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정은 영상, 사운드, 조각, 출판 등 다양한 매체 실험을 통해 역사와 현재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환기시키는 비선형적인 시공간을 창조해 왔습니다. 물리적 경계의 전환이 일상의 감각적 경험을 관통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며 작가는 동시대의 속도감 속에서 배제된 인물의 목소리, 풍경, 시간을 탐구하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소정의 프로젝트 《그린 스크린》은 리움 로비 공간에 놓인 미디어월을 매체이자 장치로 고려하며, 경계에 관한 감각을 다루는 세 편의 작품 〈그린 스크린〉(2021), 〈이클립스〉(2020), 〈먼저 온 미래〉(2015)를 소개합니다. 《그린 스크린》이 소개되는 미디어월은 전시 공간에서 벗어난, 미술관의 여러 공간들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임시적 모임의 아케이드입니다. 전소정은 불완전한 전시 공간인 미디어월을 현실에 배치된 허구적 공간 즉, ‘포털, 웜홀, 축지법, 사차원 시간 여행’과 같은 시간을 운용하고 감각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고려합니다. 이는 동명의 작품 〈그린 스크린〉(2021)에서 가능성을 가진 중간지대이자 틈으로서 DMZ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유와 조응합니다.

세 작품은 미디어월의 타임라인 안에서 서로 반향을 일으키도록 구성됩니다. 〈이클립스〉는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모티브로 분단과 경계를 둘러싼 내부와 외부의 시선을 교차시킵니다. 〈먼저 온 미래〉는 남과 북의 연주자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공동의 곡을 완성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으며, 〈그린 스크린〉은 이 일회적이고 기념비적인 연주를 위한 지대가 되어줍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끌어 들이는 〈먼저 온 미래〉, 현실과 인식에 파열을 만들어내는 〈그린 스크린〉, 경계의 감각을 미끄러지는 이미지로서 사유하는 〈이클립스〉는 미디어월 안에서 서로 포개어져 비선형적 시공간을 가설(假設)합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허구적 현실은 경계의 감각을 진동시키며 그 틈을 가격(加擊)합니다.



작품 설명

〈먼저 온 미래 Early arrival of Future〉, 2015 /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HD, 10분 8초 / Single-channel video, stereo sound, HD, 10min. 8sec. © 리움미술관

〈먼저 온 미래〉는 도래하지 않은 시간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영상의 타이틀이기도 한 ‘먼저 온 미래’는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이 하나된 미래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먼저 온 미래〉는 피아노를 중심에 두고 남과 북의 피아니스트가 서로 다른 체제 안에서 예술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예술적 상상으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남과 북의 예술가와 나눈 대화들은 예술을 넘어 서로 다른 삶과 경험에 귀 기울이는 최초의 협업으로 남았습니다.

〈이클립스 I Eclipse I〉, 2020 / 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K, 10분 27초 / Two-channel video, stereo sound, 4K, 10min. 27sec. © 리움미술관
〈이클립스 II Eclipse II〉, 2020 / 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K, 13분 25초 / Two-channel video, stereo sound, 4K, 13min. 25sec. © 리움미술관

〈이클립스 Ⅰ,Ⅱ〉는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떠올리며 분단과 경계의 경험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감각들에 대해 질문합니다. 윤이상의 〈더블 콘체르토〉는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남북 관계에 비유한 곡으로 분단의 상황은 이 곡이 만들어진 1977년을 훌쩍 넘어 현재까지 유효합니다. 작가는 은하수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고 막연한 둘 사이의 관계와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물리적인 경계들을 소리와 이미지로 살핍니다. 〈이클립스Ⅰ,Ⅱ〉는 북한 가야금*과 하프를 위해 작곡된 두 곡의 연주를 바탕으로 제작된 2채널 영상 작품입니다.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 하피스트 방준경, 작곡가 신수정, 김지영과 함께한 이 작업은 현을 울려 소리를 내는 북한 가야금과 하프 주위에서 수평과 수직의 어지러운 교차로 직조된 카메라의 시선과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파편화되는 이미지의 몽타주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경계에 관한 관점을 감추거나 드러내고 변화시키며 찰나와도 같은 일시적인 합의를 포착합니다.

*21현으로 개량된 북한 가야금은 (북한 음악이) 기존 국악의 바탕인 5음계에서 서구 클래식 음악의 7음계로 확장되었던 1960-1970년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 가야금은 남한에서 널리 쓰이는 12현 전통 가야금의 농현(弄絃)을 구현하도록 절충되어 있다.

〈그린 스크린 Green Screen〉, 2021 /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K, 12분 30초 / Single-channel video, stereo sound, 4K, 12min. 30sec. © 리움미술관

〈그린 스크린〉은 녹색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면(풍경)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녹색의 열화(烈火)이자 실재하는 장소이며, 장소의 바깥을 마주하였을 때 일어나는 사고의 열화(劣化)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7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린 스크린〉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공간입니다. 인간이 만든 긴장이 가득한 이 장소는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간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만큼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그린 스크린〉의 끓어오르는 녹색의 풍경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출현하는 ‘지금 시간’으로서 실경과 이상경이 뒤섞여 대립과 공존, 파괴와 생성을 하나의 이미지에 포개어 놓습니다. 합성 영상 제작 기술에 사용되는 임시 배경으로서의 "그린 스크린"의 의미를 전용하는 이 작품은, DMZ를 역사적 배경이 아닌 생생한 풍경으로 전면화합니다.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의 전송 가운데 발생하는 글리치를 활용하여 DMZ의 자연풍경이 녹색으로 끓어오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글리치는 일반적으로 데이터의 변환 과정 - 변위, 전송, 가속, 순환의 과정 – 에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데이터의 변환 과정은 그간 남과 북 서로를 향한 적대와 환대의 제스처, 좌절과 기대, 대립과 공존, 파괴와 생성 같은 양가적 감각을 치환합니다.

이 작품은 전쟁과 냉전의 상징을 생태로 전환시키며, DMZ를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향이자 다른 장소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점으로써 주목합니다. 〈그린 스크린〉은 남과 북의 사이 완충지대이자 틈으로 존재하는 DMZ를 조망하면서 접합부이자 연결부로서 현실의 틈에서 튀어 오르는 무한한 이야기들의 가능성을 상상합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