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시간의 유령은 줄곧 이곳에 머물러왔다. 그의 작업은 전달과 장치, 회로, 수용이 만들어내는 복수의 시간성과 맞닿아 있다.”

—세스 킴코언, 「나무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 『김 크리스틴 선: All Day All Night』 수록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난 나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어떤 종류의 상실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영어가 지배적인 언어인 나라에 왔지만 아직 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시간마저 무너져버린 듯했다. 나는 마치 다시 아기가 된 것처럼 무력했고, 의사소통할 수도 없었다. 공간 역시 달라졌다. 서울과 그 풍경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리웠던 것은 산을 ‘산’이라 부르고, 길을 ‘길’이라 부르며, 공원을 ‘공원’이라 부르는 장소였다.

나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웠지만, 그 언어의 소리 또한 그리웠다. 내 방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엿들으려 할 때 거실에서 들려오던 두 분의 웅얼거리는 말소리. 어디에서나 그런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그리웠다. 나는 언어가 우리가 몸을 움직이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등이나 머리가 움직이는 방식만 보고도 그 사람이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언어와 소리, 신체를 둘러싼 이처럼 미묘한 경험들에 형태를 부여해왔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 크리스틴 선은 드로잉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소통에 대한 보다 진실되고 복합적인 이해를 제시한다. 그는 소통의 방법론뿐 아니라 그 윤리까지 살피며, 소리를 둘러싼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몇몇 순간마다 하나의 구두점처럼 자리해왔다. 김 크리스틴 선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2년 전인 2013년, 역시 뱀의 해였던 그해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운딩스: 동시대의 악보》에 그가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트아시아퍼시픽』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우리는 각자의 분야에서 막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는 퍼포먼스와 목탄 드로잉으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고,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스스로의 감각을 알아가려 애쓰던 젊은 미술 저술가였다.

5년 뒤인 2018년, 나는 임신 중이었고 글쓰기와 삶의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본업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맨해튼 하이라인을 걷다가 휘트니 빌보드에 설치된 김 크리스틴 선의 작품을 보았다. 두 개의 짙은 검은색 호 위에 “너무 많은 미래(Too Much Future)”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너무 많은 미래〉였다.

나는 그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울었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생각했고, 압도감과 가능성 사이의 변증법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더 이상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몹시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를 갖게 된 일이 설레기도 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마치 과거의 내가 미래를 향해 보내온 격려의 메시지를 받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뒤 음력 십이지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같은 해가 되었을 때, 김 크리스틴 선과 나는 마침내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현재 서베이 전시 《All Day All Night》을 계기로 직접 만났다. 2025년 7월 6일까지 이어지는 이 중견기 서베이 전시는 김 크리스틴 선의 초기 사운드 퍼포먼스와 인포그래픽 드로잉, 영상, 그리고 파트너 토마스 마더와의 협업을 아우르며 그의 작업이 지닌 깊이와 폭을 조망한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한 회의실에서 우리는 미국수어 통역사와 함께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이 변화해온 궤적과 모성,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크리스틴 선, 〈Too Much Future〉, 2017, 종이에 목탄, 43.5 x 74 cm © 김 크리스틴 선

다이애나 서형: 〈Too Much Future〉 빌보드가 드로잉 연작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는 이 작품을 특히 공공미술 작업으로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당시에는 이미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였던 것 같은데, 제게는 이 작품이 뉴욕에 있는 당신의 몸과 작업을 대신하는 존재처럼 느껴졌거든요. 당시 경험은 어땠나요?

김 크리스틴 선: 재미있네요. 우리가 2013년에 처음 만났고, 5년 뒤인 2018년에 당신이 이 작품을 마주했다고 했잖아요. 어떤 면에서 〈Too Much Future〉는 일종의 중간 지점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저도 2017년에 엄마가 되었고, 지금 전시 8층에 있는 '퓨처 베이스' 연작을 만들었어요.

당시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큐레이터 제니 골드스타인이 빌보드 작업을 해보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렇게 큰 규모로 작품을 선보인 적이 없었고, 제 작업이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했어요. 드로잉 하나를 빌보드 크기로 키울 수 있을지 몰랐죠. 저는 늘 종이로 작업해왔고, 제 작품이 바깥의 공공공간에 놓이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막 엄마가 된 터라 정말 압도되어 있었고요.

〈Too Much Future〉의 드로잉은 두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냥 선 하나, 튀어 오르는 움직임, 또 하나의 선이죠. 저는 감정과 불안, 낙관, 분노가 자리할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선을 두껍게 했어요. 그리고 빌보드가 설치된 곳은 하이라인의 시작점일 수도, 끝점일 수도 있어요. 미래일 수도 있고 과거일 수도 있는 거죠.

