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크리스틴 선, 〈Pronouns in American Sign Language〉, 2020,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지난 2월 뉴욕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열린 김 크리스틴 선의 전시 개막식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작업이 어떻게 뉴욕의 시각적 환경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왔는지를 떠올렸다. 그는 목탄 스케치와 떨리는 듯한 대문자 손글씨로 광고 공간을 점유해왔다.

김 크리스틴 선은 자신이 ‘트랜스크립트 드로잉(transcript drawings)’과 ‘인포그래픽(infographics)’이라고 부르는 목탄과 파스텔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조각과 사운드 아트, 영상, 퍼포먼스, 벽화뿐 아니라 도시 경관 규모의 공공미술 설치까지 폭넓게 작업한다. 2019년에는 ‘아트 인 애드 플레이시스(Art in Ad Plac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래된 공중전화 부스의 광고를 검정색으로 윤곽을 그린 미국수어(ASL)의 ‘사랑해(I love you)’ 손동작이 담긴 빨강·하양·파랑의 포스터로 교체했다.

손바닥에는 찡그린 표정이 휘갈겨져 있고, 그 옆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건 지친다(LOVING YOU IS EXHAUSTING)’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농인으로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따르는 양가적 감정을 논평하는 〈Loving you is exhausting〉는 농인인 김 크리스틴 선에게 전화기의 발명가이자 수어에 반대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만들어낸 매체를 전유할 기회이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타임스스퀘어에 디지털 빌보드 연작 ‘Dear Essential Workers’를 제작했는데, 빈 오선과 ‘감사합니다(THANK YOU)’라는 문구가 맥박치듯 화면을 채웠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은 2018년 하이라인의 한쪽 끝 인근에 그의 첫 번째 빌보드 작품 〈너무 많은 미래〉를 설치했다. 흰색 배경 위에 미국수어의 ‘언젠가(someday)’ 또는 ‘미래(future)’에 해당하는 수어를 풀어 쓴 이 작품에는 두 번의 아치형 손동작이 검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선은 지나치게 어둡고 두꺼워, 다가오는 폭풍을 암시하거나 어쩌면 그저 불안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작품을 비롯한 수많은 작업을 통해 김 크리스틴 선은 뉴욕 곳곳에 농인 문화를 단호하게 자리 잡게 하며, 이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들어왔다.

2012년에 열린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두 차례의 단체전은 김 크리스틴 선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했으며, 동시에 그의 작업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전유되는 방식에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긴장을 드러냈다. 두 전시 모두 그가 바드 칼리지에서 음악과 사운드 전공으로 두 번째 미술학 석사과정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열렸다. (그는 2006년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서 첫 번째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10월에는 펜실베이니아 해버퍼드 칼리지의 캔터 피츠제럴드 갤러리에서 《What Can a Body Do?》가 개막했다. 아만다 카키아가 기획한 이 전시는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을 새롭게 부상하던 장애예술의 흐름 속에 위치시켰으며, 장애정의의 관점을 반영한 큐레이팅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듬달에는 베를린 쿤스트라움 크로이츠베르크/베타니엔에서 《Gesture Sign Art: Deaf Culture/Hearing Culture》가 개막했다.

이 전시는 다수가 문화적 농인으로 정체화하고 미국수어(ASL)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던 농인 작가들의 작업을 존 케이지와 같은 청인 작가들의 작업과 나란히 놓고 대화하도록 구성했다. 농인들이 여전히 의료적 관점에서 대상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Gesture Sign Art》은 과거 병원이었던 베타니엔을 상징적으로 전복하는 장이기도 했다.


김 크리스틴 선, 〈Too Much Future〉, 2017, 빌보드, 2018년 뉴욕 갠스부트 스트리트 설치 전경 © 김 크리스틴 선

《Gesture Sign Art》은 소리의 생성과 전달, 수용에 이르기까지 소리가 지닌 다중양식적 측면을 둘러싸고 사운드 연구와 사운드 아트 분야에서 진행되어 온 보다 폭넓은 문화적 탐구와 맞닿아 있었다. 전자음, 물속을 통과하는 소리, 진동을 통해 경험되는 소리 등 저렴한 디지털 도구의 등장으로 새롭게 조작 가능해진 이 유동적인 매체 안에서 농인의 전문성은 여러 형태의 전문성 가운데 하나였다.

