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b. 1982)는 기존의 언어와 인식 체계로는 구현이 어려운 이해의 공백을 페인팅과 입체의 물성을 빌려 메우는 작업을 해왔다. 그에게 이해의 공백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매번 새로운 차이가 생성되는 장소이자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겹쳐지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특히 구나는 개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결핍을 내포한 신체의 한계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하고, 그 안에서 열망과 서늘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신체의 잠재력을 포착하고자 한다.


구나, 〈마이블랙브라운의 펑키마더수심〉, 2023, 혼합매체, 50.5x145x180.5cm / 〈마이블랙브라운의 펑키파더수심〉, 2023, 혼합매체, 157x115x105cm © 구나

구나의 작업은 머리로 마음을 이해하는 것들을 다른 이에게 언어를 통해 전달하기 어려운 순간들, 그로 인해 생겨난 비어 버린 말들의 자리를 천천히 풀어나가며 번역하는 과정에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작가는 이미지 안에서 발견한 멜랑꼴리하고 모호한 대상들은 캔버스 위로 옮기고, 남겨진 것, 쓰러진 것, 그리고 되돌아 올 수 없는 것, 지금 붙잡아 놓지 않으면 사라질 대상들을 설치 작업으로 고정시킨다. 즉, 그의 작업은 이처럼 불규칙하고 형태가 없는 어떤 느낌을 포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를 통해 구나는 원래의 자리에서 탈각하여 부서진 것들을 자신의 세계 안으로 불러들여 정의 내릴 수 없는 모자라고 불완전한 존재들의 실존을 드러낸다.


《비스듬한 뼈와 늘어진 말》 전시 전경(오뉴월 이주헌, 2017) © 구나

2017년 개인전 《비스듬한 뼈와 늘어진 말》에서 작가는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이 가진 근원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뼈, 엉덩이, 머리카락, 가죽, 돌, 불면증과 같은 존재의 파편들은 그의 작업에서 전체를 이루거나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갈라짐(〈갈라진 엉덩이〉(2017)이나 늘어짐으로 남아 온전함의 허구성을 증언한다.
 
〈나비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룬 밤들〉(2017)의 돌과 뼈로 이루어진 잔해들은 모든 의미를 박탈당한 상태, 즉 재현 불가능한 파편들로 남아 있다.


《비스듬한 뼈와 늘어진 말》 전시 전경(오뉴월 이주헌, 2017) © 구나

이러한 구나의 작업 속 존재들은 어떠한 삶의 의미로 편입되지도, 완전히 사라져 ‘없음’에 이르지도 않은 채, 그 경계에서 ‘그저 거기 있음’을 드러낸다.
 
전시 서문에서 민승기 교수는 “의미가 포착할 수 없는 ‘그저 있음’이, ‘비스듬함’과 ‘늘어짐’이라는 틈이 의미의 구멍이자 기원”이라고 말하며, 구나의 작업이 이러한 의미의 구멍으로서의 기원을 드러낸다고 평한다.


《너와나와너와나》 전시 전경(기체, 2019) © 구나

이러한 의미의 공백들을 입체와 회화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대상과 주체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연결되는 듯 하다가 다시 파편으로 흩어지는 불연속성을 만들어 낸다.
 
그 예시로, 2019년 개인전 《너와나와너와나》는 하나로 이어진 듯하다가도, 끝내 엇갈리며 부조화하는 순간들을 회화와 공간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너와나와너와나》 전시 전경(기체, 2019) © 구나

구나는 이 전시작들의 중심 소재로 들이나 강의 풍경, 나아가 주변 혹은 다른 작가 작품(권진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등)의 인물들을 택했다. 대상과 형태의 선명함이 도드라진 전작과 달리, 이들은 화면의 절제된 톤과 형태 안에서 경계 없이 연결된 듯하다가도 다시 파편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띈다.
 
또한 전시장을 하나의 몸으로 가정해 위치시킨 공간 설치 작업들은 기울어진 척추 〈화이트 본〉(2019)과 〈화이트 본 프롬 어드레스〉(2019)로 나눠진다. 그리고 이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부분 또는 전체로 연결돼 보이지만, 결국 엇갈리고 흩어진다.


