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개념미술과 재현미술의 영역이 겹쳐지는 지점 어딘가에서, 김 크리스틴 선은 언어와 음악, 그리고 농인으로서의 개인적 표현을 둘러싼 흥미로운 질문들을 탐구하며 풍부한 표현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 능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세계에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미니멀한 외관 아래 감춰진 복잡성과 정서적 무게감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은 《온종일 밤새도록》을 통해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반가운 회고적 전시를 선보인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미술관과 작가의 관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충실하고 통찰력 있으며 안정된 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김 크리스틴 선의 창작 활동이 앞으로 펼쳐나갈 다음 장을 내다본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을 살펴보기 위한 적절한 출발점은 2012년 작품 〈피아니시…시모 (더 나쁜 마무리)〉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음악 기호 ‘p’가 거꾸로 선 나무처럼 배열되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속해서 갈라지면서 점점 더 작고 수많은 ‘p’로 증식한다. 작가는 TED 강연에서 ‘p’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기호라고 밝힌 바 있다.

‘p’ 하나는 조금 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이고, 두 개의 ‘p’는 그보다 더 여리게, 네 개의 ‘p’는 한층 더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침묵에 가까워진다. 그는 〈피아니시…시모 (더 나쁜 마무리)〉에 대해 “아무리 수천, 수만 개의 p가 존재해도 완전한 침묵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p-나무’를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이 지금 내가 정의하는 침묵이다. 아주 희미한 소리”라고 말했다.

〈피아니시…시모 (더 나쁜 마무리)〉는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서 음악과 소리, 언어와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는 음악 기보법을 차용해 침묵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이를 미니멀한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한다. 선명한 붉은색의 선택과 나무 아래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며 셀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모여드는 ‘p’의 형태는 작품에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손으로 직접 다듬어낸 듯한 감각을 부여한다.


《All Day All Night》 전시전경 © 휘트니 미술관

1980년에 태어난 김 크리스틴 선은 뉴욕주 북부의 바드 칼리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지만, 베를린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전까지 자신의 예술적 방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그곳에서 소리와 관계 맺는 일이 자신의 작업에서 핵심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통해 저는 마침내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던 어떤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는 두 명의 미국수어 통역사를 통해 내게 말했다. “제가 정말로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답은 소리였어요. 자라면서 소리는 늘 제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소리를 무시하고, 말하자면 그것을 유령처럼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내면화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베를린에 있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김 크리스틴 선은 작업에서 종종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구사한다. 2019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된 연작 '일상적 상황에서의 농인의 분노 각도'는 예각에서 둔각, 완전한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를 보여준다. 각각의 각도에는 농인이 마주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형태의 공격성을 설명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예를 들어 예각에는 “재수 없는 인간들에게서 사과를 받지 못함”이라는 문구가, 더 큰 각도에는 “속으로 우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수어를 모르는 가족과 친척들을 수년간 상대해온 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은 여러 방식으로 언어를 유희적으로 다룬다. 이를테면 직각에는 “정당한(Right) 분노”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right’는 ‘직각’인 동시에 ‘정당한’이라는 의미를 지녀 김 크리스틴 선이 자신의 분노를 어떤 입장으로 규정하는지에 일정한 모호성을 더한다. 다른 각도에 붙은 문구들 가운데 일부는 단어에 취소선이 그어져 있으며, 그중 몇몇 단어는 작품의 다른 부분에서 다시 등장한다. 작품 전체에는 일종의 불안정성이 감돌며, 마치 여러 관점을 동시에 점유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 크리스틴 선, 〈How Do You Hold Your Debt〉, 2022, 종이에 목탄, 112 x 112 cm ©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은 작업에서 수어의 움직임과 반복을 자주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How Do You Hold Your Debt〉는 한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뒤 다른 손의 검지로 그 손바닥을 찌르듯 표현하는 미국수어의 ‘빚(debt)’ 수어에서 출발한다. 김 크리스틴 선은 작품에서 위를 향한 손바닥의 형상을 여러 차례 그리고, 검지로 찌르는 동작을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검은 선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그 선들 사이에 육아비, 공과금, 학자금 대출, 건강보험료 등 금전적 빚을 지게 되는 다양한 이유를 적어 넣는다.

〈How Do You Hold Your Debt〉와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수많은 청구서에 압도된 누군가가 ‘빚’이라는 수어를 강조하듯 반복해서 표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미국수어를 구사할 때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관람자를 작가 자신의 소통 경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이 작품은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를 종이 위에 기록하려는 음악 기보법의 방식과도 평행을 이루는데, 김 크리스틴 선은 자신의 작업에서 이러한 대응 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체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김 크리스틴 선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이 때로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아트 바젤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통역사를 통해, 글을 통해, 또 다른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받고 전달하며 살아가다 보면 그 과정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늘 오해받을까 두려워합니다.”


김 크리스틴 선 © 렉시 선

김 크리스틴 선은 미술관과 협업할 때 종종 자신이 지켜내야 할 우선순위를 선택하며 끊임없이 맞서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휘트니 미국미술관에서의 경험은 매우 달랐다. 그는 내게 “끝없이 좋은 이야기밖에 할 게 없어요”라며 “사람들이 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어서 미리 준비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크리스틴 선에 따르면 휘트니 미국미술관은 직원들이 《All Day All Night》을 보다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농인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워크숍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이 미술관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미국수어 투어를 제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크리스틴 선의 2020년 작품 〈성조기〉는 그가 2020년 슈퍼볼에서 미국 국가를 수어로 공연했던 경험을 참조한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자신의 공연이 사실상 대부분 지워졌다고 설명했다. “TV 중계에서 제가 화면에 나온 것은 불과 몇 초뿐이었습니다. 폭스 스포츠 웹사이트에서 제 공연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는 ‘보너스 피드’에서도, 카메라는 각 노래가 절반 정도 진행되자 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화면으로 전환됐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당시 공연의 행위를 다시 몸으로 구현한다.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 크게 수어를 펼쳐 보였던 것처럼, 4피트 x 4피트 크기의 종이 위에 단어들을 넓게 펼쳐 배치한다. 이는 김 크리스틴 선 자신과 농인 공동체, 그리고 그의 예술이 가시성을 획득했던 복잡하고도 불완전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행위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전시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인상적인 순간들로 가득한 이 전시에서도 특히 빛나는 장면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