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인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전시를 통해 일반 감상자들에게 공개된다. 작품이 외적 세계와 무관한 독자적 총체이자 불가역적 완성체라는 관념은 오래 전에 무효가 되었고, 그리하여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전시 환경의 조건에 따라 가변하여 설치되는 오늘날, 전시는 작업의 일부이자 미술 행위로서 공연 예술과 흡사해졌다. 전시는 특정한 시간 동안 특정한 장소에서 마치 작업물들의 퍼포먼스처럼 구현된다.

감상자는 전시 기간에 맞추어 전시장에 찾아가지 않으면 작가의 작업이 그 시간과 공간에서만 보여주는 특정한 국면을 영원히 놓치게 된다. 같은 제목의 작업이 나중에 다른 전시장에 다시 설치된다 하더라도, 공간과 배치가 달라진 이상, 그것이 보여주는 국면과 구현하는 효과도 달라질 것이다. 설치와 행위가 우세한 오늘날의 전시에서 감상자가 얻는 것은 이 같은 가변적인 공간의 체험과 일회적인 시간성의 감각이다.

김영글의 작업은 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한 인쇄물과 영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일부 인쇄물은 작가 스스로 운영하는 돛과닻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김영글의 작업의 상당수는 책의 형태로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이는 전시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적 조건을 따르지 않더라도 작가의 작업을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감상자는 가변성 없는 균질한 포맷의 작품을 정해진 시기의 단일한 전시장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공간에서 감상한다. 일회적인 시간성의 조급한 아쉬움 없이 원하는 만큼 반복해서 보고 읽는다.

전시 못지않게 출판에 주력한다는 것, 가변성을 넘어 견고하고도 휴대 가능한 최종 형태를 고안하고 생산한다는 것, 책이라는 기술복제품으로 유통시킨다는 것. 이로 인해 김영글의 작업은 단순히 글을 쓰고 사진과 드로잉 같은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감상자가 작업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도를 다각화함으로써 미술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환경 자체를 새로 만들기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은 전시장을 넘어 우리의 아주 구체적인 일상으로 들어온다. 책꽂이 한 켠에서 언제든 다시 꺼내 보면서 미술 작품과 활동의 범주를 새롭게 상상한다. 전시를 매개하지 않은, 접근과 반복 감상의 가능성을 높인, 미술은 감상자에게 의외의 해방감을 고취하고 그것은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김영글, 〈사로잡힌 돌〉, 2019, 책, 136쪽, 13 x 19 cm © 김영글

김영글의 글쓰기와 영상 작업은 내용과 창작 원리의 관점에서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벽〉, 〈사로잡힌 돌〉, 그리고 최근에 진행 중인 〈검정〉처럼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주제로 삼아 그것에 집중한 이야기를 글쓰기로 증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란 나라〉와 〈해마 찾기〉에서처럼 역시 어떤 주제를 선정하되 그것에서 출발하여 한국 근현대사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않고 지워지거나 잊혀진 주체와 사건 들을 불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모나미 153 연대기〉와 〈사로잡힌 돌〉의 몇몇 산문에서 그러하듯 두 경향은 명확히 구분되는 대신 유연하게 합치되기도 한다.

하나의 예로, 영상 〈파란 나라〉에서 작가는 20세기 초 회현동에서 벨기에 영사관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이후 상업은행으로 사용되다 1980년대에 남현동으로 건축 자재를 해체해 옮겨 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독특한 건축물의 내력을 되짚어 본다. 건물의 역사에 대한제국과 벨기에의 외교 관계로부터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과 노동자 탄압을 지나 1980년대 개발 사업으로 인한 사당 빈민촌 철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얹힌다.

이때 벨기에의 유명한 문화 생산물인 파란 스머프들이 영상에 난입하여, 한국에 수입된 서구적 양식의 건축물을 지은 건설 노동자이자, 해방 이후 근대화와 수출액 달성을 위해 동원되고 탄압받은 흰 머릿수건과 모자의 공장 노동자들,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며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구타하는 하이바 쓴 사복 전경들, 그리고 캡모자를 쓴 철거촌의 용역과 주민 들로 변신한다. 생업 현장의 무수한 시민들, 어떤 삶과 죽음을 겪었을지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남기지 않은 대중, 이 같은 역사의 참여자들이 영상과 서사 안에서 잠입, 소멸, 출몰을 거듭한다.

실존하는 사물,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 사실의 편린들을 작가의 상상에 따라 수합하고, 배치하고, 증축한 서사는 그럴 듯함(verisimlitude)의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감상자에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현기증을 야기한다. 작가는 사실일 수 있는 것이 마치 거짓처럼, 꾸며낸 것일 텐데도 마치 사실처럼, 이율배반의 두 범주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섬세하게, 그리고 유머를 가득 담아, 연결시킨다.

​김영글의 작업을 감상하며 우리는 돌이나 색 같은 자연의 사물과 현상에도 이미 언제나 인간의 해석이 기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고, 볼펜과 건물 같은 인공의 대상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노동의 결과로써 생산되고, 소비되고, 전파되고, 오용되는 정치적인 맥락에 깊이 연루된다. 나아가 그것들이 중립적인 자연물이나 단순한 상품 및 소비재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예술 활동의 질료라는 것을 인식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