이 단순한 빌보드 하나가 제 작업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재미있어요. 결국 그 빌보드는 제 경력에서 굉장히 큰 도약이 되었고, 규모를 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게 해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포 프리덤스에서 빌보드 커미션 제안이 왔고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작업에 벽화도 추가하게 됐어요.

휘트니 미국미술관, 그리고 제니 골드스타인과 처음으로 전시를 함께한 것도 그때였어요. 2019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제니와 함께 작업하고 있죠. 워커 아트센터의 파벨 S. 피시, 톰 핀켈펄과 더불어 세 사람이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어요.

다이애나 서형: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기쁘네요. 그 모든 것이 작품 안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3년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당신이 왜 저한테 연락했는지, 어떻게 제 작업을 알게 됐는지 물으면서 놀라워했던 기억이 나요.

김 크리스틴 선: 그런데 도대체 제 작업을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다이애나 서형: 리서치를 하다가 알게 됐어요. 아마 바드 칼리지 MFA 웹사이트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보자마자 ‘이 사람과는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Future' 연작과 관련해서 작품의 확장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정말 좋네요. 그리고 그 작품이 제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당신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움직여요. 당신의 작업이 이렇게 크고,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김 크리스틴 선: 그러고 나서는 제가 조금 욕심이 생겼죠. “어, 이게 다예요? 이렇게 큰 벽화 공간? 이렇게 큰 빌보드? 더 주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요. 한번 맛을 보고 나니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드로잉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 층 전체를 갖고 싶어요. 가끔은 사람들 눈앞에 아주 들이밀듯 존재하는 게 좋아요. 규모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죠.

다이애나 서형: 이번 전시를 위해 그 연작을 다시 살펴보는 건 어땠나요?

김 크리스틴 선: 끝내주게 좋아 보인다고 생각해요[웃음]. 정말 끝내주게 좋아요. 아마 어떤 크기여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연작 전체 안에서 보게 되니 좋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예전 작업들 곁에 있는 게 힘들어요. 과거에 만든 것들 중에는 지워버렸으면 싶은 작품도 있어요. 그런데 큐레이터들이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오래된 작업들도 보여줘야 했어요.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죠.

'Future Base' 연작은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던 시기에 시작됐어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지금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와요. 이번 전시 설치는 트럼프의 가장 최근 취임식 바로 다음 날 시작됐어요. 개막일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이 삭감되고, 몇몇 반트랜스젠더 법안들이 나오기 시작한 날과 같았고요. 백악관 웹사이트는 군국주의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서 “애국적이지 않다면 미국인이 아니다” 같은 메시지의 영상을 내보냈어요. 해외에 있는 미국인을 위한 풀브라이트 장학금 지원도 삭감했고요.

분명히 이번 행정부는 접근성에 굉장히 적대적이에요. 농인들이 어떻게 자기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쪽에 투표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정말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2020년 장애인 유권자 조사에 따르면 장애가 있는 유권자의 51%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접근성은 예전에는 초당적인 사안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3월이 됐고,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여 있죠. 오히려 제 전시가 지금 정확히 필요한 시기에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이애나 서형: 전시 도록에서 톰 핀켈펄, 제니 골드스타인, 파벨 S. 피시와 나눈 대화 「유머는 인간적으로 만든다」에서 당신이 ‘멍청한 청인들(dumb hearing people)’이라고 쓴 부분을 보고 웃었어요.

김 크리스틴 선: 청인도 ‘멍청할’ 수 있죠. 뉴욕의 한 바에서 농인 친구들이랑 있었는데, 모르는 남자가 다가왔어요. 바에서 글을 써가며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우리의 농에 관해, 그리고 저와 제 친구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다 같이 모일 수 있는지 계속 묻고, 옷이 참 멋지다는 얘기도 계속했고요. 기자들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멍청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순간들이 좋아요. 청인들도 정말 멍청할 수 있다는 걸 볼 때가 좋아요.

