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수, 〈당신의 눈앞에〉, 2019, 360도 VR 컴퓨터 생성 영상, 전망대, EL 테이프 설치, 2분 30초 © 이병수

이병수의 신작 전시 《이음새없는세계 Welcome to the Seamless World》를 오해하는 첩경 중 하나는 이를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물신주의적 사례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전시장 지하의 가장 큰 공간에 배치된 VR 작업인 〈당신의 눈앞에 Before Your Very Eyes〉(2019)를 전시의 제목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는 식으로 구현된다. 다시 말해 ‘가상 현실 Virtual Reality’을 구현한 후자는 ‘이음새 없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거나 물질 없는 비물질적 정보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오해만큼 이번 전시에서 동떨어진 것도 없다. 어떤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아이러니한 것인데, 이는 〈당신의 눈앞에〉에 쓰인 VR 헤드셋에서부터 감지 가능한 것이다. 이 작업이 VR작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머리에 쓰고, 일종의 착탈식 테이핑을 통해 작동하는 대부분의 HMD(Head-Mounted Device)와 달리, 〈당신의 눈앞에〉가 의존하는 VR 헤드셋은 대단히 기본적이다.

거기엔 그 어떤 스트렙이나 끈도 없다. 전시 전 가진 사전 미팅에서 이는 작가가 고백했듯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단순히 말해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여기엔 또 다른 아이러니가 수반되는데, 그것은 관객들이 거추장스러울 거라 생각했던 일종의 ‘장치’를 제거한 이 ‘장치’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전시기간 동안 직접 목격하고 여기에 지인들의 관찰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적지 않은 수의 관객들은 작품 초반에 계단 구조물에서 내려오곤 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작업이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일수도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관객들은 문제의 플라톤 두상이 등장하기 전, 출렁이는 물결만이 재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내려와 버렸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작가가 ‘거추장스럽다’고 간주해 제거했던 HMD, 아니 ‘끈’의 구속성이 중요해진다. 결론의 일부를 미리 앞당겨 말해두자면, 이러한 구속성은 예를 들어 똑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느냐, 아니면 자신의 랩탑이나 스마트폰에서 파일로 보느냐를 가르는 차이와 다르지 않다. 담론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이는 이른바 ‘미디어 고고학 media archeology’의 문제설정으로서 한때 프리드리히 키틀러와 같은 이들이 디지털을 통해 사라질 것이라 단언했던 미디어의 물질적 장애물들, 아니 장애물로서의 미디어 또는 매체라는 문제설정을 다시 소환한다.

도입 초기, 그저 관객이 다시 보고 싶어하는 장면으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장치로 고안되었던 DVD와 영상 클립의 챕터 설정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작가 auteur’로서의 영화감독들의 ‘편집’권과 권위를 뭉게는 기능을 하게 되었던 것처럼,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끈’의 구속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이러한 물질적 구속성을 분명히 자의식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중구속 Double Bind〉(2019)이다. 여기에서 역시, 준비된 망원경 형태의 장치 안에서는 VR 작업이 상영되지만, 그 ‘가상적’ 이미지는 해당 관람 장치는 물론, 바깥에서 해당 영상을 관람하는 관객의 육체와 정확하게 연동하면서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 사람이 아니라 둘이라는 데에 있다.

두 개의 망원경형 VR 관람장치가 180도로, 즉 두 명의 관객이 함께 할 경우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붙어 있기 때문에, 한 명이 한 쪽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다른 한 명 역시 이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서치라이트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대상이 보이거나 안 보이는 VR 작업과 흥미로운 긴장관계를 만들어내는데, 현실공간에 있는 관람객(들)의 육체가 제대로 조응하지 않으면, VR 영상 자체를 제대로 향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전시는 《이음새없는세계 Welcome to the Seamless World》는 커녕, 세계 여기저기에 불거져 있는 물질적 이음새, 또는 솔기를 그 어떤 것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물질적 한계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은 해당 VR 영상을 보다 보면 등장하는 문장이자 일종의 농담인 〈선을 넘으려면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고 착용하십시오 Buy and Wear better gear if you want to cross the line〉(2019)을 통해 다시금 물질적으로 구현된다. VR 영상 자체가 일종의 low-tech, 즉 최첨단이라기보다는 ‘보급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이를 5개의 디지털 프린트로 만들어 전시장 1층에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당신의 눈앞에〉와 같은 전시의 핵심 작업조차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뜬 관객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해당 작업이 〈이중 구속〉 안의 VR영상 중 일부를 디지털 사진의 형태로 출력했다는 것을 파악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 것인가 의심해 볼 수도 있다. 이는 해당 디지털 프린트들이 아래의 작업들 이후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즉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전에 ‘사진’의 일환으로 전시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전시의 소개가 모호했기 때문이라거나, 작가의 의도가 실패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당신의 눈앞에〉 근처에 ‘헤드셋을 쓰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어떤 물체가 나타날 것이니 그전에는 벗지 마시라’는 설명서가 있었다면 어떨까? 그것을 끝까지 볼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때 우리가 위에서 논의했던 ‘끈’의 유무와 그에 따라 연동하는 ‘VR 효과의 물질성’이라는 문제는 도드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음새없는세계 Welcome to the Seamless World》라는 전시의 제목과 자신이 본 VR영상을 ‘이음새 없’이 연결시키고 별다른 감흥 없이, 즉 ‘또 다른 VR 전시로군‘이라는 생각을 되뇌며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수의 이 전시는, 역설적으로 VR의 최첨단이 아니라 그것의 ’보급형‘ 테크놀로지의 구현을 통해 VR이 만들어내는 ’도약 leap’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당신의 눈앞에〉의 정점이라 할 플라톤의 두상이 바다 표면에 떠있다가, 수면 아래로 잠기는 순간을 생각해보라. 나는 이 지점에서 내가 좀 전에 별다른 생각 없이 올랐던 철제 구조물 계단의 난간을 꼭 잡는 나를 의식했는데, 이는 아주 우스우면서도 두려움을 동반하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전자의 정동은 바로 옆 구석에 배치된 〈우울한 렌더링 Gloomy Rendering〉(2019) 영상을 볼 때 강화된다. 이에 반해 후자의 정동은, 만약 내가 쓰고 있던 헤드셋이 일반적인 HMD처럼 스트랩으로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다면 그리 강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경우, 소위 ‘이음새 없는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또 헤드셋을 쉽게 떼어낼 수 없는 VR 작업이라면, 관객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다 실수로 떨어질 수도 있을 구조물 높이로 올라가는 설정 자체가 제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병수가 고안한 ‘착탈식 VR 헤드셋’은, 영상 속의 자신과 두상이 물에 잠기는 순간 관객이 구조물을 통해 지표면으로부터의 느끼게 될 높이를 ‘몰입형 HMD’보다 역설적으로 더욱 더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전시장 초입에 배치되어 있으나 어떤 의미에서 전시장을 나서는 길에 (다시) 보게 될 〈스크린 케이브〉(2018)를 통해 일종의 수미쌍관을 이루게 된다. 오래된 모델의 수상기 안에서 세 명의 버추얼 캐릭터가 스크린의 사각형 안에 갇힌 것처럼 돌아다닌다. 버추얼한 대상 혹은 존재가 오래된 수상기라는, 물질적인 장애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이 단순한 작업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VR의 효과 자체가 물질적인 이음새의 부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도드라짐을 통해 강화되거나 구현된다는 역설을 효과적으로 웅변한다.

나는 이병수의 이번 전시가 최근 몇 년간 전시장을 관류하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던 일련의 VR전시들을 완전히 다음 단계로 이동시키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다음 전시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