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b. 1983)은 도시와 그 안의 공간이 지닌 혼종성과 유동성에 주목하며, 사라진 시간과 장소의 흔적을 이동의 흐름과 맵핑(mapping)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이동의 맵핑은 신체의 경험과 기억에 남은 흔적을 공간적 형태로 옮기고, 이를 실제로 이동 가능한 부피를 지닌 사물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물리적 현실과 가상 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과 사건을 따라 시간성과 장소성이 도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얽히고 중첩되는지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한다.


《prototype overlay mapping》 전시 전경(킵인터치, 2024) © 김정은

김정은은 도시를 직접 걷고 신체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포착한, 수치나 좌표로 환원하기 어려운 감각과 도시의 잔여적 요소들을 지도화한다.
 
일반적인 지도는 공간을 체계적으로 배열하고 이동 경로를 효율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를 소거하고 배제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 바깥에 남겨진 무목적적인 움직임, 우회와 반복, 비정형적인 감각에 주목한다. 이를 새로운 지도의 범례로 삼아 기존의 지도 체계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도시의 경험과 기억을 감각적인 지도로 다시 구성한다.


김정은, 〈Floating Place; mapping〉, 2015, 트레이싱지, 연필드로잉, 190x10.5cm © 김정은

2014년부터 작가는 ‘이동’을 기반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2015년 개인전 《Self;mapping_이동의 기억, 기억의 이동》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동 경로나 기억에 남는 장소들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감각 지도를 제시하였다.
 
김정은은 사적인 경험과 기억이 얽혀 있는 장소들을 지도에서 찾아 발췌하고 변형한 후, 드로잉과 일기를 담은 책, 종이를 오려낸 구조물, 에폭시 입체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수치를 변형하지 않은 실제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나, 작가는 지도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신체의 경험과 중첩되는 기억의 흔적들을 표상하여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주관적인 지도를 만들어냈다.


김정은, 〈셀프 맵핑 141003-150405〉(부분), 2015, 트레이싱지, A4 인쇄물 6권, 연필 드로잉, 가변설치 © 김정은

예를 들어, 〈셀프 맵핑 141003-150405〉(2015)은 작가가 일상생활을 위해 이동한 경로들을 지도에서 발췌하고 선으로 표현하여 여러 권의 책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동선을 기록하는 것과 더불어 얇은 트레이싱지 한 장 한 장에 해당 장소를 이동하며 겪은 소소한 일들과 감정들을 일기처럼 담아냈다.
 
트레이싱지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재료 중 하나다. 아래가 은은하게 비치는 얇고 반투명한 트레이싱지의 물리적 속성은, 특정 장소에 관한 기억들이 서로 중첩되고 흐려지기도 하며 현재의 상황에서 재조합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정은, 〈부유하는 섬-불안한 좌표〉(부분), 2015, 모눈종이 컷팅, 에폭시, 가변설치 © 김정은

장소에 대한 탐구는 입체 작품 〈부유하는 섬-불안한 좌표〉(2015)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이동했던 공간들을 지도에서 추려내고 에폭시와 모눈종이 페이퍼를 이용하여 마치 건축 모형처럼 배치하였다.
 
지명과 번지를 명시하였으나 무작위로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시 지형도가 펼쳐진다. 푸른색 에폭시 위의 입체물들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을 상징하며, 이는 ‘마음의 바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김정은, 〈Flowers Map 1〉, 2015, 트레이싱 모눈종이 15장 핸드컷팅, 라이트박스, 59x45cm © 김정은

또한 김정은은 장소에 관한 아련한 기억과 감정을 ‘빛’을 통해 강조하기도 하였다. 가령, 〈Flowers Map〉(2015)은 여러 장의 트레이싱지에 지도를 본뜬 후 그 위에 꽃문양을 그려 넣고 겹쳐서 라이트 박스에 넣은 것이다. 이로써 꽃이 피고 지듯, 장소를 이동함에 따라 생각이 변화하고 기억이 축적되는


김정은, 〈Self Mapping_공간의 기억, 시간의 조각들(2015.09-2018.08_3year)〉, 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 김정은

앞서 살펴본 전시 제목인 ‘셀프 맵핑(Self Mapping)’이 시시하는 바와 같이, 작가의 지도화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신체와 경험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보폭을 기록의 기본 단위로 설정하고 걸음의 수를 기록하는 것, 본인이 선택한 길의 건물을 작은 입체로 표현하는 것, 특정 부분의 색을 추출하여 기록하는 것 모두가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을 기준 삼는다.
 
따라서 매일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소요된 시간과 잠시 머문 장소, 몇 보를 걸었는지에 따라 오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오차로 인해 오히려 가장 사실적인 지도가 만들어진다.