교육자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늘 청인이었고, 그들은 무엇이 저에게 가장 좋은지를 결정해왔어요. 마치 저 자신보다 저에 대해 더 잘 안다는 듯이요. 그래서 밖에서 청인이면서 멍청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런 순간들이 저는 고마워요. 그런 경험을 통해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저는 누군가가 돌봐주고 대신 결정해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대부분의 농인들은 청인이 가장 잘 알고, 청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종의 열등감을 품고 자라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바라건대 성인이 될 무렵에는 그들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들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해요. 애초에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까요.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다이애나 서형: 그 대목에서 웃으면서 저는 유머가 시간과 맺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세스 킴코언이 전시 도록의 글에서 시간이 당신 작업의 유령 같은 존재라고 쓴 것을 떠올리면서, 특히 인포그래픽에서 나타나는 유머의 즉각성에 대해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 작업들이 갖는 시간과 생성 과정에 대해서는 직접 듣고 싶어요.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되나요? 그리고 언제 그것이 완성됐다고 판단하나요?


김 크리스틴 선, 〈Degrees of Deaf Rage in Everyday Situations〉, 2018,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 저는 정말 많은 스케치를 하면서 작업을 발전시켜요. 어떤 것은 남기고, 어떤 것은 버리면서 적절한 인포그래픽 형식을 찾을 때까지 계속 시도하죠. 원그래프는 꽤 수월하다고 느꼈어요. 굉장히 설명적인 형식이니까요. '농인 분노의 각도' 연작도 마찬가지였어요. ‘오, 각도(degrees)라니…… 분노를 담기에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죠.

보통은 아주 작은 크기에서 시작하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크기에 도달해요. '농인 분노의 각도' 연작도 처음에는 작은 스케치로 시작한 다음, 지금의 크기가 될 때까지 확대하고 늘렸어요. 적절한 크기를 찾았다는 건 알았지만, 제가 다뤄내고 싶었던 분노의 양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죠.

그래서 〈Degrees of Deaf Rage in Everyday Situations〉(2018)와 〈Degrees of Institutional Deaf Rage〉(2018)를 또 그렸어요. 여행, 교육, 통역사에 관한 드로잉도 만들었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좋아, 이제 내 분노가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거나, 줄어들고 있거나, 바닥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Degrees of My Deaf Rage in the Art World〉(2018)를 만들었고, 그때 비로소 끝났다는 걸 알았죠.

사람들은 제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종이에 옮기고 그것이 그대로 최종 작품이 되는지를 묻곤 하는데, 실제로는 작업해나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메모를 남겨요. 아이패드로 드로잉도 하고, 스케치도 하고, 생각해보고, 다시 그 메모들을 들여다보고, 아이패드 스케치도 다시 보고, 그것들을 현재 진행 중인 스케치에 가져와요. 그렇게 계속 왔다 갔다 하죠. 하지만 일단 아이디어를 찾고 개념이 확실해지면, 그때부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업을 완성해요.

저는 하나의 질문에 단 하나의 답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성향이 제 작업에도 드러나죠. 하나의 아이디어, 하나의 질문이 생기면 거기에 수많은 답이 따라와요. 그리고 그 모든 답들이 연작을 만들어냅니다.

다이애나 서형: 텍스트의 문법은 어떤가요? 그것도 가지고 놀거나 변형하나요?

김 크리스틴 선: 상당 부분은 ‘농인 영어(Deaf English)’예요. 농인 영어는 미국수어 사용자와 영어 사용자 사이에서 소통할 때 아주 훌륭한 절충 방식이에요. 농인 영어 자체가 완전한 하나의 언어인 것은 아니고, 우리가 미국수어(ASL)로 소통하는 방식을 전달하기 위해 문자 형태의 영어를 빌려 사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무언가를 다 끝냈다고 말할 때 미국수어에서는 ‘finish’를 사용해요.

그래서 딸아이가 아침을 다 먹었는지 궁금하면 남편에게 수어로 하거나 문자로 “Roux, eat finish?”라고 보내죠. 미국수어에서 ‘미래(future)’는 두 개의 반원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저는 미국수어와 대응시키기 위해 기하학적 형태를 빌려올 수도 있고요.

다이애나 서형: 엄마가 된 경험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어요. 여성 작가에게 모성에 관해 묻는 것이 때로는 금기처럼 여겨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도 엄마니까 저를 믿어주셨으면 해요.

김 크리스틴 선: 아니에요, 저는 엄마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다이애나 서형: 저도 최근까지는 그런 질문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다만 사람마다 출발한 페미니즘의 역사와 맥락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김 크리스틴 선: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뒤처지거나 밀려나게 될까 봐 정말 불안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는 걸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한동안 모든 것이 조금 느려졌다가 다시 원래 속도로 돌아오더라고요.

