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글 작가의 영상 〈해마 찾기〉(2016)에는 잔잔한 내레이션과 함께 해양생물과 흐르는 물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어느 날 갑자기 해마가 사라졌다. 해마가 사라졌을 때 인간의 능력 일부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곧 모두 그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는 익명의 주인공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해마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관객은 이것이 특정한 해마를 찾는 어느 개인의 이야기와 과학적 사실을 결합한 실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지와 내레이션을 넘나들며 서서히 전개되는 “해마 찾기”는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헤쳐나가며 역사를 심판하는 우화가 된다. 익명의 주인공이 해마를 찾으려면 주변 세상을 돌아보아야 한다. 영상은 신축 주택단지와 도시 거주자들의 통근 인파로 붐비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념행사에서 외교적으로 악수를 나누는 모습, 핵무기 폭발의 섬광을 말없이 바라보는 세계 정상, 격렬한 내전 현장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관객이 이렇게 이질적인 장면을 서로 연관시키는 과정에서 해마는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혼란으로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씨름하는 개인에게 보편적이면서도 익명성을 가진 상징으로 떠오른다. 영상은 밀물과 썰물의 흐름으로 시작해 자연 풍경에서부터 인간이 창조한 물리적·사회적 시나리오로 흘러넘치게 된다.

기억 속에 다시 나타난 해마는 형태가 바뀌고, 해마 자신이 휩쓸려갔던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지도 못한다. 해마는 그저 자신이 놓인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리듬에 맞춰 표류한다. 즉,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각언어를 분해하고 재창조하는 하나의 구조이다. 

김영글 작가의 작품은 출판물과 영상물의 형태를 넘나들며 책을 예술품으로, 그리고 책의 텍스트를 시각적 사고의 틀로 활용한다. 책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변화하고 독자와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책에 제시된 내용에 옳고 그른 해석은 없으며, 결말에 단 하나의 의미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김영글 작가에게 있어 책과 그 책의 내용은 유동적이고 확장성 있는 생명을 지니며, 개념적 성찰과 개인적인 의미가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책이 비판적 상상력의 도구 역할을 하듯이 김영글 작가의 작품에서 해석하는 행위는 종종 이미지, 텍스트, 소리를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행해진다. 그림과 단어는 일반적인 맥락을 벗어나고, 이야기는 이미지와의 연계성을 따라 전개되며, 이미지의 의미는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관계구조는 작가의 작품에서 상징과 은유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는 우리 시각문화에서 친숙하고 보편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 언어가 된다.


김영글, 〈모나미 153 연대기〉, 2009, 책, 153쪽, 15 x 22 cm © 김영글

김영글 작가의〈모나미 153 연대기〉(2009)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모나미 153 볼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모나미 153의 색상, 용도, 디자인 등 볼펜이 가진 여러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회상, 역사, 사진, 노래 가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이용해 일곱 개 챕터에 걸쳐 권위주의, 경제성장, 문화 발전을 포함한 한국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 속에서 문맥과 화자가 변화하며 모나미 153은 흥망성쇠를 겪고 대중의 추억을 품게 된 물건으로 표현된다. 모나미 153은 현대화라는 국가적 배경에서 주체적인 사물이 되기도 하고, 종이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필기구가 되기도 한다. 책은 단어와 이미지, 페이지와 프레임, 실화와 허구를 자유롭게 연결하며 서로 다른 요소를 결합하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모나미 153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과 긴장감이 발생하는데, 누구에게나 익숙한 물건이기 때문에 독자는 볼펜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통적인 이야기 흐름이나 표현 방법을 따르지 않는 대신 독자를 모나미 153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여정으로 인도하며, 이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독자의 사고와 이질적인 시각적·텍스트적 요소에 대한 개인의 해석이 필요하다. 모나미 153 연대기는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를 동시에 경험하게 하고 식별 가능한 것을 유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추측해보게 한다. 


김영글, 〈사로잡힌 돌〉, 2019, 책, 136쪽, 13 x 19 cm © 김영글

〈사로잡힌 돌〉(2019)은 미술사, 일상, 자연 환경에 나타난 돌의 모습을 수집한 출판물이다. 이 책에는 자연의 돌, 조각의 재료인 돌, 역사화 속의 돌이 나란히 놓여 있다. 돌은 구도를 잡기 위한 받침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된다. 만약 우리가 돌을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돌 그 자체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

김영글 작가는 대상을 확대하여 주변을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 이를 설명하지 않고 직접 보여주고자 한다. 이렇게 익숙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관찰, 이해, 적용으로 이어지는 자신만의 주관적인 체계를 만든다. 


김영글, 〈파란 나라〉, 2019, 단채널 비디오, FHD, 17분 40초 © 김영글

​작가의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고, 평범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본질을 보여줌으로 이미지와 말이 가진 힘을 끌어낸다. 〈파란 나라〉(2019)는 한국의 문화·예술 공공기관에 영향을 주는 국제 정치와 한국 역사를 스머프 캐릭터와 뒤섞어놓은 단편영화다. 영화에서 스머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만화 캐릭터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스머프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한국의 정치적·문화적 변화, 도시계획, 계층 구분과 맞물려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 성찰과 추상적인 질문을 나누는 짧은 프랑스어 대화 음성도 교차하여 등장한다. 스머프의 원작자인 벨기에인 피에르 컬리포드(Pierre Culliford)의 모국어가 프랑스어다. 관객은 영화의 궤적을 따라가며 수동적인 시청에서 벗어나 다양한 출처의 이미지와 음성이 중첩되며 나타나는 연결고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문맥이라는 개념이 제거되어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자료화면에도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정치 행사, 기업가 모임, 시위 현장, 도시 풍경 등 차례로 스쳐지나가는 장면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결말에서는 홍콩 시위대에 뿌려지는 파란색 물감이나 트위터 로고의 파란 배경을 보여주며 현대적 사건에서 파란색이 미묘하게 보편적임을 보여준다. 영화가 나타내는 바를 이해하는 과정은 정해진 맥락이 없는 가운데 이미지와 내러티브가 변화하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만화책에서 스머프를 조심스레 오려내는 모습을 영화 도입부에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접근을 예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머프는 만화라는 친숙한 문맥에서 꺼내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새롭고 다면적인 세상에 놓여지고, 일반적인 전개가 아닌 세부 디테일에 의해 흘러가는 내러티브를 갖는다. 

사실과 허구,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비판적인 성찰이 가능한 것이다. 영화는 익숙한 스토리텔링 형식과 흔한 이미지에서 시작해 짧은 이야기와 이질적인 장면을 조합하며 예상되는 맥락을 타파한다. 이로써 관객은 내러티브는 선형적이어야 하고, 이미지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야기는 전개 방식에 따라 흘러간다는 개념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갖는다. 이 흐릿한 진실과 허구에서 탈구축의 정치가 나타난다.

김영글 작가의 작품은 정치적인 개념이나 특정 사회적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암시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불확실함과 불분명함은 혼란을 야기하기 보다는 잠재적인 대안이 떠오르는 공간이 된다. 사실을 허구로, 이미지를 텍스트로, 책을 예술품으로, 때로는 그 반대로 표현하는 김영글 작가의 작품은 비판적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을 창조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