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회화 세계는 2007년 런던 이주라는 지리적 전환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초기
작업의 원동력은 비교적 명확했다. 외국어 속에서 느끼는 언어적 단절,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에서 비롯된 외로움, 그리고 그 감정들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영국의 미술 교육과 담론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서구 미술사의 중심 서사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을 자주 마주했다. “모더니즘부터 우리는 없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단순한 문화적
소외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왜 회화를 해야 하는지, 회화가
무엇을 대신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질문은 2010년을 전후로 형식적 실험과 결합하며 구체적인 화면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개인전 《관찰자의 포스트 모더니즘, 개념의 풍경화》(대안공간 루프, 2012)에서 소개된 〈풍경과 함께 스파이더맨#3.3〉(2011), 〈풍경에 없는 슈퍼마리오〉(2011), 〈초현실주의자〉(2011) 등은 르네상스의 원근법과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 대중문화 이미지와 추상적 제스처를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시킨다.
이때 캔버스는 하나의 통일된 장면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충돌하고 다시 관계를 맺는 장소가 된다. 작가는 이질적인 레이어들을 한 화면에 겹쳐놓음으로써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미술사의 제도적 언어와 개인적 감각이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이진한의 작업에서 ‘번역 불가능성’은 이후 점차 더 사적이고 감각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영국 생활 중 겪은 언어적 소외는 단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감정이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미끄러지고, 오해되고, 다른 의미로 변형되는 경험에 가깝다.
작가는 신조어, K-POP 가사, 영어권 표현, 일상
대화에서 포착한 어긋남을 회화의 소재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회화는 언어의 결핍을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라
언어가 놓친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일수록, 그의 화면 안에서는 더 강한 색과 움직임, 기호와 모티프로 되돌아온다.
2015년
개념미술가 마사 로슬러의 제스처를 목격한 사건은 이진한의 사유를 다시 한 번 전환시킨다. 마사 로슬러가
강연 중 “작은 바이올린을 켜는” 제스처를 했을 때, 그 표현은 영어권에서 조롱의 의미로 쓰일 수 있었지만, 작가는 현장에서
그것을 냉소가 아니라 유머와 환대, 일종의 친밀한 소통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작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마사〉(2015)와 〈Martha’s
Red Violin〉(2021), 그리고 개인전 《마사의 소문》(누크갤러리, 2021)은 바로 이 모호한 순간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스처의 ‘정확한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느낀 분위기와 감각이다. 이 경험은 이진한에게 의미란 고정된 정의가 아니라, 오해와 해석, 감정과 관계 사이에서 계속 새롭게 발생하는 것임을 확인시켰다.
귀국 이후 작가는 개인적
서사를 보다 보편적인 감정의 장면으로 변환하는 데 집중한다. 〈Hi,
Bye 안녕, 안녕〉(2016)은 외국인 친구와
거리에서 “하이” 하고 인사하자마자 “바이” 하고 멀어지는 찰나의 감정을 벚꽃이라는 모티프로 표현한 작업이다. 한국어의 “안녕”이 만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품는 말이라면, 영어의 “hi”와 “bye”는 그 둘을 나누어 발화한다. 작가는 이 언어적 차이를 붙잡을
수 없는 관계와 시간의 감각으로 확장한다.
《안녕, 안녕 Hi, Bye》(스페이스 이수,
2023)에서 〈Falling 봄의 끝〉(2023), 〈Moonbow 달무지개〉(2023), 〈Sun and Moon 해와 달〉(2023), 〈Two Lovers Walking in the Spring 봄을 걷는 두 연인〉(2023)
등은 만남과 이별, 밤과 낮, 해와 달, 꿈과 현실이 맞닿는 불가능한 순간들을 식물과 풍경의 언어로 펼쳐낸다.
최근 작업에서 이진한의
주제는 사랑, 실패, 친밀함, 여성으로서의 자기 인식, 삶의 부정적 감정을 전복하려는 태도로 더
넓어진다. 작가는 실패한 사랑이나 이별, 고난을 단순히 슬프고
결핍된 경험으로 다루기보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과 유머, 다시
말해 삶이 계속 움직이게 하는 감각을 붙잡고자 한다. 이는 최근 개인전 《Lucid Dreams》(갤러리현대,
2024)와 《Whispers》(갤러리현대 뉴욕
프로젝트 스페이스, 2025)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초기에는
언어적 단절과 이방인의 위치가 주요한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그 경험이 발, 꽃, 해와 달, 나무, 빛, 밤 같은 반복적 모티프를 통해 더욱 열린 상징 체계로 확장된다. 작가의 회화는 점점 더 많은 삶의 장면을 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의
질문을 놓지 않는다.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감각을 회화는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