《BLUE DOT :37’35’02.8”N 127”01’21.6”E》 전시 전경(SeMA 창고, 2018) © 김정은

장소와 자신의 신체가 맺는 관계를 탐색하는 김정은의 맵핑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어 왔다. 2018년 개인전 《BLUE DOT :37’35’02.8”N 127”01’21.6”E》에서 처음 선보인 ‘BLUE DOT’ 시리즈는 이동 기록을 아카이빙하는 데서 출발해 영상, 입체, 키네틱 요소를 공간과 결합하며 작가 자신의 ‘셀프 맵핑’을 다층적으로 구현한다.
 
‘BLUE DOT’ 시리즈는 약 3년에 걸친 작가의 이동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동 경로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정보는 지워지고, 각 달의 기록은 하나의 추상적인 입체 형태로 변환된다. 위성으로 추적된 이동의 궤적은 서로 다른 크기와 강도의 푸른 원으로 나타나며, 마치 하나의 ‘우주적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전환된다.
 
작품은 푸른색의 면을 서로 연결하거나 지탱하는 가느다란 구조체가 움직이는 키네틱 설치를 비롯해, 우주에서 날아와 대기권을 통과하며 검게 그을린 운석을 연상시키는 오브제, 그리고 작가의 활동 궤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 등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BLUE DOT 36”》 전시 전경(온그라운드2, 2018) © 김정은

이러한 탐구는 2018년 온그라운드2에서 열린 개인전 《BLUE DOT 36”》에서 더욱 확장된다. 이 전시는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도시와 공간의 정보가 신체와 기억을 거치며 변형되고 재구성된 결과를 하나의 새로운 조형적 공간으로 제시한다. 지도에서 읽어낸 도시의 정보가 작가의 경험을 통해 내적인 변화를 거쳐 다른 형태로 번역된 것이다.
 
전시에서는 사운드와 키네틱 요소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움직임을 통해 작품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서로 다른 속도와 크기로 움직이는 요소들은 표면적으로는 혼돈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서는 반복과 관계를 통해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드러난다.
 
이러한 구조는 다양한 방식과 층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이 제도와 범주라는 사회적 규칙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김정은은 이처럼 이동과 경험의 기록을 조형적 언어로 변환함으로써, 도시를 고정된 공간이 아닌 신체와 기억, 시간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장소로 바라본다.


김정은, ‘교차맵 프로젝트’, 2020, 《Cre8tive Report》 전시 전경(OCI미술관, 2020) © 김정은

한편 2020년에 발표한 ‘교차맵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서울의 사리진 길을 따라가보며, 현재는 사라지고 없지만 시대적 변화로 인해 잊힌 길들의 역사를 추적해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과거 인간이 만들었던 길의 기록을 바탕으로 김정은은 공간이 지닌 시간의 함축성을 가시화하며, 이를 통해 공간에 내포된 역사의 내러티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작업은 사라진 물의 길을 리서치하고 지도 위에 표기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과거에는 하천이었지만 현재는 도로가 된 물 길을 따라 걸으며, 이동 경로에서 수집한 자연물과 인공물을 작품에 결합한다. 그가 모은 이동, 장소, 기록, 시간, 공간의 축적물은 작품 안에 쌓이고 모이며, 시간의 레이어를 만든다. 


《도르르 도르르르(Dorr dorrrr)》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2) © 인천아트플랫폼

그리고 2022년 개인전 《도르르 도르르르(Dorr dorrrr)》에서 김정은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리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좁아진 이동의 경로와 그 안에서 새롭게 포착한 일상의 풍경에 주목했다.
 
작가는 팬데믹 기간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사물들을 움직임을 지닌 조각으로 재구성하고, 사물과 그것이 놓인 공간에서 채집한 소리를 사운드와 조형적 요소로 시각화했다. 이를 통해 ‘이동’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조각적 태도로 바라보고, 이동과 움직임이 발생하는 과정을 조형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전시 제목인 ‘도르르 도르르르(Dorr dorrrr)’는 무언가가 굴러가는 움직임과 그때 발생하는 소리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동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장소로부터 수집한 돌과 같은 사물들을 레일 위에 굴려 마찰음을 발생시키고, 각각의 장소를 상징하는 사물과 신체의 이동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하나의 관계망으로 엮어낸다.
 
이처럼 김정은은 서로 다른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며 전시장 안에 새로운 시각적 지형을 구축한다. 작품으로 전환된 버려진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과정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잠시 머무는 일상의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익숙한 장소의 경계와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이끈다.


《스핀-스팟》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5). 사진: 이의록. © 씨알콜렉티브

나아가, 최근의 개인전 《스핀-스팟》(2025)에서 작가는 사적 서사와 특정 사건이 충돌하는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도시의 흐름을 구획하거나 시선을 통제하는 도시적 장치들(차선, 펜스, 회전문, 임시 구조물)과 CCTV 매체를 감각적 조형으로 치환하였다.
 