농인의 사운드 아트는 그저 사운드 아트일 수도 있지만, 적절한 소리와 목소리란 무엇인지, 소리는 누구에게 속하는지, 그리고 소리와 권력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둘러싼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을 증언하며 일종의 종속된 전문성을 수행할 수도 있다. 김 크리스틴 선은 이 두 전시에 두 가지 유형의 ‘트랜스크립트 드로잉’을 출품했다.

해버퍼드에서는 소리를 옮긴 작업, 즉 진동하는 스피커 위에 잉크와 종이 또는 나무를 올려 제작한 ‘스피커 드로잉’을 선보였고, 베를린에서는 미국수어를 옮긴 〈All. Day.〉와 〈All. Night.〉(2012)을 발표했다. 휘트니 전시의 제목은 이 작품에서 가져온 것으로, 해당 문구를 수어로 표현하는 손의 움직임을 따라 그린 듯한 목탄의 호(弧)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김 크리스틴 선은 새로운 그래픽 표현 방식과 매체를 도입해왔지만, 그의 작업은 여전히 ‘접근(access)’이 지닌 이중성을 탐구한다. 하나는 농인이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소리의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청인 관객에게 미국수어와 농문화를 새롭게 시각화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작가가 소리와 소통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을 탐색함에 따라, 접근성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가지들을 뻗어내는 토대가 된다.

〈All. Day.〉와 〈All. Night.〉은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운딩스: 동시대의 악보》(2013)에 다시 출품되었다. 이 전시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최초의 대규모 사운드 아트 전시였다. 장애예술 공동체가 김 크리스틴 선의 경력이 도약하는 데 힘을 보탰다면, 그의 두드러진 성공은 다시 이 분야 전체를 앞으로 밀어 올렸다. 현재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으며 2026년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센터로 순회할 예정인 그의 서베이 전시는 네타 알렉산더와 필자가 ‘새로운 장애예술 운동’이라 부르는 흐름과 연관된 작가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전시다.

‘새로운 장애예술 운동’이라는 용어는 장애를 우선적인 관점으로 삼는 프로그램이 부상했음을 가리키는 동시에, 장애와 질병, 그 밖의 물질적 차이를 작업의 주제나 조건으로 다뤄온 장애예술가들의 보다 긴 역사를 함께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김 크리스틴 선의 벽화 〈에코 트랩〉(2021)은 검은색 호와 튕겨 나가는 듯한 움직임의 선, 그리고 ‘HAND PALM’이라는 단어로 구성되며, 이는 미국수어에서 ‘메아리’를 뜻하는 수어를 암시한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열린 국제 장애예술 기관전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크립 타임》에서도 중심적으로 소개되었으며, 2021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의 3개 층에 걸친 중앙 로비를 둘러싸는 형태로 설치되었다.


김 크리스틴 선, 〈Loving you is exhausting〉, 2019, 포스터, 뉴욕 유니버시티 플레이스 설치 전경 © 김 크리스틴 선

2024년 저서 『장애의 작업: 재활 이후의 퍼포먼스』에서 연극예술 연구자 패트릭 맥켈비는 자율적이고 자기의식적인 장애예술 운동의 시작을 1970~80년대 미국에서 장애예술 노동자들에게 ‘재활’ 기금을 제공하기 시작한 입법적·경제적 변화와 연결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예술가들이 그러한 기금 구조를 활용하면서도, 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 틀에는 저항할 수 있었던 역량이었다.

김 크리스틴 선 역시 자신이 열 살 때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ADA)이 자신의 교육과 경력에 미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전시 도록에서 이렇게 썼다. “ADA가 통과된 뒤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텔레비전 자막이 더 많아졌고, 고등학교에서는 CART(Communication Access Real-time Translation, 실시간 의사소통 접근 번역) 속기사가 수업 내용을 기록해줬어요. 우리는 수업에만 집중하면 됐고, 나중에 노트를 받을 수 있었죠. 통역사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어요.”

