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은, 〈새와 우산 Introduction〉, 2015, 혼합재료(나무바닥, 마이크, 스피커), 가변설치 © 전명은

‘본다’는 것의 의미

인간의 감각,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를 맡는’ 것은 인간의 신체와 외부세계를 연결하여 관계를 맺게 하는 지각의 통로이다. 그 중 보는 행위는 ‘백문(百問)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관한 진위여부를 가장 직접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특히나 기 드보르(Guy Debord)의 주장대로 ‘스펙타클의 사회’가 되어버린 작금에 있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시각체제에 대한 전통적인 신뢰는 시각매체의 발달과 영상문화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인간의 경험을 구조화하는데 가장 전위적이면서도 중심부를 차지하는 범주가 되었다. 즉 현대사회에 있어 ‘본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가치를 표방한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처럼 단순명료하지 않다. ‘본다’는 행위를 내밀하게 뜯어보면, 시각 경험은 신체의 일부인 눈으로 소급되어 파편화된 신체로써 나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단순한 지각의 통로를 넘어선다. 시각 경험은 눈에 들어온 자극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기초해 ‘무엇’이라고 보는, 일종의 해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지과학자들은 지각의 단계를 낮은 단계의 지각과 그 보다 높은 단계의 지각, 즉 의식에 의한 지각으로 구분한다.

전자가 카메라와 같은 기계적 인지라면 후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유효할 수 있는, 사회공동체 저변에 흐르고 있는 집합적인 지식체계에 기댄 인지라 하겠다. 진정한 인지란 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앎에 기초한 인지는 여러 가지 기호(sign)를 통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힌트들을 제공한다. 흐린 하늘과 젖은 땅을 통해 비가 왔음을 읽어낼 수 있고, 먼 산에서 연기가 피어나면 우리는 산불을 예감한다. 앎에 기초한 인지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전명은 작가의 기호 읽기

이러한 측면에서 전명은 작가의 작업은 세상에 숨겨진 ‘기호’를 찾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감각과 직결된 기호 읽기’를 시도하는 그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감각의 부재 혹은 극대화된 감각의 추구라는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 감각의 부재에 따르는 최초의 작업은 파리의 이베테(IVT) 배우들과의 사진작업이다. 이베테(IVT)는 청각장애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으로 이들 대부분은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하지만 배우들은 소리가 배재된 자신들만의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향한 창을 항상 열어둔다. 그들의 창구는 귀와 입을 제외한 모든 신체이다. 그 중에서도 수화를 동반한 다양한 제스처는 입을 대신하는 훌륭한 나레이터이다. 작가는 청각장애 배우들의 기호인 ‘수화 퍼포먼스’를 촬영하는 〈나는 본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들이 공유하는 언어세상을 엿보게 된다.

맥박의 제스처로 표현되는 심장,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말하는 구름과 연기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마저도 무리 없이 전달하는 그들의 신체 언어를 촬영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귀에 이명처럼 들리는 소리를 경험하게 된다. 배우들의 ‘수화 포트레이트’를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작가는 침묵하는 손의 제스처에서 소리와 언어를 상상하게 되는 묘연한 경험을 한다.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사진은 학자의 망막〉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9명의 아마추어 천문학자들과 함께한 이 작업은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그들의 망원경을 촬영하고 그 망원경을 통해 드러난 다양한 천문이미지를 병치시켰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순수한 열망과 마주하는데, 수만 혹은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과 별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은 장시간의 노출 촬영은 물론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해 수백 장의 프레임을 겹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망원경은 먼 우주를 바라본다. 그리고 망원경이 찾아 헤맨 행성과 은하, 성단은 렌즈를 통과하여 학자의 망막에 도달한다. 눈알과 같은 망원경, 망막과 같은 렌즈 그리고 그 뒤에 볼 수 없는 것을 보고자 하는 학자의 욕망 앞에 전명은 작가는 “사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망의 역사”임을 적시하며, 사진작가로서 그들의 순수한 시각욕망에 지지를 보낸다.