구나, 〈화이트 본 프롬 어드레스〉, 2019, 혼합매체, 82x70cm © 구나

작업들 고유의 개별성은 작업 전반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된 채도와 표면을 물결처럼 처리하는 방식이 의도한 것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져 분명한 방향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다시 모호함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된다. 그의 작업이 가리키는 ‘분명한 지시’는 언어적, 이성적 틀 너머의 무엇이기 때문이다.


《스틸라이프 인 드림드림드림》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2) © 구나

한편, 2022년 개인전 《스틸라이프 인 드림드림드림》에서 구나는 실체가 없음에도 때로는 현실보다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꿈’의 속성을 좇아 형상을 만들었다. 이는 명확한 외곽선을 지닌 하나의 형체를 재현하기보다, 끊임없이 사라지려는 모호한 잔상을 붙잡고 더듬으며 비정형의 덩어리를 만들어가는 태도로 나타난다.
 
그가 작업의 대상으로 삼은 장면들은 그가 또렷이 본 것이 아니며, 모니터 화면 속의, 유리창 뒤의, 등을 돌린 사람의, 혹은 먼 과거에 누군가가 그려 놓았던, 꿈의 장막 뒤의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이는 보았거나 보았다고 믿는, 유령처럼 희미한 기억의 잔상들이다.
 
금세 사라질 찰나의 경험을 느리게 되짚고 되새기는 그의 작업 방식은, 대상을 오래 응시하며 외형 너머의 의미를 읽어내고자 하는 정물화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스틸라이프 인 드림드림드림》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2) © 구나

그가 만들어내는 모양들은 꿈속 풍경처럼 경계가 불분명하고 일그러져 있다. 박지형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표면과 덩어리를 두고, “그가 체득한 정보의 근원적 가치들이 이미지의 껍데기로부터 빠져나와 비가시적인 것이 되어 작가의 몸으로 체화된 이후에 남은 부산물”이라 설명한다.
 
따라서 구나의 작업은 대상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에 목적을 두기보다, 그 대상을 감각하고 내적으로 소화해 내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구나는 외부에서 유입된 혼재된 자극으로부터 자신의 지각을 끊임없이 분리하고 걸러내며, 그 과정을 통해 남겨진 순수한 이미지와 감각들을 엮어 주름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나, 〈등허리물결 오버 아이보리 힐스〉, 2023 / 〈화이트 본〉, 2023, 《눈은 멀고》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3) © 두산갤러리

또한 구나의 작업에서 신체의 일부를 다룬 작품들은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질병에 대한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구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뼈에 문제가 있었고, 턱과 목을 받치는 큰 철제 보조기를 착용하고 생활해야 했다. 척추의 휨이 목으로, 그리고 심장 판막으로까지 영향을 미치며 큰 수술을 받기도 했다.
 
모서리로 서서 옆으로 누운 형상을 보여주는 〈화이트 본〉(2019-2023), 수평으로 누운 면이 여러 개의 조심스러운 다리들로 받쳐 올려진 〈등허리물결 오버 아이보리 힐스〉(2019-2023) 등은 어떤 평평한 몸, 그리고 틀어진 뼈에 대한 작가의 신체적 경험을 반영한다.


구나, 〈등허리물결 오버 아이보리 힐스〉, 2023, 혼합매체, 500x68x51cm © 구나

또한 이러한 조각은 표면의 무수한 흔적과 색이 처음과 달리 변한 상태, 휘거나 갈라진 부위를 드러냄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인 온몸으로 맞이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견고해 보이는 외형에는 개입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무쌍한 표면은 세월을 담아내는 사람의 무른 피부를 떠오르게 한다.


구나, 〈상아뼈그레이보철정물화와 상아빛브라운블랙초상화, 그리고 블루블루스물빛실물〉, 2024, 혼합매체, 가변설치 © 구나

나아가,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발표한 〈상아뼈그레이보철정물화와 상아빛브라운블랙초상화, 그리고 블루블루스물빛실물〉(2024)은 ‘아픈 몸’을 전후로 결핍을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는 태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탐구한다.
 