이는 감시와 통제가 촘촘하게 배치된 도시 표면에서 감각이 스며들고 누출되는 다공성의 지대를 감지하는 시도로, 충돌하는 리듬과 교차하는 신체의 응답이 발생하는 장으로 작동한다.
 
김정은은 이 전시에서도 파란색을 도시의 주요 색상으로 채택하였다. 그 이유는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는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현상에서 착안한 것이다.
 
《스핀-스팟》에서는 교통선, 펜스, 깃발, 안전복, 응원봉 등 거리 현장의 색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색을 정보의 기호를 넘어 긴장과 에너지, 정서적 여운을 담는 조형적 제스처로 구현한다.


김정은, 〈드리프트 서킷 PM 110-2〉, 2025, LED TV, 편광필름, 아크릴 패널, 모터, 스틸, 12분 단채널 반복영상, 사운드, 120x90x25cm. 《스핀-스팟》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5). 사진: 이의록 © 씨알콜렉티브

작가는 오늘날의 감시 시스템의 구조를 차용하되, 그 기능을 비틀어 통제되지 않는 흐름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들이 파고들 틈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드리프트 서킷〉(2025)에서는 CCTV에 활용되는 블롭 트래킹(blob tracking) 알고리즘을 차용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파란 점들은 사람의 움직임을 식별하는 대신, 마치 식별을 거부하듯 흐릿하게 흔들리며 화면 위를 떠돈다.
 
이 파란 점들은 누군가의 흔적이자, 그들이 서로 교차했던 자리에 남겨진 움직임의 응축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편광 필름의 각도에 따라 파란 점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완전히 포착되지 않은 인식의 잔상만이 장치 위에 유령처럼 남는다.
 
즉, 감시 장치의 외형과 작동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감시는 끊임없이 어긋나고 실패하도록 만든다.


김정은, 〈스피닝 어라운드〉, 2025, 《스핀-스팟》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5). 사진: 이의록 © 씨알콜렉티브

나아가, 〈스피닝 어라운드〉(2025)의 끊임없이 회전하는 원형 이미지는 정보값의 단면을 시간의 결로 분해하고 교차시키며, 어긋남과 반복을 기반으로 새로운 구조를 직조한다.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몸들이 각기 다른 풍경을 경험하듯, 비동기적인 시간과 감각은 하나의 화면 위에 겹쳐지며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미세한 떨림은 전시장 전체로 확장되어 조형물과 장치, 이미지와 동선이 서로 얽히는 공간을 형성한다. 게임 스테이지처럼 구성된 전시장에서 관객은 정해진 경로를 따르거나 이탈하고 되돌아오며, 목적지에 도달하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통과하고 감각하게 된다.
 
특히 작품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거리에서 감지된 에너지의 진동을 공간 안에서 다시 활성화하며, 도시의 열기와 긴장의 잔향을 관객의 몸으로 환기한다.


김정은, 〈트레이서 III〉, 2025, 스틸, LED 손전등, 모터, 115x115x165cm. 《스핀-스팟》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5). 사진: 이의록 © 씨알콜렉티브

이렇듯 김정은의 작업은 현재 장소에 사라진 기억, 사라진 공간, 사라진 시간을 추적하며, 자신의 기록물 속에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드러나게 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삭제되거나 무시된 경계와 지형, 추적되지 않는 감각을 다시 조직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작가의 ‘지도 그리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해 더욱 자유롭게 상상해보고, 이에 숨겨진 다층적인 서사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모든 문제는 관계에서 나오듯, 어느 하나의 힘이 다른 것 보다 커졌을 때 강제성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발생하는 반작용들이 다른 영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제들은 사회적 개념과 동시대적 현상들과 연결되어 나의 작업으로 확장된다." (김정은, 작가 노트)


김정은 작가 © 인천아트플랫폼

김정은은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조소과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스핀-스팟》(씨알콜렉티브, 서울, 2025), 《prototype overlay mapping》(킵인터치, 서울, 2024), 《도르르 도르르르_Dorr dorrr》(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2), 《교차맵 프로젝트: Walk On The Water_01》(인스턴트루프,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우리의 여름에게》(경기도미술관, 안산, 2026), 《흐르는 풍경》(우손갤러리, 대구, 2025), 《퍼블릭아트 뉴히어로》(K&L 뮤지엄, 과천,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 《채널: 입자가 파동이 될 때》(성산아트홀, 창원, 2021),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금호미술관, 서울, 2017)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정은은 인천아트플랫폼(2026, 2022), 금천예술공장(2025),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20),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9) 등의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인천문화재단, OCI미술관, 코오롱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