인 차원에서 주시하고 그 위치로부터 자신의 기록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현실의 특정한 사건이나 현상을 접한 후 뇌리에 깊숙이 박힌 트라우마에 대응하여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현실은, 위장된 무의식의 기억과 욕망에서 비롯된 꿈보다도 더 초현실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목격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무력함과 그에서 비롯된 절망과 같은 감정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고, 그녀에게 현실과 꿈은 밀착되어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란 그저 꽤 오랜 시간 묵묵히 그것을 직시하고 그때그때의 순간적인 감정을 기록하여 남기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다시 시각언어로 번역하여 수놓은 화면 위의 이미지는 작가 개인이 망각으로부터 몸부림치며 기록했던 지난날에 대한 축적이며, 타인에 의해 끊임없이 눈앞에서 생동하는 지금이 된다.

이렇게 개인의 감정에서 시작된 내밀한 기록은 각각의 정서가 중첩되고 연결됨으로써 하나로 서술된 순간이 된다. 어젯밤 꾸었던 꿈, 그 꿈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마주하게 되는 낯선 심상들, 어느 장소에 도달하여 느꼈던 특별한 감정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들과 사건의 결정 불가능성,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에서 충동적으로 발생한 어떤 감각들은 그것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되뇌는 과정에서 기록되고 쌓여간다.

그리고 세밀한 선과 색이 조화롭게 만들어낸 화면, 기록이 재배열되어 담긴 책, 테두리만 남아 그 내용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미지와 오브제들, 타인의 손길로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책 등 그 기록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과 이행의 사이에서 소멸된 정서는 새로운 관계의 정립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출몰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기술된 언어와 시각언어로 번역된 창작물의 사이, 매체와 매체의 사이, 더 나아가 작가와 타인의 사이 그 어디 즈음에선가 끊임없이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기록된 순간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번역되고, 새롭게 생성된 감각으로 생동하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