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다:Artist] (77) 김윤아 작가㊦

작가 김윤아의 ‘사이-틈’은 존재와 부재의 ‘사이’이자 ‘틈’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틈’은 생의 한순간을 포착한 한순간의 죽음에 다름 아니다. 생과 한 순간의 죽음이란 존재와 부재의 같은 결을 함축하는데다 존재는 사라짐으로써 부재에 이르지만 부재는 부재함으로써 존재를 상정시킴을 뜻한다.

다만 우리가 존재와 부재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어느 하나의 기울기로 인해 존재의 확증과 부재함을 드러내는 종결된 존재의 징표에 기탁하는 이유가 크다. 화자(話者/畵者)의 영역에서 이미 권역화되었다는 조건 탓도 있다.

2016년도 작품 〈섬〉은 ‘사이-틈’에 대한 작가의 ‘개입’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훗날 〈Untitled〉의 원형이 되기도 한 이 작품은 공간에 안착된 풍선과 예리한 면도날 사이를 휘감는 시간요소들이 분배된 공간과 회화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다.

때문에 쉽게 다가서기 힘든 제한적 관찰은 각자의 시간을 조각내면서 익명의 관람자와 마주한 존재와 부재를 열람하게 한다. 어쩌면 존재도 부재도 아닌, 혹은 존재와 부재의 곁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손을 내밀지도 잡지도 못하는 그런 ‘섬-틈’이다.

작가 김윤아의 오랜 주제인 ‘존재와 부재’에 관한 시선은 유와 무, 삶과 죽음, 조화와 부조화, 모순과 절충, 결핍과 균열, 찰나와 영원 등으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달리하며 조형화되어 왔다. 여기엔 우위와 층위가 없다. 그저 확신할 수 있었던 터전이 어느 순간 사라졌을 때 존재 자체가 스스로 부재를 읽는 것, 일말의 욕망이 거세되었을 때 밀도 있는 부재의식을 느끼는 것, 부재가 영원성을 그리드(Grid)할 때 비로소 존재를 극대화 하는 것만이 잔류할 따름이다.


김윤아, 〈사상수평선〉, 2016, 설치(유화/썩은 혀, 잡초, 흙), 가변크기 © 김윤아

그러나 존재와 부재의 가시감(형)은 살아 있을 때 읽을 수 있다. 소멸 혹은 말소되었을 경우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해지며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다. 존재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고, 그 상대로부터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윤아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존재와 부재의 가시감은 관계적이며 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주치는 것이 (앞서도 언급했듯) ‘사이-틈’이다.

〈나를 지나가〉에 소용된 잡초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접하는 김윤아의 그 많은 회화와 설치, 텍스트들 또한 그 (원하던 원하지 않던)생동하는 삶에서 수집된 것이랄 수 있다.

미술이라는 특성상 표면적 반응 혹은 그 결과는 늘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둔 채 시각적으로 위치할 수밖에 없지만, 기의와 기표라는 두 명사간 틈에 놓인 행간은 늘 작가의 ‘삶’과 그 삶 속에서 노획한/발견한 미술 언어로 써야할 ‘틈’을 지정할 뿐이다.

10여년 간 그의 작품을 보아온 필자의 생각에 김윤아는 현실로부터 분리된 진부한 모든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때론 진리를 찾아 떠나는 승려처럼, 또 때론 자아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기꺼이 발을 담그는 젊은 날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 혹은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은 많은 부재들이 어쩌면 매우 평범할 수 있음을 자각한 양태로 드러나곤 한다.

특히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세계관을 거부하는 양상(변화적이고 능동적인)에서는 다양한 정신적 유목을 통해 아직 다양한 것들에 근접할 기회가 있음을 엿보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지나가〉와 〈Untitled〉은 매우 평범할 수 있음을 자각한 양태와 변화적이고 능동적인 정신적 유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김윤아, 〈Untitled〉, 2017, 설치(면도날, 실, 조각, 사운드 작업), 가변크기 © 김윤아

우린 비록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자리에서 존재와 부재를 교환하고, 허공에 나부끼는 흔적, 사이, 틈, 섬 등을 발견하지만 그것들에서 항상 평행적인 동시성을 읽고 운명과 같은 ‘개입의 불가능성’을 깨달으면서도 〈Untitled〉에서의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그 무엇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주변을 서성이는 나/우리를 본다.

“존재가치를 부여 받지 못했기에 부재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개입하려는 작가를 대신해 현존재의 막연한 공감만을 유지한다. 김윤아의 설치작업과 회화는 이 지점, 다시 말해 예리한 듯 듬성거리며 날카롭지만 애정이 녹아 있는 그 간극-섬-틈을 파고든다.

그렇다면 김윤아에게 이 사이-틈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건 기 언급했듯 ‘나’를 축으로 한 삶의 흔적이며 틈이다. ‘사이’이자 ‘섬’이다. 언뜻 보면 작가의 정신과 가슴에 끊임없이 쌓이는 희로애락의 표출이랄 수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에 관한 개입과 개입의 불가능성, 그 사이와 틈의 단락을 우회적으로-때론 아픔과 슬픔까지 차곡차곡 겹쳐 버무려 드러낸 사례라는 것이 보다 적확하다. 슬프면서 아름답게 받아들인 ‘고통의 환대’를 말이다. 참고로 김윤아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원만히 하려면 직접 보길 권한다. 어떤 대상 혹은 환경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숭고한 감정까지 담아내기에는 사진이란 매체는 한계가 있는 탓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