그렇다고 그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잠깐 속도가 느려질 뿐이죠. 저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내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슈퍼맘’이라는 개념을 정말 싫어해요. 지금도 시어머니가 베를린에서 저희 두 딸을 3주 동안 돌봐주고 계세요. 제 여동생도 그런 일을 해준 적이 있고요.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나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제 공동체가 저를 돕고, 가족이 저를 돕고, 파트너도 저를 도와요. 저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모든 일을 혼자 다 해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나요.

다이애나 서형: 당신의 딸 루와 가족, 사랑에 빠져 있는 경험에 관한 작업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번 전시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가부장적 구조와 협소한 양육관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을 상상하게 했어요. 협업을 받아들인다면 모성이 어떤 모습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했고, 저도 굉장히 힘을 얻었어요.

〈One Week of Lullabies for Roux〉(2018)는 친구들에게도 양육의 공간을 열어주고, 자장가라는 형태로 당신의 딸을 돌볼 기회를 건네는 작품이잖아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밤마다 저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남동생과 사촌을 제외하면 그런 일을 해준 사람은 아버지뿐이었고요. 밤에 누군가, 특히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게 해준다는 건 하나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취약하고 친밀한 일이기도 하고요. 자장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일곱 명은 어떻게 선정했나요?

김 크리스틴 선: 몇 가지 기준을 정했어요. 제가 부탁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모여야 했어요. 그중에는 아주 가까운 부모 친구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자장가는 가사가 없어야 했고, 저주파여야 했어요. 참여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자장가에 대한 설명도 써달라고 부탁했고요.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 자장가들이 괜찮은지, 혹은 어떤 특정한 방식에 맞는지를 따로 확인해달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는 협업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신뢰’라는 개념이 상당히 많이 작용해요.

이 작품의 목적은 실제로 루를 재울 수 있는 자장가를 만드는 데 있지 않았어요. 다른 예술가이자 부모인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 더 중요했죠. 루가 막 태어났을 때, 루가 깨면 불빛을 깜빡여서 알려주는 베이비 모니터가 있었어요. 다시 잠들게 하려고 누르면 임의로 설정된 자장가가 나오는 버튼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내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이런 아무 자장가들과 왜 관계를 맺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죠.

다이애나 서형: 전시 도록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늦게 자각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 ‘늦음’이라는 것, 그 단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 혹은 보다 큰 시간의 감각 안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김 크리스틴 선: 자라면서 저는 제 농인 정체성을 너무 양극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그 정체성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지만 고민하느라 바빴어요. 제게는 농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백인성(whiteness)을 경험한 방식과 비슷하게 느껴져요.

어릴 때는 농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충분히 ‘농인답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제게는 농인인 여동생이 있죠. 거기에 더해 저는 백인이 아니라는 정체성도 있었고요. 청인 중심의 세계에서 농인으로 살아가며 생긴 열등감도 있었어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집 안에서 우리는 한국인이었지만,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저는 농인이 되었어요. 제가 자랄 때는 미묘한 차이나 다양성이 존재할 공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 겪고 있는 몇몇 가족 문제들 때문에, 제가 자라온 환경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저는 독일에 살고 있고,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되었으니까요.

부모님과 여동생을 만나러 집에 가면 여전히 절을 한다든지 음식과 관련된 것처럼 한국적인 관습들을 많이 지켜요. 하지만 제게는 농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정체성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친척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그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수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몇몇 관계를 잃기도 했어요. 부모님과 여동생과는 소통할 수 있지만,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제 가족이 생겼잖아요.

저희 가족에게는 수어와 음성언어를 둘러싼 이런 역학이 존재해요. 제 딸들은 절반은 한국계인데, 독일은 한국인으로 살아가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한국인으로서의 경험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미국 해안 지역에서 아이들을 키웠다면 훨씬 좋았겠죠. 하지만 저는 한국학교를 찾았고, 한국인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지금은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도 많고요. 특히 몇몇 사촌들과 관계가 멀어진 일을 겪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 중에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아요. 디자이너도 있고 배우도 있고요. 그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동적이고, 우리가 공유하는 ‘한국인임’에도 마음이 움직여요. 이제는 제 아이들도 반드시 그런 한국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다만 제가 그것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느끼지는 않아요. 제게는 ‘농인’이라는 정체성이 먼저였으니까요.

언젠가 1년 정도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런 부름을 느껴요. 예전에는 제가 지닌 여러 정체성이 너무 복잡해서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은 그것들이 훨씬 명확해졌고요. 그리고 더 명확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들을 확장할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정체성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요.

다이애나 서형: 그럼 12년 뒤에 다시 만날까요? 다음 뱀의 해에요?

김 크리스틴 선: 네, 휴대전화에 알람 맞춰두세요.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