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이지현의 작업들은 자신이 방문했던 공공적인 장소들과 사적인 장소들을 뒤섞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유명한 여행지의 장소들이 옷장 안이나 책상 위의 기물들과 같은 개인적 용도의 공간과 연결되면서 회화 평면 안에 펼쳐져 두개인 동시에 하나인 독특한 시공간을 형성한다. 이것이 상이한 두 장소의 혼합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각기 다르게 적용된 스케일, 그리고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시지각 경험들이다.
그러나 낯선 타인들로 가득한 여행지의 공간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사적 기물들, 예컨대 비즈 귀걸이나 연필통 속 필기구들, 화장대 위에 나란히 놓인 화장품, 옷장 속의 옷가지와 같은 것들에 의해서 개인적 차원 속으로 수용된다. 콜로세움의 아치형 문 밖으로 삐져나온 옷가지들이나 스미소니안 박물관 천정에 샹들리에처럼 드리워진 귀걸이들은 혼재된 기억의 풍경이나 의식의 흐름 속에서 연결된 어떠한 고리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 고리들이 필연적인 것이든 우연적인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연상 작용처럼 떠오르는 이미지와 사고들은 복잡한 흐름 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교차 편집된다. 일시적으로 조합되는 장면들은 우리의 시지각이 하나의 것들을 향하지 않으며, 언제나 안과 밖이 다중적으로 얽혀있는 공간 속에서 배회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지현의 작업이 애초에 화실풍경, 옷장 안과 같이 매우 사적인 실내 정경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주지해야할 점이다. 최근작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공공 공간들과의 혼합 양상 속에서도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적인 공간이다. 다채로운 공간의 층위 속에서도 대부분의 개인적인 기물들은 공적인 공간 속에 커다랗게 드리워지거나 마치 걸리버의 소품들처럼 공간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콜로세움처럼 유명한 공공 장소들은 작가가 주도하는 흥미로운 공간 놀이의 한 요소가 되어, 화장품 서랍장이나 책상의 한 모퉁이, 옷장의 한 칸의 일부로 용해된다. 〈Smithsonian + Rm_2〉에서 발견되는 악세서리 장 속 풍경이나 박제된 코끼리 목에 걸린 반짝이는 초록귀걸이, 〈Assisi de San Francesco + Rm_1〉에서 아시시의 로마식 아치 뒤로 펼쳐지는 화장대 풍경, 〈MoMA + Studio_5〉에서 뉴욕 근대미술관 벽면 위에 나타나는 또 다른 화실 풍경과 같은 장면들은 기념비적 건축물 위에 개인이 역사가 스며들고 있는 순간을 드러낸다. 외부의 공간이 사적인 공간으로 전이된 이러한 장면은 여행 풍경화가 아닌, 일종의 독특한 실내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역사적으로 실내 풍경화는 부르조아의 안락한 실내 생활에 대한 표징이 되어왔다. 방의 소유자는 자신의 시각장(視覺場) 안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실내 기물들을 응시함으로써, 소유물에 대한 주권을 확인한다. 반란하지 않는 실내 정물들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은 결국 소유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견고함이다. 변화무쌍한 외부의 현실과 대조적인 이 부동(不動)의 장면을 바라보면서 소유자는 자기 위치의 안전함을 획득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실내 풍경화들은 대부분 자기보존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지현의 실내 풍경화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완전히 사적인 실내 공간이 아니며, 하나의 응시만을 반영하지도 않고, 실내 공간인 동시에 여행지의 임의성을 동반하고 있는 비확정적이고 반귀납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속에서 사적인 기물들이 가진 개인성은 여행지가 드러내는 임의성과 이동가능성에 의해서, 딱히 고정될 수 없는 어떠한 흐름의 상태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이과정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관심사가 기물들 자체가 아니라 그가 붙잡고자 하는 어떠한 의식의 흐름과 더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지현의 작업 속에서 화자의 시선은 특정한 방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다양한 장소들의 양상들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방들의 바깥 면에 위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누구인가’ 보다는 ‘이동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의식 자체가 중요해진다. 하나의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하는 일점원근법적 인식 보다 공간의 차원들 사이를 이동하며 지각하는 다중적 인지방식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지현이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회화평면 위의 공간들 사이에는 어떠한 논리적 개연성도 없다.
