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All Day All Night》은 소리와 언어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며, 그로부터 배제되어온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언뜻 보기에 김 크리스틴 선이 언어에 매혹되는 지점은 언어의 시적 성격보다는 그 관습과 규칙에 더 가까워 보인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을 구성하는 영상, 장소특정적 벽화, 수많은 목탄 선 드로잉 연작 전반에서 김 크리스틴 선은 하나의 체계로서 언어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언어는 서로 맞물리는 상징과 기호, 되풀이되는 의미들로 이루어진 체계이며, 이러한 특성은 종이 위 작업의 절제된 선과 직설적인 문구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업들을 함께 바라볼 때 김 크리스틴 선의 작품 세계 전체, 그리고 전시가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효과는 소리와 언어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도록 이끈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구성된 전시는 소리를 시각적 형태로 다시 만들어낸 김 크리스틴 선의 초기 실험에서 시작한다. 〈Selby Circle〉과 〈Selby Square〉(모두 2011) 같은 작품에서 그는 진동을 이용해 나무판 위에 파란색 잉크를 흩뿌림으로써 소음을 효과적으로 ‘지도화’했다. 다시 말해 소리를 단지 듣는 것만큼이나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대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천적으로 농인이었던 김 크리스틴 선은 자신이 소리를 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소리에 의식적으로 반응하며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소리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소리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면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명백한 효과를 능숙하게 읽어내기 시작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잭슨 폴록을 연상시키는 두 점의 잉크 얼룩진 나무판 주변에는 음악 기보법의 관습을 변주한 일련의 드로잉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악보에서 소리를 여리게 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기호 ‘p’가 중심을 이룬다. 김 크리스틴 선은 이 개념을 확장해 하나의 패턴으로 발전시킨다. ‘p’라는 기호로 이루어진 격자와 삼각형은 고요함을 어떻게 시각화하고 포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유와 결합하며, 더 나아가 침묵이 어떻게 관용적 표현이 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예컨대 ‘침묵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the silent treatment)’과 같은 표현은 애초에 말이 발화되지 않는다면 문자 그대로는 아무런 의미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김 크리스틴 선, 〈Degrees of Deaf Rage in Everyday Situations〉, 2018,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의 목탄 드로잉에 점점 더 많은 텍스트가 등장하면서, 소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언어 자체를 둘러싼 질문으로 옮겨간다. 이 지점에서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는 분명하면서도 반가운 실천주의적 성격이 드러난다. 사회적 가치가 소리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그는 각도와 원그래프를 그리고 각각의 기하학적 조각에 서로 다른 감정을 적어 넣으며 자신의 경험을 도식화한다.

인포그래픽을 연상시키는 연작 ‘Degrees of My Deaf Rage’(2018)는 음성언어가 중립적인 것으로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그가 반복적으로 경험해온 좌절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구겐하임 접근성 매니저’에 대한 분노에서부터—이는 목탄이 번진 예각으로 표현된 ‘예각의 분노(acute rage)’다—“내 사례비를 통역사들과 나누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큐레이터들”에 대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이 각도로 도식화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반사적 분노(reflex rage)’가 촉발되며, 이에 해당하는 각도는 짙고 먹빛에 가까운 검정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김 크리스틴 선, 〈Degrees of Deaf Rage While Traveling〉, 2018,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구성하는 언어의 역할에 주목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작업 전반에서 번역이라는 주제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영상 기록으로 선보이는 초기 퍼포먼스 〈Face Opera II〉(2013)부터 이후의 드로잉 연작 'Terp Voices'(2015)에 이르기까지, 김 크리스틴 선은 통역사와 함께 작업하며 겪는 고충과 자신의 언어,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타인을 통해 매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체념을 자주 언급한다.

연작 '영어 대 농인 영어'는 수어와 음성언어 사이의 일대일 번역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정확할 수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시각화한다. 종이는 두 개의 열로 나뉘어 있으며, 대문자로 휘갈겨 쓴 문구를 통해 ‘ate(먹었다)’가 ‘eat finish(먹다 끝나다)’로, ‘can’t see a thing(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이 ‘see zero(보다 제로)’로 바뀌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드로잉들은 관람객에게 언어가 지닌 구조적 특성을 상기시킨다. 즉 미국수어(ASL)는 그 자체의 통사와 문법을 통해 음성언어의 단어들로 축소할 수 없는 다층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음성영어를 넘어 다른 언어에도 동등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언어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공간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관념을 소리로 번역하거나, 반대로 소리를 공간적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는 의미 자체의 경계를 넓힐 가능성이 존재한다. 미국수어에는 오직 그 언어에서만 가능한 방대한 표현의 영역이 있다. 이 언어에서 시간은 거리로 표시되고, 문법은 움직임으로 드러나며, 개념은 문자가 아니라 물리적 공간 속에 응축된다.

두 언어가 동등한 존중을 받는 한, 소통의 필요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역의 마찰은 어떠한 생각이든 그 타당성과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그 자체의 시학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