이어 “ADA와 인터넷은 제 삶을 바꾼 두 가지였습니다”라고 말한다. 1990년대에는 대학 내 장애학 프로그램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는 디지털 접근성 도구가 크게 발전하는 한편, ‘장애예술’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지원금과 상, 기타 기회들도 빠르게 늘어났다.

이 분야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장애 미학을 적극적으로 되찾으려는 요구 또한 커졌으며, 그 출발점은 바로 ‘선(line)’의 차원이었다. 내가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김 크리스틴 선의 전시를 관람하던 날 조금 앞서, 금융지구의 한 광장에서 장 뒤뷔페의 공공조각 〈네 그루의 나무〉(1972)를 마주쳤다. 약 40피트 높이의 버섯처럼 보이는 울퉁불퉁한 흑백 형태들이 한데 모여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도시의 공공공간에서 자유롭게 존재하는 장애의 모습, 그리고 장애와 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뒤뷔페는 이 조각을 볼펜으로 끄적거리는 행위에서 출발한 “해방된 그래피즘”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중반 아르 브뤼 운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정규 미술교육과 미술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그중에서도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이 만든 ‘아웃사이더’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뒤뷔페에게 ‘장애의 선’은 가공되지 않은 것이자 ‘원시적’인 것, 곧 휘갈겨 쓴 낙서와 같은 것이었다. (작가 박 맥아서가 김 크리스틴 선 전시 도록에서 썼듯이, “정말 우스운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미술은 장애를 향한 자신의 은밀한 매혹을 부정하고 있다.”)


김 크리스틴 선, 〈All. Night.〉, 2012, 종이에 파스텔, 오일 파스텔, 색연필, 97.8 x 127 cm © 김 크리스틴 선

장애인의 몸에서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벗어난 선이 흘러나온다는 관념은 19세기 그래픽 기록과 기타 그래픽 방법론이 근대적으로 형성된 과정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에드워드 머이브리지, 프랭크와 릴리언 길브레스, 그리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은 장애인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적해 기록하고, 이상을 명명하고 고정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심장박동, 절뚝거림, 심전도, 말더듬 등이 그 대상이었다.

장애를 측정 가능하고 심지어 예측 가능한 비전형성으로 이해하는 개념은 같은 시기 통계학과 과학적 관리법에서 등장한 다른 그래픽 방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구조사를 위한 원그래프, 노동을 기록하고 통제하기 위한 시간 도표, 사망률과 기타 사회문제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 빈도의 이상치를 곡선으로 표시하고 위험을 예측하는 x-y 그래프 등이 이에 해당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김 크리스틴 선은 선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되찾아, 그것을 주체이자 대상으로 삼아왔다. 기존의 기록 기법이나 기보 체계를 전용하거나 새롭게 고안한 ‘인포그래픽’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형식 가운데 하나다. 겉보기에 객관적인 소리와 움직임의 기록 및 기보 방식을 변주하고, 여기에 손글씨나 음악 기호를 결합한 그의 작업은 단지 그것을 만든 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속한 문화적 세계까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작업들은 인간을 측정하는 행위에 내재한 반복적인 지루함과 억압,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유머를 전달한다. 나는 이전에도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 관해 글을 쓰면서, 그가 경력 전반에 걸쳐 구축하고 확장하며 재조합해온 이미지-알파벳을 도식화하고, 새로운 드로잉 연작이 등장할 때마다 그 안에 얽힌 연결 관계와 내부자적 농담을 해독하는 데 큰 즐거움을 느껴왔다. 그러나 선 자체가 그의 작업에서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라는 점은 충분히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오선, 악보, 시간 곡선, 데시벨 척도, 원그래프를 이루는 각도와 선분은 단순히 무언가를 번역하고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김 크리스틴 선의 손은 우리에게 통제하고 규율하는 선들의 비판적 이론과 역사를 제시하는 동시에, 고유한 농인의 선들을 불러낸다.