어떤 공집합이 있다면 그것이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의 기억과 의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라는 전시 제목이 암시해주듯이, 이지현의 회화가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게임을 하듯이 공간들을 자유롭게 중첩시키고 연결시키는 편집자로서의 작가 자신인 셈이다. 그의 작업이 비확정적이고 비완결적이며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차원이 다른 차원과 연결된다는 사실 보다도 우리의 의식 자체가 논리정연하지 않으며 다중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이지현은 두개의 이질적 차원을 중첩시키면서 「나니아 연대기」와 같이 옷장 속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미지의 차원들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자체가 시작과 끝이 없는 수많은 복수적 층위들로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지현의 회화 평면은 다채로운 층위의 차원들 표면 위에 존재하는 하이퍼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평면 안에서 작가의 의식은 회화의 문제와 결부되어 흘러간다. 그의 그림 속에는 종종 액자 구조가 나타난다. 사각의 회화 프레임 속에 있는 또 다른 그림이라는 개념은 2003년 첫 개인전 작품 〈Window II〉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2005년작 〈Café Lalo + Studio〉에서는 실제의 창틀을 이용한 사진을 회화 속에 삽입하여, 회화의 역사에 있어서 사각 프레임과 관련된 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지난 작업들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거울은 회화 캔버스로만 구현되었던 지난 개인전에서 사라졌다가, 이번 전시에서 회화-설치작업의 일부로서 다시 등장하였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한 벽면을 꽉 채울 대형 회화작품 〈A.Seo+Dining Rm〉은 실제 그림이 걸릴 갤러리 벽면을 재현한 것이다.
이 그림 속에는 이번 전시 작업의 일부로 아라리오 갤러리 벽면 한 편에 실제로 설치될 거대한 흑경이 그려져 있음으로써, 회화적 재현과 결부된 실재와 환영의 문제를 복잡하게 구현하고 있다. 또한 그림 속 갤러리의 벽면에는 이지현의 작업에서 종종 등장해온 고풍스러운 거실 풍경 그림이 걸려있어 이중의 액자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실 풍경은 그림인가? 아니면 그림 속 모티프인가? 흑경에 비춰질 그림은 실재인가 환영인가? 관람자들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입체적인 환경들, 즉 공감각적이고 다층적이며 복잡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 구조를 회화라는 하나의 납작한 평면 안에 구현해야하는 과제 앞에서, 화가들은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지현이 줄곧 선택해온 길은 의식의 파편들을 비선형적인 동선으로 엮어내는 것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묘하게 연결된 정신적 공간들이 회화 평면 안에 압축되었을 때 그것은 자칫 단차원으로 귀결된 단조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보다 더 정련된 정수를 보여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더없이 단순한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회화 평면이 바깥의 넓은 세계로 향하는 출구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지현이 택하고 있는 회화의 길은 이 정답형 출구를 향한 오랜 믿음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다. 그의 방식은 2차원 평면의 완전무결함을 주장하던 모더니즘 시대의 방식에서도 비껴간다. 그는 오히려 회화 평면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회화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하나의 평면으로 삶의 다채로움과 의식의 생리적인 움직임을 수용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재현이라는 회화의 오랜 숙명을 받아들이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이지현은 시작과 끝이 없는 어떤 지각의 방식을 회화로 구현하고 있다. 드로잉적 요소를 반영하는 초기의 회화들에서부터 거울 작업들이나 액자 구조의 그림, 최근의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하나의 차원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시선과 의식이 이동하며 만들어지는 복수적 인지 구조를 반영한다. 경계면이 맞닿아있는 이질적 차원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회화 평면 안에 공간과 시간의 게임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6년 개인전 작품인 〈Parthenon+PIC_Jenga〉는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물을 젠가 게임과 연결시켜 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파르테논 신전의 벽돌은 게임의 유니트들과 중첩되면서 젠가 놀이의 한 요소처럼 보인다. 그림 속에서 작가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화가로서의 이지현의 모습과 연계된다. 캔버스 위에서 마치 게임하듯 시공간의 차원들을 조합하거나 삭제하면서 독자적인 회화적 시공간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형국은 철저히 주관하는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그 시공간의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작인 〈Erecthion + Jeju Studio〉에서 약간의 변화가 읽혀진다는 점만 언급하고 싶다. 거대한 그리스 신전과 제주도의 화실 공간이 뒤섞인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실내 풍경화라기 보다 초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된 신전 풍경처럼 보인다. 배경의 하늘이나 야외 풍광에 보다 중점을 두어 그렸기 때문이다. 실내 공간과 기물들에 대한 오랜 탐구 끝에 나타난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갈지 흥미롭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