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무지개떡 프로젝트 #2〉, 2004, 캔버스에 유채, 130.3 x 162.1 cm © 김지은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정부조직에서 일시적으로 일하게 된 어떤 큐레이터가 자기 책상에 놓여 있던 유리판 아래, 예의 그 초록색 펠트지를 치워버렸다가 공무원들에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펠트지나 스케일이 그려져 있는 초록색 고무판, “결재를 바랍니다”는 검은색 결재판 등 소위 공무원형 문방구의 모양새, 그리고 각종 고지서나 경고문들의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은, 사실 그 정체나 기원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추측하기로는 조달청 단가에 준하는 싼 가격에, 최소한의 필요와 기능에 따라 제작되었을 이런 물건이나 문서들은, 따라서, 디자인 혁명의 시기에는 확실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아니 취미의 분화가 심화될 대로 된 요즘 같은 때에는 오히려 향수상품이나 키치로 소비될 만도 하다. 그렇게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물건들의 단순한 형태와 진부한 재료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요소들의 조합은 종종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여 이상한 감정의 복합상태로 몰고 가기도 한다.

한편 공공기관의 이런 물건들의 모양과 쓰임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시각과 촉각을 가까이에서 훈육하는 법과 제도의 현현, 곧 일상의 기념비로도 읽힌다. 우훙이 『순간과 영원』에서 말한 대로 기념비라는 게 단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까 그 큐레이터는 어떤 맥락에서는 유리판 아래 보존되어 있던 사물의 기념비성을 훼손했기에 과연 왕따를 당할 만했다!

김지은은 그냥 스쳐지나가기 십상인 거리의 공공 디자인-디자인의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에 대한 꼼꼼한 추적과 그에 따른 정체규명을 작업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우선 김지은의 시야에 잡힌 것은 공사판의 먼지를 막기 위해서 세워진 방진막이다. 우중충한 회색톤 일색이었던 방진막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줄무늬가 선명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는데, 작가는 여전히 개발과 건설의 와중에 놓여있는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이 줄무늬 ‘장막’ 뒤에 사실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라는 환경부의 법령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작가는 이 천에서 잔칫상에 오르는 무지개떡을, 다른 한편에서는 미니멀 작품을, 또 다른 측면에서는 크리스토의 작업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김지은의 그림과 텍스트는 도시에 대한 탐색이면서 동시에 미술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공부의 연장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는 공공영역에서 비주얼 리터러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지 또는 일상을 관통하는 시각적 체험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 지에 대한 꼼꼼한 연구라는 점에서 명실공히 ‘공공미술’의 위상에 대한 보고서라 할 만하다.

문화예술진흥법시행령에 의해서 관리되는 한국의 공공미술이란 고작 건축조형물에 대한 다툼으로 축소되고, 조형물제작이 작가들이나 업체들의 밥그릇 싸움쯤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 젊은 작가는 과연 “시장터 속의 현대미술이라는 어색한 상황”이 어떻게 연출되게 되었는지 그 문맥을 잡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설정이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나아가, 그렇다면 시장터 속의 현대미술, 리어카 옆의 작품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연속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된 각종 법령과 규칙 그리고 그것이 외화된 실물과 그것의 복사물인 이미지, 그 사이 사이를 작가 또는 작가적 상상력이 어떻게 매개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을 갖게 된다. 때로는 건축물의 형태나 위치로 때로는 방음벽의 재료나 텍스추어로 때로는 가로수의 가지치기 방식으로 드러나는 그 결과물들은 너무 완고하다. 지상의 노란 선이나 지하의 표지판들 그리고 하늘의 전봇대 등으로 드러나는 그 결과물들은 거의 전방위적이이다.

그래서 그들이 사실상 몇 가지 변수를 통제함으로써 얻어진 인공적 산물이라는 것을 종종 망각하게 만든다. 이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김지은의 역량은 바로 이런 완전히 딱딱한 것들이 실은 유연한 것임을, 다름 아닌 제도의 이데올로기성 그 자체를, 포착하는 방식과 입증하는 절차에서 확인된다. 오늘날의 작가란, 만약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제도의 완고함과 편재성을 드러내고 그 틈 사이로 파고 들어가 제도의 가소성을 ‘누설’해버리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