《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김 크리스틴 선이 데시벨 척도를 재구성한 방식을 살펴보자. 《All Day All Night》의 도록에는 여러 해에 걸쳐 작성된 그의 청력도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듣기’라는 하나의 우주는 음높이와 데시벨이라는 척도 위에 찍힌 일련의 점으로 측정된다. 공개된 이 청력도들과 함께 김 크리스틴 선은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농(deafness)’을 거듭 증명해야 했던 빈번한 검사들이 얼마나 부조리했는지를 이야기한다.

2년 전 나는 과학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 『오시리스(Osiris)』에서 장애의 역사를 주제로 한 특집호를 공동 편집하면서, 김 크리스틴 선의 2014년 작품 〈How to Measure Loudness〉을 표지에 싣기 위해 소장자의 아파트에서 작품을 촬영할 사진가를 고용했다. 이 작품은 청력측정학의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다. (작가의 경력 초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전문적인 기록 사진이 남겨지기 전에 판매되었다.)

김 크리스틴 선은 서술적인 척도를 통해 소리의 크기를 측정하며, 겉보기에는 객관적인 청력도를 개인을 수치화하는 기록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전환한다. 내가 이번 전시를 보기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How to Measure Loudness〉에 짝을 이루는 작품 〈How to Measure Quietness〉(2014)이 있다는 사실이다.

파란색 파스텔로 그려진 이 작품은 음악의 셈여림표, 즉 mp(메조피아노, 조금 여리게)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만큼 극단적으로 여린 ppppppppp에 이르는 척도를 사용하는데, 김 크리스틴 선의 ‘고요함’ 척도는 ‘소리의 크기’ 척도와 똑같은 지점인 ‘수면’에서 시작한다. 고요함의 정도가 커질수록 내면의 동요 역시 커지며, 척도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면 불안, 침묵으로 상대를 대하는 행위, 그리고 ‘panic’을 잘못 적은 ‘PANIA’가 등장한다.

한 쌍을 이루는 이 두 척도는 물리적 음량이라는 양적 수치를 주관적인 ‘소리의 크기’라는 단위로 단순히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의 크기와 고요함 그 자체를 의문에 부친다. 둘 중 어느 것을 척도로 삼아야 하는가? 듣기라는 행위, 혹은 다른 형태의 수용을 통해 이 둘은 각각 어떻게 수행되는가? 농이 단일한 상태가 아니라면, 정상 범주의 청력도가 무엇이라 말하든 듣기 역시 가변적인 것이 아닐까?

김 크리스틴 선의 서베이 전시를 살펴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그래픽 어휘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각 연작이 어떠한 논지를 펼치는지, 그리고 그러한 논지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확장되며 광범위한 장애 이론으로 이어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과거 그의 크고 작은 단체전과 개인전을 여러 차례 보면서, 그의 작업이 소리와 수어를 그래픽으로 기록하고 기보하는 방식에서 그가 ‘인포그래픽’이라 부르는 형식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해왔다.

다시 말해 물리적 상태를 번역하는 작업에서 복잡한 데이터 집합(실재하든 허구이든)을 시각화하는 작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베이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여러 연작과 최근 작품들을 함께 보면, 기록이라는 행위가 여전히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서 ‘농인의 선(Deaf line)’을 추동하며 새로운 형식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의 팔과 손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호들이 수십 년간 구화주의 기관과 언어병리학 클리닉에서 사용되어온 음성 기록 도구에 응답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연작에서 이 호들은 내용인 동시에 작품의 틀이 된다. 〈All Day All Night〉(2023)은 2012년 작품의 파스텔 호를 활용해 비어 있는, 가공하지 않은 캔버스의 외곽선을 구성한다. 그것은 미국수어의 화석이자 농인의 조각이며, 일련의 지침인 동시에 김 크리스틴 선의 경력 초기에 결정적이었던 작품을 명령형으로 다시 선언하는 작업이다.

그는 최근 작업에서도 기보 기호들을 반복해 활용한다. 이전에는 수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손 아이콘을 이제는 만화의 모션 라인과 함께 새롭게 전용한다. 만화 역시 그의 이미지-알파벳을 구성하는 또 다른 문자들을 제공하는 장르다. 이러한 요소들은 ‘빚을 쥐는 방식’을 다룬 연작에 등장한다.