청각장애 배우와 천문학자의 공통점은 확장된 시각욕망과 그로 말미암은 자신들의 시각세계를 반영하는 독특한 매체를 가졌다는 것이다. 청각장애 배우들은 수화를,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말이다. 그리고 전명은 작가는 두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시각만을 감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작가는 각기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진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블랙박스레코더〉는 7명의 청각장애 청소년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로 작가는 이들에게 3개의 블랙박스를 제시한다. 손을 넣으면 무언가를 만질 수 있는 박스 그리고 검은 종이를 펼치면 나오는 한 장의 사진, 그것들은 각각 촉각과 시각을 매개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블랙박스인 핀 홀 카메라는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엿보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의 사진〉은 소설가 7인과 시각장애 쌍둥이가 함께한 작업으로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경험하는 시각화 과정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시도한다.

7인의 소설가는 시각장애 쌍둥이에게 사진 속의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적는다. 그리고 이것을 쌍둥이에게 읽어준다. 이때 쌍둥이는 그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눈을 통한 것이 아니라 소리와 언어를 매개한 것으로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알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쌍둥이가 접하는 것은 실재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이미지’와의 만남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작가는 더 나아가 이미지는 시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각화의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결국 전명은 작가는 선천적인 청각장애와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각자의 블랙박스에서 꺼내 놓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직면한 질문들에 대한 힌트를 얻어가고 있었다. 소리가 부재한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본다는 것은 수화 (手話)혹은 구화(口話)와 같은 시각화된 언어 일테고,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본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 작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시각화의 과정’이겠다.

작가는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이 부족한 아이들과 함께 치료적 차원의 워크숍을 실시하면서 시각 혹은 청각과 같은 감각의 상실은 결코 부재로 남는 것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전회하여 부재를 상쇄시키고 있음을 발견한다.


효과맨(Foley Artist)의 사물관찰 드라마

경기도미술관의 2015생생화화展 《시간수집자 Time Collector》에 출품한 전명은 작가의 작업, ‘새와 우산’ 시리즈는 그 동안 다루어온 감각과 인지문제에 대해 보다 내밀한 시각을 담고 있다. 발소리를 증폭하여 들려주는 사운드 터널을 통과하면 전명은 작가의 작품이 드러난다. 전명은 작가의 전시실은 사방에 사물의 형상을 담은 사진들과 중앙에 설치된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작업, ‘새와 우산’ 시리즈는 두 단어의 상이함만큼이나 서로 간에 연관성을 찾기 힘든 사물들과 그것을 담고 있는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사물들은 무엇일까?

전명은 작가가 오랜 기간 시각화 과정의 본질에 대해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우연히 효과맨의 작업을 접하게 된다. 효과맨 혹은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라 불리는 이들은 다양한 소품을 활용하거나 직접 행동을 재현하면서 실제와 같은 음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영상 제작 시 배우의 목소리나 음악을 제외한 미세한 주변음은 녹음이 어렵기 때문에 별도로 소리를 제작해야 한다.

작가가 나열하고 있는 사물들은 바로 효과맨들의 작업도구로, 이 사물들은 사람이 걷는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등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 잘 잡히지 않는 소리들을 재현한다. 작가는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그곳에 산재한 폴리 도구들을 촬영하면서 이 사물들이 품고 있는 소리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사물들이 내는 소리는 원래의 쓰임새와는 무관함을 발견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소리들은 양탄자를 박박 문지르면 바람소리로, 밀가루를 채운 고무장갑을 비비면 뽀드득뽀드득하는 소리로 우리를 눈밭에 서있게 한다.

