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모의 작업은 조각을 전공하며 익힌 공간적 사고를 바탕으로 설치, 퍼포먼스, 영상, 사진, 게임과 참여형 프로젝트를 폭넓게 활용한다. 초기에는 도시의 특정 장소에 직접 개입하고 그 결과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Good bye〉에서는 광고 간판과 유사한 구조물을 실제 도시 공간에 설치한 뒤 촬영함으로써 현실의 풍경 안에 인위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디지털 합성으로도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굳이 현실에서 설치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김정모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특징이다. 작가는 설정한 상황이 실제 공간과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경험까지 작품의 구성 요소로 끌어들인다.
이후 그의 작업은 관객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규칙과 절차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보드게임 형식을 취한 〈더 화이트 큐브〉에서는 주사위를 던지고 정해진 경로를 이동하는 행위가 미술계의 구조를 경험하는 과정으로 연결되며, 〈시간-예술 거래소〉에서는 대기, 계약서 작성, 증명서 수령이라는 일련의 절차가 작품을 이룬다.
거래소, 상담소, 캠페인, 계약과 같은 사회적 형식을 차용하되 실제 제도의 기능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익숙한 형식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규칙을 삽입함으로써 관객이 평소 무심히 따르던 절차와 가치 체계를 의식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설계한 뒤 한 걸음 물러서 관객의 선택과 반응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도록 열어둔다.
김정모가 사용하는 물질 역시 이러한 작업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간판, 계약서, 번호표, 증명서, 배지, 봉투와 같이 일상이나 제도 속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사물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숨을 참거나 기다리고 걷는 행위처럼 형태가 남지 않는 경험도 중요한 매체가 된다.
〈프로파간다 룸〉의 캠페인 이미지와 숨 참기, 〈당신의 발 밑에서〉의 캔버스와 발자국, 〈비생산적 미술을 위한 의식〉의 빈 봉투와 합성 음성은 서로 다른 물성과 감각을 사용하지만, 모두 관객의 신체와 시간이 개입해야 의미가 발생한다. 작품의 물질적 결과와 관객이 실제로 겪은 경험이 분리되지 않도록 구성하는 것이 그의 설치 방식에서 중요한 특징이다.
김정모는 장소마다 형성된 관객층과 사회적 맥락, 공간이 가진 기능을 작업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작품의 구조를 설계한다. 미술관의 컬렉션과 소유를 둘러싼 맥락은 〈시간-예술 거래소〉의 거래 구조로 이어지고, 도시 생태를 다루는 전시는 관객의 이동 동선을 이용해 〈당신의 발 밑에서〉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에 따라 그의 작업에서 형식은 주제를 담는 외형에 그치지 않고, 관객과 공간, 규칙, 사물이 실제로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작동 방식에 가깝다. 설치된 장치와 정해진 절차는 작품의 출발점을 마련하고, 최종적인 모습은 관객이 그 구조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