여기서 빚은 미국이 농인의 노동과 기술적 혁신에 진 빚인 동시에,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들이 떠맡도록 내몰린 경제적 부채이기도 하다. ‘담배를 어떻게 쥐는가(how do you hold your cigarette)’라는 밈을 언어유희적으로 변형한 이 연작은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 흔히 부여되는 무표정하고 건조한 유머와는 다른, 일종의 블랙유머를 보여준다.


김 크리스틴 선, 〈When I Play the Deaf Card〉, 2019,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휘트니 미국미술관 전시장에서는 건축적 규모의 벽화 〈Ghost(ed) Notes〉(2024/2025)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요 전시층으로 들어서는 관람객을 맞이한다. 네 줄의 흔들리는 오선 위에 드문드문 놓인 음표들이 벽을 따라 이어져 허드슨강을 마주한 천장 높이의 창문까지 뻗어간다. 이 네 줄의 오선은 미국수어에서 ‘오선(staff)’을 나타내는 네 손가락 수어를 암시한다.

현재 시애틀 헨리 아트 갤러리의 외벽에도 설치되어 있는 이 벽화는 누군가와 갑자기 연락을 끊는 ‘고스팅(ghosting)’과 주류의 소통 체계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함께 성찰하는 작품으로 설명된다. 음악에서 ‘고스트 노트(ghost note)’란 명확한 음높이가 없으며 리듬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혹은 지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하는 음을 뜻한다. 뉴욕에 설치된 이 작품은 또 다른 함의를 획득한다.

벽화가 이른바 ‘고스트 피어(Ghost Pier)’라 불리는 데이비드 해먼스의 〈Day’s End〉(2021)를 내려다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옛 52번 부두의 형태를 강철 구조물로 재현한 것으로, 해당 부두는 과거 퀴어들의 크루징과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던 장소였으나 뉴욕에서 에이즈 유행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1970년대에 철거되었다.

김 크리스틴 선의 최근 인포그래픽 작업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로의 회귀다. 그는 로체스터 공과대학교 학부 재학 당시 1년간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경험이 있다. 김 크리스틴 선이 언급했듯, 인포그래픽은 “어떤 언어로든 쉽게 소통할 수 있고, 세계 어디에서나 언제든 어떠한 아이디어도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쳐진다. 통계학과 과학 분야에서 그래픽 방법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 도표와 그래프는 인쇄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의 밀림을 정리하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또한 정보를 압축하고 비교하며 병치함으로써 일정한 패턴을 드러내거나 분석을 돕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그래픽은 마치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고, 마케팅 업계는 이 가능성을 재빠르게 포착해 도표를 광고와 설득의 도구로 활용했다. 과학적 관리법 역시 이러한 그래픽적 ‘사실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무기화해 노동을 지시하고 휴식 시간을 통제하며, 지원금을 배분하거나 박탈하고,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낙인찍는 데 사용했다.


김 크리스틴 선, 〈Degrees of My Deaf Rage in the Art World〉, 2018, 종이에 목탄, 오일 파스텔, 125 x 125 cm ©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의 인포그래픽은 보편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대신 ‘농인의 데이터(Deaf data)’를 내세우며 권위를 탈취한다. 그의 인포그래픽이 농인의 경험에 관한 것이라면, 동시에 원그래프의 역사와 형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윌리엄 플레이페어가 1801년 원그래프를 처음 도입했을 때, 원 전체는 국가를 나타냈고 각 부분은 인구와 생산량, 군사력 등을 보여주었다.

이후 여러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원그래프가 읽기 어렵고 심지어 시각적 정보의 착시와도 같다고 끊임없이 지적해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나 학술지, 오늘날에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읽도록 고안된 이러한 도표와 각종 그래프는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서 점차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어왔다. 지도는 영토보다 커진다.

