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범, 〈대피소 리허설〉, 2015, 3채널 비디오, 사운드, 27분 © 박준범

박준범은 환경 혹은 시대와 같은 사회구조 저변에 보이지 않는 통제가 존재한다는 보편적 편견을 영상 속에 교묘하게 배치한 장치들을 통해 전복시키는 데 관심을 둔다. 작가는 이러한 관심을 비디오라는 매체의 특성과 형식적 요소들을 전적으로 활용하여 일상의 풍경 혹은 상황 속 시간과 공간을 응축하고 사회ㆍ정치적 규범과 구조를 연극적으로 드러내는 작업들과 작가가 정한 규칙 혹은 구조 내에서 참가자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퍼즐 맞추기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업들을 통해 전개해왔다.

실험의 결과물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사건과 환경적 요인 등의 속성에 대해 작가적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한 가설을 미리 상정해 두고, 거꾸로 이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계획된 모의실험이나 구조 모형을 사용한다. 편집증적일 정도로 사전에 계획하고 통제하지만, 결과에 다다르는 과정은 모순적이게도 끊임없는 불확정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4개의 비디오 영상들과 동작 구조물에서 작가가 지속해온 작업의 방식과 주목하는 바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 코너에 3채널로 상영되는 〈대피소 리허설〉(2015)은 연극무대를 만드는 창고에 쌓인 오래된 구조물들을 사용하여 “20명 정원의 산기슭 대피소에 50명이 30일간 거주하기”라는 과장된 조건에 부합하는 대피소를 제작하고 해체해보는 리허설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이다.

작가가 건축가와의 논의를 통해 구현한 대피소의 건축도면을 기반으로 구조물을 만들게 되는데, 대피소가 필요한 가상의 상황을 실제로 가정한 이 리허설은 참가자들이 사물에 실제 용도와 다른 역할을 부여하거나 가상의 상황을 현재로 간주하고 행동하는 등의 연극적 사고와 행위를 유도한다.

또 다른 코너에 설치된 세 개의 영상 〈8개의 언어〉(2015)는 8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8명의 참가자가 퍼즐을 푸는 과정을 총 17회 실험한 영상으로 3인칭 시점의 비디오 17개와 1인칭으로 촬영된 비디오 14개, 그리고 각 실험을 설명하는 별도의 비디오로 구성된다.

이전 퍼즐 시리즈와 달리 언어 소통이 제한된 환경은 과제 수행의 변수로 예상되지만 정작 퍼즐을 푸는 노력은 국가나 언어가 아닌 개개인으로 귀결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두 영상작업은 비디오 매체의 전형적 속성인 사각형 프레임과 달리 화면의 한 귀퉁이에 구멍이 나 있거나 통상적인 화면의 비율을 벗어나 있는데, 이는 작업을 보여주는 형식이 전통적 방식에서 탈피하면서 또 다른 매체로 읽히고 번역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편 전시장 가운데 바닥에서 상영되는 〈습기에 저항하는 방법〉(2011)과 〈〉(2008)에서 사용된 동작 구조물, 창고 건물의 네 모서리를 촬영한 사진들로 끊임없이 비슷하지만 다른 모퉁이를 수공적으로 만드는 〈네 개의 비슷한 모퉁이〉(2015)는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의 의미를 보완하며 복잡한 사회구조와 관계망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