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s Cut》 전시전경 © 아라리오갤러리

카메라 렌즈로 피사체를 포착, 그 순간을 기록한 후 마법 같은 편집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요즘의 사진은 렌즈 앞의 피사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인 질서 안에서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카메라 앞에 피사체, 즉 렌즈 앞 실존하는 대상에 관한 단순한 차원의 믿음은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이 가치를 발휘하기 위한 당연한 조건 혹은 예술적 감흥의 기원처럼 여겨졌다. 이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감독의 의도에 따라 편집되었다는 전제하에 상업 영화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한편으로 대중매체, 특히 영화 이미지에 영향을 받은 Lewis Baltz 같은 작가들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며 렌즈 앞 피사체에 관한 고민을 넘어 구도 혹은 여백, 출력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진에 관한 다양한 형식적 질문과 사유는 이미지와 피사체, 그리고 매체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며 표준적인 것에 대해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인세인 박의 이번 전시 《Director’s cut》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작가의 카메라가 담고 있는 피사체이다. 사진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인 ‘피사체(被寫體)’는 한자 그대로 ‘묘사되는, 혹은 베껴지는 물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간단한 사전적 정의는 사실 인세인 박의 신작에서 피사체로 기능한 것들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지점들이 많다. 나아가 동시대 미술에서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는 수많은 이미지와 그 다양한 표현방식 안에서 모델이 된 대상을 지칭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인세인 박의 작업은 이런 피사체의 한계적 정의와의 불화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전시 《Director’s cut》에서 작가의 카메라 렌즈가 향하고 있는 대상이 일반적 성격의 피사체가 아닌, 수많은 공허를 담은 넝마로서의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Director's Cut》 전시전경 © 아라리오갤러리

전시공간에 설치된 모든 작품은 작가가 직접 다양한 매체로부터 수집한 이미지를 카메라로 재촬영한 사진이다. 즉 카메라 앞의 피사체는 그 어떤 실존하는 물질, 모델이 아닌 인세인 박의 컴퓨터 모니터 속 이미지인 것이다. 작가는 수집한 이미지를 모니터에 띄우고, 이것에 조명을 비췄다. 그리고 실제 빛에 의해 변형된 모니터 속 이미지를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렇게 촬영한 이미지는 출력된 결과물 속에서 단순히 한 시점의 기원적 피사체로 기능하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 앞 이미지는 과거의 한 시점에서 실제 대상을 담은 결과물로서의 이미지로, 현재를 기준으로 계속 후퇴하고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에 개입되는 비물질인 빛이 나누는 불화 혹은 대화, 그 사이에 드러나는 엉뚱한 틈, 간극을 무대화하고 있다. 인세인 박의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 피사체의 자리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카메라와 피사체의 자리에 개입된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공백은 아주 멀다. 그 기원을 쫓으면 쫓을수록 피사체는 계속 달아난다.

이번 전시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유희적으로 짜깁기하며 작업해왔던 기존 방식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를 연출하는 방법에 관한 고민을 다양하게 실천했다는 데에 있다. 인세인 박은 최근까지 공간과 이미지가 빛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식으로 이미지와 공간, 빛의 관계를 가정법적 대화의 형식을 통해 실험해왔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더 나아가 가상과 실재를 대변하는 이미지와 오브제를 전시공간에 과감히 혼합하여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 개의 같은 이미지 중 한 이미지에는 포토샵으로 희미한 효과를 주고, 나머지 이미지에는 실제 물체를 뿌옇게 보이게 만드는 유리를 덧씌워 나란히 설치하거나 한가운데에 강한 빛을 지닌 이미지에 실제 형광등을 설치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Director's Cut》 전시전경 © 아라리오갤러리

전시 《Director’s cut》은 편집자로서의 작가의 역할이 강조된 이미지 유희의 결과물로, 사진과 피사체가 맺어온 합리와 표준, 권력을 넘어서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한 공간이다. 인세인 박이 제안하는 작품들은 편집자의 실험실 속에서 묵은 합리의 파괴와 또 다른 차원으로의 이미지 생산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의 끊임없이 후퇴하고 있는 피사체는 소비되고 사라지는 미디어의 한 이미지로는 상정할 수 없는 시간성을 가진다. 그리고 동시에 물질 혹은 비물질적 오브제를 통해 공간에 개입하는 평면이미지는 상대화된다.

시간성을 지닌 피사체와 상대화된 이미지, 개입된 오브제,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공간의 관계는 작가가 여러 가정을 바탕으로 한 실험을 통해 사진이 점해오던 모종의 권력에 미적 자극을 가하고 있다는 데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이미지와 편집,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공허에 관한 작가의 고민은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한 이미지 수집, 짜깁기, 오브제와의 혼합, 상대화와 같은 이미지를 이용한 끊임없는 유희적 움직임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사진 혹은 이미지에 대해 여태껏 말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기 위한 작가의 상상과 놀이는 이처럼 표준에서 달아나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무한히 달아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