이를테면 13개의 조각, 즉 13가지 상황으로 나뉜 〈When I Play the Deaf Card〉(2019)와 같은 작품에서 거대한 원의 크기는 해당 행위나 문제가 지닌 규모를 드러내며, 때로는 농인을 소수자로 축소해 규정하는 것에 맞서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김 크리스틴 선이 제시하는 ‘사실’은 즉각적으로 읽히기는커녕 한눈에 파악할 수조차 없다.

액자 안을 가득 채운 광대한 여백과 그에 비해 극도로 작은 글자들은 관람객의 움직임을 멈춰 세운다. 관람객은 고개를 치켜들고, 앞뒤로 움직이거나 액자 가까이 다가가야 하며, 부분에서 부분으로, 다시 전체로 시선을 옮겨가며 읽는 동시에 비어 있는 공간의 의미까지 헤아려야 한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전시 개막식에서 나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접근성팀의 한 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원그래프에서 떼어낸 듯한 일련의 예각과 둔각으로 구성된 〈Degrees of My Deaf Rage in the Art World〉(2018) 앞에 서 있었다. 그중 한 예각에는 “구겐하임 접근성 매니저”라고 적혀 있었다.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며 인간을 비인격화하는 형식을 김 크리스틴 선이 웃기면서도 분노 어린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사례였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러다 나는 김 크리스틴 선이 뉴욕에서 처음 가졌던 직업 가운데 하나가 2002년 뉴욕 농인협회에서 다른 농인들이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접근성과 행정 절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례관리자로 일했던 것이었음을 떠올렸다. 이후 2007년에는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 접근성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새로운 장애예술에서 상당수의 작업은 인프라 자체를 다루어왔다.

장애 정체성보다는 배제와 장애화의 구조를 이론화하거나—이를테면 박 맥아서의 2014년 작품 〈Ramps〉는 작가가 근무하거나 전시했던 기관들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휠체어 경사로를 빌려와 구성한 작업이다—낙인의 상징을 새로운 의미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콘스탄티나 자비차노스의 〈Call to Post [Violet]〉(2019/2024)은 네온빛 보라색 조명에 잠기고 초저주파음으로 진동하는 거대한 카펫 경사로로, 익명성이 강조되는 모텔의 이른바 ‘매직 핑거스 침대’ 미학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크리스틴 선의 모든 작업이 ‘장애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그의 관점과 감각 세계, 그리고 그의 손에서 비롯된다.


김 크리스틴 선, 〈How to Measure Loudness〉, 2014, 종이에 파스텔, 흑연, 96.5 x 127 cm © 김 크리스틴 선

내가 특히 좋아하는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 가운데 일부는 언어와 문화 사이에 시각적 가교를 제공하기보다, 그래픽 방식을 의도적으로 청인 관객에게 어렵거나 접근하기 힘든 형태로 활용한다. 농맹인 시인이자 연구자인 존 리 클라크는 2021년 인상적인 논고 「접근성에 반대하여」를 발표하며, 접근성의 영역에서 무난하게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성 자체를 요구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물었다. “왜 항상 그들에 관한 이야기여야 하는가? 왜 그들이 우리를 포용하느냐, 포용하지 않느냐의 문제여야 하는가? 왜 우리에 관한 이야기, 즉 우리가 그들을 포함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되지 않는가?” 김 크리스틴 선의 벤 다이어그램 연작은 이러한 질문에 응답한다. 이 작업은 벤 다이어그램이라는 특정한 도구가 현상을 도상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작은 기계로 고안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존 벤이 『기호논리학』(1881)을 통해 이 도표를 널리 알렸을 때, 그는 이를 명제를 검증하고 추론을 도출하는 데 사용했다. 두 개 이상의 원 또는 범주가 겹치는 곳에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고 간주된다(“어떤 A는 B이다”). 김 크리스틴 선은 자신의 벤 다이어그램에서 서로 불편하게 충돌하는 범주들을 밀착시키며, 그 중첩의 공간을 불일치와 마찰이 발생하는 장소로 탐구한다. 그의 원들은 불규칙한 형태를 띠고, 목탄선은 번져 있다.

