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실제 지도에
기록된 수치와 비율, 좌표를 존중하면서 그 위에 자신의 걸음과 기억,
머문 시간, 우회와 반복을 덧붙인다. 그래서
그의 지도에는 객관적 데이터와 개인적 오차가 동시에 남는다. 일반적인 지도 제작이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한다면, 김정은은 오히려 지도 밖으로 밀려난 우회,
지연, 흔들림, 잔여를 다시 불러온다.
〈Self Mapping_공간의 기억, 시간의 조각들(2015.09-2018.08_3year)〉(2019)처럼 장기간 축적된 이동을 하나의 구조로 만드는 작업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의 매핑에서 오차는 수정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장소를 실제로 경험한 몸이 남긴 구체적인 흔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도시와
데이터를 다루는 다른 작업들과 비교할 때 더 분명해진다. 도시 데이터나 지도에 기반한 작업이 통계의
시각화나 사회적 구조의 분석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면, 김정은은 데이터와 좌표를 신체적 경험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걷고, 멈추고, 돌아가고, 사물을 발견하고, 색과 소리를 기억하는 과정이 지도와 같은 비중을
갖는다. 《흐르는 풍경, 쌓인 형태》(우손갤러리, 2025)에서 소개된 것처럼 그의 설치는 구체적인 장소의
역사와 지명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최종적으로는 보폭과 감각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추상적인 조형으로
바뀐다. 정보가 감각으로, 좌표가 움직임으로, 도시의 풍경이 신체적 경험으로 번역되는 과정 자체가 김정은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개인적
이동의 지도 위에 도시의 통제 시스템과 집단적 움직임까지 겹쳐지고 있다. 《스핀-스팟》의 차선, 펜스, CCTV, 회전문과
같은 도시 장치는 이동을 안내하거나 제한하는 구조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회전과
흔들림, 지연과 누락이 발생하는 장치로 바꾼다. 《Gear: 배치전환자》(주석모음집,
2026)에서도 도로를 건설했던 아버지가 남긴 지도책과 도시의 연결선, 익명적인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입체적 레이어로 변환된다.
초기의 ‘나의 이동’이 점차 ‘사라진 도시의 이동’,
‘제한된 이동’, ‘추적되는 이동’, ‘여러
사람의 교차하는 이동’으로 확장되면서, 매핑은 개인적 기록을
넘어 도시를 작동시키는 힘과 관계를 관찰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종이 지도와 보폭에서
시작해 키네틱 조각과 사운드, 알고리즘과 감시 장치까지 이어진 변화는 매체의 확장이라기보다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지나가고, 무엇이 그 이동을 기록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다른 방식으로 갱신해온 과정에 가깝다. 김정은의
작품세계는 지도라는 형식 자체보다 이동과 시간, 기술과 신체가 만나는 경계에서 새로운 감각의 지형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