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입규는
최신 기술을 직접 과시하거나 기술적 효과를 전시장으로 가져오는 대신, 디지털 세계의 문법을 가장 비효율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다시 수행한다. 많은 뉴미디어 작업이 기술의 속도, 몰입감, 상호작용성에 집중한다면,
장입규는 그 반대편에서 사물의 무게, 노동의 시간, 삭제되지
않는 잔여감, 관객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시점의 불안정성을 강조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 자르고, 붙이고, 지우고, 되돌릴 수 있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그 명령이 톱질, 사포질, 채색, 조립, 운반 같은 몸의 노동으로 바뀐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를 다루면서도 기술적 이미지의 매끈함을 의심하게 만드는 힘을 얻는다.
작업의
흐름을 보면, 장입규는 초기의 발견된 사물과 편집 행위에서 출발해, 점차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시간성, 플랫폼적 신체, AI 명령 구조로
관심을 확장해왔다. 〈Cut and Paste〉와 〈Delete〉가 사물을 이미지처럼 편집하는 단계였다면, 〈Social Network Service〉는 인간의 신체가 네트워크 이미지 안에서 어떻게 분할되는지를 다뤘다.
〈timeline(clock)〉,
〈study of layers〉, 〈desktop〉, 〈modern
tools〉, 〈block chain〉은 디지털
편집 도구와 시스템 자체를 현실화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디지털 강해》의 〈edited space (floating images)〉와 〈tangled
timeline〉은 디지털 세계의 파편화된 시간과 공간을 전시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비밀
명령문》에서는 이제 보이지 않는 명령과 AI의 판단 구조까지 작업의 대상으로 들어오며, 디지털 이미지의 문제가 단순한 시각 경험을 넘어 사회적 판단, 윤리,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비슷하게
디지털 이미지나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작가들과 비교할 때, 장입규의 작업은 기술의 내부에서 이미지를 생성하기보다, 기술의 명령을 현실의 사물에 억지로 적용할 때 생기는 어긋남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의 작업은 세련된 미디어 장치로 디지털 환경을 재현하지 않고, 오히려
사물의 부피와 실패, 물리적 흔적을 통해 디지털의 전제를 느리게 해체한다. 그러면서도 조각, 사진, 회화, 설치, 뉴미디어가 한 화면이나 한 공간 안에서 충돌하도록 구성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매체 혼합이 아니라, 우리가 ‘본다’고 믿는 이미지가 어떤 위치와 장치, 명령과 편집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이후의 조각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실험으로 읽힌다.
장입규는
《비밀 명령문》, 《디지털 강해》, 《네 행복은 스크린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누가 우리 귀여운 코끼리의 코를 잘랐나.》
등 주요 개인전을 통해 디지털 문법의 물리적 번역이라는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꾸준히 심화해왔다.
2022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2020년 Kunstpreis 대상(gallery Art Room, 독일), 2018년 Kunstpreis 3등(Muenzenberg Forum Berlin, 독일)을 수상했고, 인천아트플랫폼, 대구예술발전소, 충남창작스튜디오, Kunstverein Bahner 등 국내외 레지던시를
거쳤다. 그의 작업은 앞으로도 디지털 기술의 표면적 새로움을 좇기보다,
그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판단, 현실 인식을 어떻게 다시 쓰고 있는지를 물질적이고 조형적인
방식으로 추적해나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