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인, 〈아무도 없는 곳으로〉, 2008, 캔버스에 유채, 181 x 227 cm © 이호인

이호인의 그림에는 넓고 푸른 바다, 파도, 바람 그리고 섬이 있다. 이와 더불어 보일 듯 말 듯 한 형태로 이 자연에 깃든 인간의 흔적이 스미듯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어느 날 인도양 어딘가의 섬을 조감도적으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원시림이 빽빽이 들어선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섬 한 귀퉁이에 오색찬란하게 자리하고 있는 파라솔을 발견하고는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호인은 늘 자연과 함께 인간의 흔적을 병치시키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그의 작업이 담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파란 천막〉의 제작 동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설악산의 광대한 자연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파란색 천막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흔적은 아무리 산을 올라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픽셀이 부분적으로 나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최근작 〈잠자는 사람들〉 역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자연과 맺고 있는 피상적인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호인의 작품을 단순한 쪽빛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섬 풍경이라거나 혹은 자연의 일우를 클로즈업(close-up)하여 그려놓은 풍경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이호인, 〈파란 천막〉, 2009, 캔버스에 유채, 162 x 227 cm © 이호인

그렇다면 이호인은 어떤 이야기들을 이 풍경 속에 담아놓고 있는 것일까? 그의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하는 시선을 줌으로써 마치 피터팬(Peter Pan)이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자못 몽환적이며 환상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우리를 피터팬과 웬디(Wendy)가 도달했던 것 같은 이 세상 저편의 네버랜드(Neverland)로 이끌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풍경은 동화 속 네버랜드를 꿈꾸게 함과 동시에 우리를 네버랜드로 이끌기 보다는 깨진 픽셀처럼 조화되지 못한 채 놓여있는 작지만 강한 현실의 흔적을 강화시켜 더욱 더 현실을 각인 시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몽환적인 그림 속에서 깨닫게 되는 강한 현실감이라는 이와 같은 생경함은 자연의 한 부분을 깊숙이 관찰해 들어감으로써 산림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한 근작의 경우에도 발견할 수 있다. 산림의 일부를 클로즈업하여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형형색색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뿜어내는 빛으로 반짝이고 있으며, 호화로운 색채의 향연으로 빛이 산란하고 있는 숲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적인 붓질이나 흐르는 물감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근작이 주는 이러한 화려함과 장식성은 무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함에 지쳐 장식적으로까지 보이는 숲속 풍경에서 조차 작가는 허구와 실재,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틀거리를 교묘히 병치함으로써 그 구분을 해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호한 경계의 접점을 통해 허구와 실재, 자연과 문명이라는 것이 서로 이율배반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존재할 수 없는 조건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서로 어울리지 않고 생경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허구는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자연은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의를 부여 받는다고 해야 할까? 이들의 익숙하지만 생경한 동거가 그의 화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