이러한 다이어그램 가운데 하나인 〈Pronouns in American Sign Language(미국수어의 대명사)〉(2020)는 평소 내 아파트 벽에 걸려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단순한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 가운데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고, 외부 세계에서 들어오는 입력이 달라질 때마다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작품은 각각 ‘가리키기(point)’라고 적힌 세 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미국수어에서 단수 대명사(나, 너, 그/그녀/그것)를 표현하는 동작이다.

하나의 원이 다른 원과 겹치는 곳에는 김 크리스틴 선이 ‘복수 가리키기(plural point)’라고 적어두었다. 이는 우리, 너희, 그들을 나타내기 위해 손을 쓸어 움직이는 동작을 의미한다. 이 연작에 관한 인터뷰에서 김 크리스틴 선은 인포그래픽이 “제스처나 신체 언어를 모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Pronouns in American Sign Language〉가 지닌 제스처의 규모는 미국수어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도식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화를 유도한다. 나는 이 작품이 내 벽 위에 구획해놓은 광대한 흰색 공간을 종종 하나의 무대로 생각한다. 최소한의 선과 글자는 마치 무대 위 배우나 사물의 위치를 표시하는 스파이크 테이프처럼 기능한다.


김 크리스틴 선, 〈Echo Trap〉, 2021, 벽화,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 김 크리스틴 선

〈Pronouns in American Sign Language〉에서 세 개의 원이 모두 겹치는 지점에는 공통된 속성(정체성이나 공동체) 대신 ‘책임 떠넘기기(BLAME GAME)’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는 ‘농인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으며, 교차성에 관한 벤 다이어그램의 통상적인 접근과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동시에 이는 극심한 트랜스젠더 혐오가 존재하는 시대에 대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된 첨예한 문화에도 주목하게 한다.

미국수어의 대명사는 흔히 성별 구분이 없는 것으로 설명된다(가리키기, 복수 가리키기). 그러나 ‘그(he)’, ‘그녀(she)’, ‘그들(they)’에는 서로 다른 입 모양 형태소나 표정이 동반될 수 있다. 보다 넓게 보면 성중립적 용어는 음성언어뿐 아니라 수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영어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대명사를 밝히거나 나열하는 행위, 혹은 작품에 〈대명사〉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조차 지울 수 없을 만큼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내 아파트를 방문하거나 줌을 통해 화면으로 접속하는 영어 원어민들은 운율감 있게 가볍게 들리는 ‘BLAME GAME’이라는 문구와, 작품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가리키기’를 보고 종종 당혹스러워한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추상화와 비교를 수행하는 하나의 기계로서 〈대명사〉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서로 다른 요소를 연관 짓는 행위가 지닌 위험을 파고든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김 크리스틴 선이 제작해온 수많은 건축적 규모의 작업과 여러 장소에 분산된 프로젝트들이 과연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갤러리 안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실제로 그는 빌보드와 상점의 쇼윈도, 비행기 뒤에 매달려 날리는 배너 등에 수많은 캡션을 배치하며 도시 전체의 풍경을 활성화해왔다(〈Captioning the City〉, 맨체스터, 2021). 그의 공공 설치작업 중 상당수는 주변 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거나 이동하면서 주의를 기울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는 라이브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와 손글씨 캡션 작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장애예술의 영역 안팎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미술관에 다가가면서 나는 그의 빌보드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고, 로비의 영상 스크린에서는 그의 문구가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서베이 전시는 2011년 이후 이어져 온 그의 경력 가운데 주로 방대한 드로잉 작업을 횡단하듯 보여주며, ‘장애의 선(disability line)’에서 일어난 부정할 수 없는 반란을 드러낸다. 대신 로비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첼라, 에밀리, 커비, J., 레이철, 제론, 찰스, 알렉산드리아, 레인, 나일을 비롯해 장애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었다.

활동가 시미 린턴은 내게 “점점 불어나던 군중과 그 군중의 멋진 분위기가 정말 짜릿했어요”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접근성과 의료 서비스,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것들을 향한 약속이 불완전한 채 점차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역시 새롭게 변형된 하나의 공론장이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