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Seclusion》 전시전경 © 필 갤러리

모든 가치는 누군가 걸음을 멈추는 새벽녘 죽음에서 피어난다. 좋음과 나쁨은 삶과 죽음을 전제로 하고 일생은 그 가치를 묻는 유한한 시간이다. 수많은 물음에서 앎(知)은 앎이 아니고 도(道)는 도가 아니다. 살아있는 시간은 살아야할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에, 존재하는 모두는 자신을 모른 채 죽음에 이른다. 태초의 분리 이후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삶은 흩어지는 파편에 머무는 찰나이다.

이야기는 우주의 조각이 엇갈리거나 마주하는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인간은 조각과 조각을 잇는 조각이다. 이야기하는 조각은 만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순행하거나 역행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모은다. 모두가 이합집산하는 세상에서 진민욱은 회화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에게 회화는 이야기를 향유하고 소유하는 방법이다. 진민욱은 공자가 편찬한 고대 문집 시경에 소개된 시 모음에서 소재 몇 가지에 착안해 동식물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긴다.

지난 미술학 학제 안에서 전통 회화 재료와 매체, 미술사와 이론을 학습해온 그가 중국 역사에 가장 오래된 시집을 살피며 회화로 옮길 이미지를 탐색하는 작업은 선대 예술인의 활동과 닮아 보이지만 작자의 자전적 문맥을 형성한다. 화훼(花卉), 영모(翎毛), 초충(草蟲) 등 화조화 계보에서 진민욱의 회화에 등장하는 소재 다수는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사회는 전통사회의 문화적 상징 다수를 잃어버렸지만 화창한 봄날의 자연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번영의 기호로 여전히 작용하고, 동식물 여럿의 평화로운 관계적 이미지는 자연 본래의 질서에 순응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동식물 이미지 여럿이 교차하는 진민욱의 운율에서 문득 고독함이 스민다. 어질러진 공간에서 무언가가 고개를 든다. 진민욱이 '동산(東山)'이라 제목이 알려진 시에서 꾀꼬리를 차용할 때는 시화일치 사상에 따라 원본의 주제와 심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보여주는 작자 자신을 투영한다.

시 '동산'에서 꾀꼬리는 전쟁터로 떠난 약혼자 혹은 멀리서 오랫동안 떠나있던 친정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이미지라면, 진민욱의 회화에서 꾀꼬리는 주변 인물들의 장례를 겪으며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관찰자이자, 외조모와 살던 옛 터의 이전 풍경과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소녀이다. 그 작은 새에 '보이는' 사물과 '보여주는' 주체의 이원성이 내재되어 있다. 단일한 기호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는 조합되고 통일되어 있다.

진민욱이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이후 작업한 가시나무 꾀꼬리에서는 토끼 올무 셋이 '보여주는 주체'의 또 다른 사물로서 등장한다. 연약한 나뭇가지를 종이테이프로 이어 붙인 그것은 사냥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옆에 쌓인 돌탑처럼 의례 혹은 놀이를 위한 어떤 것에 가까워보인다. 불완전한 준비는 죄 없는 얼굴이 잡히는 시간을 하염없이 지연한다. 그림을 보는 누군가가 이미 회화라는 큰 올무에 자신이 걸렸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

화판을 벽과 벽 구석 혹은 허공에 좌우로 둥글게 설치하는 이전 전시에 이어 사각 화판 상단 우편 모서리에 기역자 화판 여럿을 옆으로 덧대어 설치하는 전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병풍 이미지를 연상하여 그림 속 그림 설정과 마찬가지로 실제와 환영 사이 작자가 위치한 경계선을 드러낸다. 그림과 그림은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며 무한히 반사하는 미장아빔(mise en abyme)으로 누군가의 심연과 이어진 문을 여는 오래된 주문이다. 진민욱은 문을 열었고, 여름 신록이 흔들거리는 공간에 심연의 숨소리가 울린다.

오뉴월의 숨, 여름바람을 껴안은 진민욱은 전시 제목에서 자기 회화를 소은(小隱)에 비유한다.2) 그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서의 회화를 상상한다. 남들이 모르는 '그'를 마주하기 위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를 애도하기 위해 진민욱은 일종의 기도실 같은 그곳을 찾아 머무른다. 고요한 새벽녘에 열리는 공간, 꿩과 사슴, 나비와 벌, 꽃과 나무 등 다양한 생물종이 등장하는 진민욱의 회화에서 허락되는 소리는 작은 새의 지저귐만이 아니다. 꾀꼬리는 여름새이다.

상춘의 잠에서 깨어나는 움직임은 화면 가운데 나뭇가지에 솜털을 남기고 화폭 뒤에 날개 한쪽을 펼친다. 달마가 신발 한 짝을 남기고 서방으로 떠나듯이 작은 새는 어느새 날아오른다. 그렇게 진민욱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우주에 움직이는 조각을 떠나 또 다른 조각 앞에 도달한다. 멈춰 선 사물과 움직이는 이미지, 그리고 연결을 위한 시간. 심연 한 가운데 작은 은신처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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