작가는 몸에 밀려드는 고통을 하나의 수수께끼이자 ‘내부의 심야’로 바라보며, 이를 통해 신체의 내면에 잠재된 감각과 경험을 드러낸다.


구나, 〈블루블루스물빛실물〉, 2024, 돌, 물, 석분토, 107x122x41cm © 송은문화재단

작품은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 이후 비동일한 객체들이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성을 고찰하며, 몸의 심야에서 나타나는 짐작과 실천, 와해와 돌봄, 애수와 차가움 등 서로 대립하는 속성들 사이를 진동한다.
 
작가는 세 개의 조각에서 이질적인 물성을 가진 재료를 결합해 몸의 양가성을 물질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 살갗의 낯선 질감, 몸 안의 어두운 줄기와 통로, 그곳을 흐르는 물과 같은 신체의 이면을 가시의 영역으로 조심스럽게 위치시킨다.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 국립현대미술관

이렇듯 구나는 자신의 아픈 몸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 개의 상반된 마음과 약한 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전에서 선보인 두 개의 작품 〈레드브라운캐비닛 안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2025), 〈레드브라운선반 위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2025) 또한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구나, 〈레드브라운캐비닛 안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 2025, 혼합매체, 가변설치 / 〈레드브라운선반 위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 2025, 혼합매체, 가변설치. 사진: 고정균. © 구나

〈레드브라운캐비닛 안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와 〈레드브라운선반 위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는 여러 개의 조각이 모여 하나의 몸을 만드는 작품이다. 조각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몸과 몸을 겹친 모습을 띄며, 사람의 몸과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몸을 닮은 조각을 캐비닛 같은 장 안에 넣고, 선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서로 다른 것들을 모아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 낸다.


구나, 〈아이보리수레 안 블루스오르간댄스〉, 2025, 나무, 섬유강화플라스틱, 섬유강화플라스틱 접합제, 레진, 석분 점토, 오일, 141x67cm © 구나

한편, 회화 작품인 〈아이보리수레 안 블루스오르간댄스〉(2025)는 뼈와 몸을 가진 그림이다. 작가는 그림 한쪽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다른 재료를 넣은 후 그림의 겉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구멍에 넣은 재료는 단단해지고, 마치 그림의 뼈처럼 드러난다. 그 주변에는 다양한 모양이 그려져 있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몸을 떠올리게 한다.


구나, 〈레드브라운캐비닛 안 상아뼈콜드스킨제스처〉, 2025, 철, 섬유강화플라스틱, 섬유강화플라스틱 접합제, 석분 점토, 와이어, 가변설치. 사진: 고정균. © 구나

이렇듯 구나는 아픈 몸에 대한 자전적인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언어로 표현하거나 인식 체계로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과 순간들을 그림과 조각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들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표면을 가지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기대거나 포개지며 계속해서 존재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처럼 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을 탐구하며, 비균질한 신체의 잠재력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는 얇아지며 푸석하여지고 쇠약과 함께 하여도 고개를 방긋 돌려 손을 흔들어주는 몸짓으로 불멸의 순간이 터트려 진다. 그 부서지는 빛 안에서 다시금 회복 지어지며 다리를 세우는 어제와 오늘이 있었다." (구나, 작가 노트)


구나 작가 © 인천아트플랫폼

구나는 수원대학교에서 조소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스틸라이프 인 드림드림드림》(아트스페이스 보안2, 서울, 2022), 《쌍둥이의 목차》(박수근미술관파빌리온, 양구, 2020), 《너와나와너와나》(기체,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기울어진 증거들》(디스위켄드룸, 서울, 2026),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5),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4), 《눈은 멀고》(두산갤러리, 서울, 2023), 《하나의 점, 모든 장소》(금호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구나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6),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2023-2025), 금호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20)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대전시립미술관 및 인천미술은행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