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EMAP © Ewha Womans University

미디어아트는 종종 기술의 언어로 설명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그것은 늘 감각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리는 EMAP 2026은 바로 그 지점을 다시 환기하는 행사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이마프(EMAP·Ewha Media Art Presentation)는 5월 11일부터 16일까지 캠퍼스 전역에서 개최되며,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잠시 다른 감각의 장으로 전환한다.

올해의 중심 전시 《천만은죽: 기후의 시간》은 기후위기를 단순한 정보나 담론의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대신 ‘물의 순환’을 하나의 전시적 구조로 삼아, 대기와 땅, 인프라와 몸, 바다와 기술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 조건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기후는 멀리 있는 재난의 이름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과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현재의 환경으로 다가온다.

전시 제목인 ‘천만은죽(千萬銀竹)’은 장대비를 은빛 대나무에 비유한 고전적 표현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이 시적인 어감은 오늘날의 현실과 맞물리며 다른 무게를 획득한다. 폭우와 침수,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는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조건이 되었고, 이번 전시는 바로 그 변화된 감각의 배경을 캠퍼스라는 장소 위에 펼쳐 보인다. 작품들은 ECC 밸리와 본관, 중강당 주변 등 야외 공간에서 매일 저녁 스크리닝 형식으로 상영되며, 익숙한 학교의 풍경을 일시적인 미디어 환경으로 바꿔놓는다.

이번 전시에는 17개국 40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매체를 가로지르는 작업들은 기후를 하나의 단일한 메시지로 수렴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여러 감각과 서사, 물질적 조건 속에서 다층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구보타 시게코의 〈SoHo SoAp/Rain Damage〉(1985)를 포함한 약 20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백남준과 저드 얄커트의 〈전자 달 2번〉, 조쉬 클라인, 줄리앙 샤리에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 동시대 미디어아트의 주요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작업들이 함께 놓이며 전시의 밀도를 더한다.

같은 기간 ECC 이삼봉홀에서 열리는 특별 연계 전시 ≪백남준, 비디오스피어 생태학자≫는 이번 EMAP의 문제의식을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 등 백남준의 주요 작업을 통해, 인간과 기계, 자연과 미디어의 관계를 사유했던 그의 선구적 시선을 다시 읽어내는 자리다. 이는 단지 거장의 업적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기후와 기술, 생태와 매체를 둘러싼 질문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되짚으며, 백남준 이후의 미디어아트가 어떤 감각의 지형 위에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페스티벌은 캠퍼스라는 교육 공간을 공공적 감각의 장소로 다시 열어 보이며, 예술이 오늘의 환경과 사회를 어떻게 새롭게 감각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전시를 보고 난 뒤 관객에게 남는 것은 특정 이미지의 인상만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어떤 공기 속에,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지를 조금은 다르게 자각하게 되는 감각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EMAP 2026은 기후를 ‘주제’로 다루는 전시가 아니라, 기후 시대의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감각을 조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에 가깝다. 그리고 그 장면이 미술관이 아닌 대학 캠퍼스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은, 오늘날 예술의 공공성과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학교가 잠시 스크린이 되고, 밤의 풍경이 전시가 되는 6일. 그 시간 동안 이화여대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동시대 미디어아트가 현재를 비추는 하나의 실험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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