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학술을 넘나드는 미술 작가 이소요의 연구 기반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 《미완의 식물지―이소요》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2025년 12월 4일부터 진행 중이다. 전시는 서울시립북서울관의 기획 ‘예술가의 연구’ 시리즈의 일환으로, 미술사·자연사·생물학의 학술적 배경 아래 생물 표본의 문화사를 탐구해온 이소요의 연구 기반 예술을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 주석〉(2021~현재)으로 선보인다.


이소요,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 주석’, 2021–현재, 각 식물 종의 〈에피소드 드로잉〉, 〈식물 보존물〉, 〈참고자료〉가 한 세트를 이루는 설치 작품 8점 © 이소요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연구’라는 표현은 종종 창작의 출발점이나 작품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호출된다. 이때의 연구란 대체로 창작 이전의 준비 과정에서 예술가가 얻게 되는 영감에 머무는데, ‘연구에 기반한 예술’이라고 할 때의 연구는 과연 예술 작품의 내부적인 생산 논리를 실제로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을까?​ 

이소요는 연구를 지식 생산의 계보 속에서 기존에 밝혀진 것(선행 연구)을 바탕에 두는 태도로 정의한다. 연구의 중심에는 시공간을 넘어 대화하는 집단지성이 있고, ‘참조와 인용’의 형식을 통해 소통하며 체계를 갖춘 지식으로서 연구가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1948)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주석’을 붙인 선행 연구에 해당한다.

도봉섭과 심학진이 한반도의 식물을 직접 관찰하고 채집해 집대성하려 했으나 미완으로 남은 기록으로, 이후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해석되며 계속해서 덧붙여져 왔다. 이소요는 예술가로서 한반도 식물상에 관한 이 연구에 동참했고, 1940년대 이후 출간된 남북한의 식물지를 비교하는 메타연구와 함께 식물의 서식지를 찾아 채집과 관찰을 통해 현시점의 한반도 식생 조사를 수년간 지속해왔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도해비교표 연작(2025)은 책에 기록된 도해와 설명 등 식물 지식이 후속 연구에서 어떻게 인용되고 변주되었는지를 추적해 문서화한 것으로, 그 자체로 과학적·실증적 방법론에 기반한 연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문제는 연구로서 성립한 이 과정이 어떻게 예술로 전환되는가에 있다. 연구의 형식(언어)과 미술의 형식(형태)은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와 작품 사이에는 창조적 비약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는 그 비약의 근거를 개념이나 서사가 아닌 연구에 기반해 이루어진 형식적 결정들에 두며, 이는 ‘생물 표본 제작’이라는 작가 특유의 작업 과정에서 보존 대상의 선택, 보존물의 분절과 배치, 드로잉과 문서가 놓이는 방식 등으로 나타난다. 


이소요,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 주석’, ‘도해비교표’ 연작, 2025 © 이소요

한반도 식생 조사 과정에서 채집한 식물과 연구자료를 보존물과 드로잉으로 가공한 설치미술 작품은 이러한 형식적 판단의 총체다. 〈식물 보존물〉은 잎과 꽃, 씨 등 식물의 구성 요소들을 각각 보존처리해 표본대지 위에서 콜라주한 것으로 자연상태의 식물이 아닌, 연구 과정에서 선택된 특정 순간(상태)들을 하나의 화면 위에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재구성한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에피소드 드로잉’ 또한 식물을 채집, 조사, 가공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작가의 심상을 글과 드로잉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이는 표본이라는 형식 자체가 지닌 도상성과 관련되는데 표본은 객관적 사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제거·배열 과정에서 제작자의 정서와 주관이 반영된 결과물로, 지식을 생산하는 도구인 동시에 시각적·형식적 구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설치 작업은 작가의 연구로부터 도출된 분류의 방식과 선택의 기준에 따라 표본을 재배열하는 형식적 판단을 통해 연구가 도달한 상태를 예술의 형식으로 남긴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연구와 예술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비약이 어디에서 가능해지는지를 작가의 학문적 전문성에 뿌리를 둔 표본이라는 독창적 방법론을 통해 보여주며, 3월 22일까지 진행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