종이장이 팔락거리면 작은 새는 이내 날개 짓을 시작하고, 장우산을 휙휙 폈다 접으면 큰 날개를 가진 새가 겅중거리며 날기 시작한다. 사물들이 내는 소리는 그 대상물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을 지켜보면서 그 동안 만나온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어쩌면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즉 이미지를 상상하는 방법, 상상을 통해 보는 방식은 망막을 통한 시각적 감각에 기대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물의 원래 쓰임과 모양새는 효과맨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효과맨들은 사물을 통해 소리를 얻기 때문에 시각을 주요한 감각 창구로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대한다. 예를 들어 지극히 청각적인 감각에 의존하며 소리의 스펙트럼을 감지해야하는 효과맨은 같은 소리라 하더라도 다양한 설정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소리와 육중한 몸집의 어른이 저벅저벅 걷는 소리는 분명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소리의 차이를 걸러내는 이들의 감각은 마치 에스키모인들이 눈에 대하여 많은 용어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에 대하여 17개 정도의 용어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눈의 많은 단계들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섬세한 청각적 식별능력은 효과맨이 소리를 제작하는데 있어 주요한 안목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뇌 과학자 마크 챈기지(Mark Changizi)는 사회적 의미와 약속이 복합적으로 규합된 고난이도의 소리는 언어이겠지만 그 언어를 분해하다 보면, 마치 문자에서의 알파벳과 같이 소리의 기초 원리인 자연음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자연음은 중구난방의 혼란 속에 존재하지만 나름의 질서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 질서는 바로 때리기, 비비기 그리고 울리기라는 세 가지의 기본음, 마크 챈기지의 언어로 ‘자연의 일차 음소’이다. 효과맨이 서로 다른 사물들에서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러한 원리가 저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효과맨은 이러한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각을 키웠을 것이다.

효과맨의 작업은 결국, ‘시각만을 감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라는 전명은 작가의 오랜 화두에 보다 선명한 답을 던져주고 있다. 효과맨에서 시각은 주의를 끄는 수단으로 쓸모가 없고 오히려 가려진 시야를 시각화 하는 것은 청각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시각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반대로 시각만을 감각하는 청각장애인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오랜 기간 동안 ‘시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시각화는 결국 같은 것을 알기 위한 다양한 감각이 우리에게 존재하고 이를 확장한다면 결국 조금씩은 다르지만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타전한다.


같은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르게 보는 방식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을 직접 마주하지 않지만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알고 있다. 각자의 느낌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그려보라 하면 분명 서로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겠지만 동일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앎에 기초한 인지, 여기에서 과연 시각적 감각이 우리의 앎에 어느 정도 기여할까?

우리는 매우 빈번하게도 시각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위험이라고 감지되지 않을 뿐 우리는 시각장애인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 뒤를 보지도, 인파를 꿰뚫어 보지도, 어둠 속을 들여다보지도 못하지만 머리 뒤에서 나는 소리, 인파 속에서 나는 소리, 어둠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각자의 기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사물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이들이 내뿜는 다양한 기호들로 가득하다. 혹자는 이러한 기호들을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포함하는 실제적 관계’ 안에서 읽을 것을 권한다. 바닥에 찍힌 발자국, 바람에 날리는 깃발 등 기호를 읽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과 지식체계라는 사회적 약속 하에 이행된다. 또한 어떤 형상을 눈을 통해 지각하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심리작용이 개입하고 매개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능동적인 심리작용은 우리의 눈을 트이게 할 뿐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의 전회를 이끌기도 한다. 따라서 본다는 것은 반드시 시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체계 안에서 다른 감각들과 결합된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호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포착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형성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결국 인간은 조금만 숙고한다면 한 두 개의 기호만으로도 세상이 주는 이미지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전명은 작가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탐구하게 된 기호 읽기는 일반적인 사람이 가진 감각 체계를 넘어서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이 선천적인 장애로 인하거나 후천적인 순수한 열망에 의하거나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이들의 기호 읽기는 감각의 코드화로 통일된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모든 감각을 가지고 세상의 코드를 수집한다.

전명은 작가는 시각체제를 포함하는 감각의 인지문제에 집중한다. ‘새와 우산’ 시리즈는 라디오나 영화 등에서 특정 사운드를 재현하는 효과맨(Foley Artist)이 사물과 교감하여 이미지화를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발소리를 증폭하여 들려주는 사운드 터널과 효과음을 얻기 위한 폴리도구 그리고 효과맨의 제스처는 각기 청각을 통한 이미지화, 시각을 통한 청각화를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말한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간의 간극은 망막 위가 아니라 머릿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광학적 미디어인 눈을 통한 시각의 권력화가 팽배한 이 시대에 전명은 작가의 작업은 시각적 감각을 넘어서는 청각 혹은 촉각과 같은 여타의 감각적 요소들을 통한 이미지화 작업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인지과정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감각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찾아 퍼즐을 맞추는 전명은 작가의 사유의 여정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