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연, 〈얼굴 1〉, 2011, 장지에 채색, 41x32cm © 양유연

양유연의 작업은 ‘나’의 역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다양한 인물군상에 투사하여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채색의 메마른 공간에 부유하며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들은 온전한 상태가 아닌, 뇌가 없거나 심장에 구멍이 나있고 나체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혹은 기다란 머리칼로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눈과 코에서 분비물이 쏟아지고 생채기가 드러난 모습으로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직설적으로 제시되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그 때의 잔상〉, 〈귀가〉와 같이 작품의 제목들을 냉소적이고 무덤덤하게 제시하여 상처를 입은 ‘나’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내가 존재하는 현실의 상황을 애써 무던히 수용하려는 듯 했다. 

‘나’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지속하면서 작업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계기는 시선의 확장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전의 작업이 자아의 내면을 드러내 보였다면, 이번 신작은 감정이 전이된 외부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수십만 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달을 마치 건물 옥상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커다랗게 확대하여 건물을 압도하고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달’을 떠올리면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움푹 파이고 거무스름한 분화구들로 인해 달의 이미지는 생소하고 심지어는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달의 분화구의 모습은 낡고 허름해진 건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제시대에 지어져 오랜 세월 속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였던 충정아파트를 포함한 재건축 아파트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며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벌레가 갉아먹은 듯 흉물스럽다.

퇴색된 건물의 외관과 허름한 내부 모습에로의 감정이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을 둘러보며 동시대의 현상으로의 관심을 의미할 것이다. 절제되지 않았던 감정의 분출이 조절되고 현실 속의 나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상처를 받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회피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지극히 개인적인 '나'를 보편적인 대상으로 지각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며 시선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 머무르려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