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익 작가 © 서상익

테라로사 창업자인 김용덕 대표가 직접 질문자로 나서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미술부터 음악, 공간 등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문화예술계 명사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올해의 첫 인터뷰는 구상회화로 주목받고 있는 화가 서상익입니다.

서상익 화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일상에 녹아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붓 터치 그리고 작가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합니다.

김용덕 저는 어려서부터 미술계 여러 작가들과의 교류를 많이 해왔지만 한국 작가들의 구도나 색의 조화가 틀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왔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과거에 비하면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작가님은 현재 한국 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상익 기본적으로 감각이 좋은 작가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뭐든지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 문화의 특징이자 정체성은 하이브리드라고 생각합니다.

‘K-POP’을 보면 그 안에 락, 디스코, 재즈 등 다양한 장르들이 합쳐져 독자적인 하나의 새로운 음악이 된 것처럼, 지금 한국 미술도 제가 볼 때는 전통적인 것을 포함해 근·현대적인 요소 그리고 세계 미술의 현재 트렌드까지 융합되는 중인 듯합니다.

다만 이런 과정 속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지는 미지수인데, 저는 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상익, '페기의 초상들' 연작, 2022, 캔버스에 유채, 각 53 x 45 cm © 서상익

김용덕 현대미술 얘기를 하자면 가끔은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그림이나 예술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작품들이 몇 천억에 팔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걸 보면 마케팅이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고, 그 현상에 대중들이 따라가면서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보시기에 작품 자체로 그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작품성과 마케팅이 합쳐서 만들어낸 현상일까요?

서상익 저도 그 부분은 일부 동의합니다. 미술계가 지닌 문화적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권위가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렇기 때문에 왜곡되는 부분도 있고 작심하면 특정 스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이건 일부의 사례와 추측이고, 대부분은 납득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변화는 대중과 자본이 미술계에 들어오면서, 과거 소수의 특정 세력, 미술계 평론가, 학예사, 갤러리, 미대 교수들이 미술 권력을 지녔다면, 지금은 대중들이 지닌 힘의 무게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 작가들은 SNS를 통해 스스로 자기 작품을 선보이고,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은 이후 갤러리나 미술관이 작가를 선택하는 식으로 전시가 성사되기도 합니다.

즉 예전에는 권력의 세례를 받아야지 등단을 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을 등에 업고 미술계에 등단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미술계는 다소 약해진 것 같습니다. 대중과 자본의 힘이 만들어낸 효과라 할 수 있겠죠.
 
김용덕 대중의 선호도는 분명 중요하고 또 대중의 선호도가 시장을 확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상익 단시간에 시선을 끄는 작품들이 있지만, 대중들의 취향은 금방 높아집니다. 작가의 삶과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상처 입고 어두운 작품에 대한 취향까지 진행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대중의 취향은 금방 바뀌고 또 금방 높아진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커피 문화도 맥심으로 시작해, 스타벅스를 통해 에스프레소를 알게 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면서 더 좋은 공간과 더 좋은 커피에 대한 관심, 취향이 높아지며 우리의 커피 문화가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저는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선호가 점진적으로 한국 미술을 발전 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김용덕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요?

서상익 미술이 꼭 심오하고 진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되려 대중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캐쥬얼한 작업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작품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감각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예술의 경계를 단정 지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넌 이상형이 어떠니?”라고 물었을 때, 제 이상형을 뭐라고 대답 한들,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사랑에 빠진다고 규정짓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어떤 작품이든 감상자에게 이성적 혹은 감각적으로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술의 경계는, 경계를 짖지 않고 인식과 감각의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상익, 〈일요일 오후 4시〉, 2007, 캔버스에 유채, 130.3 x 162.2 cm © 서상익

김용덕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데, 혹시 작가님에게도 깊은 상처나 영감을 준 그런 뮤즈가 있었을까요?

서상익 제가 대학원에 재학중일 때는 척 클로스Chuck Close처럼 사람의 얼굴을 크게 그리는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잘 그린다는 작은 칭찬만으로도 이걸 해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매번 얼굴만 그리니 지겹고 힘들어서 방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낙서하는 노트가 있었는데, 당시 여자친구가 그 노트를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방황하는 저를 보며 말해주기를, “유화라는 게 왜 꼭 근엄하고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캔버스가 아니라 이 노트에 답이 있다. 이걸 바탕으로 유화를 그리면 매일 재밌게 그릴 수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낙서 중 하나를 골라서 그린 게, 침대 위에 사자가 누워있는 〈일요일 오후 4시〉입니다.

이 그림 이후에 저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죠. 반응은 둘째치고, 그때의 여자친구가,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그림에 대한 편견을 많이 깨주었고, 그래서 저도 굉장히 재밌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 첫 개인전을 열었고, 마침 미술시장도 호황이라 여러모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평가가 아직까지도 작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큰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제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뮤즈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김용덕 여러 동물이 있는데, 왜 사자였을까요?

서상익 사실 제가 굉장히 게으르고 생활 패턴도 일정치 않습니다.

당시 대학원 실기실에서 밤새 그림을 그리고 아침에 내려와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오후 5시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에 취해 있는데, 우연히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봤습니다.

그때 내용이 수사자가 하루에 19시간, 20시간을 내외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사자들은 근육이 과하게 발달되어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근육에 쌓인 젖산이 해소되지 않아 뇌의 압력이 올라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잠을 자서 젖산을 풀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비몽사몽간의 시간에 초현실적 오버랩을 경험했습니다. 순간 제가 아프리카 초원에 너른 바위 위에서 자는 거 같고, 사자가 제 방에서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은유와 상징이기보다는 순간의 비논리적인 오버랩. 이걸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일요일 오후 4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그림을 두고 어떤 논리적인 네러티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속 사자를 가리키며 ‘작가 자신을 나타내는 거다’, ‘작가는 강인한 존재인데, 침대에 자고 있다가 언젠간 깨어난다’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순간의 오버랩을 표현했을 뿐, 제 자신은 사실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인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내러티브를 그리면서 많이 느꼈던 게, 이야기의 단초는 내가 제공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완성시킨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유지하면서 감상자들에 의해 서사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감상자들이 어떻게든 서사를 이어간다는 점이고, 어느 순간에는 그런 다양한 해석들이 제 그림을 더욱 재밌게 만들더군요.


서상익, 〈Portrait of Peggy〉, 2022, 캔버스에 유채, 227.3 x 181.8 cm © 서상익

김용덕 이번에 저희와 ‘페기 구겐하임의 예술가들’이라는 주제로 함께 작업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작품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예술에는 문외한이었던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조류에 들어가 스스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냈는지, 예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에게는 이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서상익 저는 처음엔 제가 진행해오던 ‘화가의 성전’ 시리즈가 있으니까, 같은 포맷으로 작업을 하자고 제안을 드렸고요.

사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 어쨌든 미국 중심의 현대미술에서 가장 큰 권력 중 하나이기에, 애정보다는 약간의 불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페기 구겐하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막대한 재산을 왜 이렇게 예술에 쓰기로 결심했는지 의문도 들었고, 프랑스로 넘어가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만나고, 뒤샹을 통해서 여러 예술가들을 소개받고, 또 수많은 작가들을 발굴해 낸 과정과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에 대한 궁금함도 생기더군요.

한편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 작가들이 마초적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이 문란한, 소위 남성성이 강한 작가들인데 여성인 페기의 애정과 관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근·현대미술사에서는 어떻게 보면 성모마리아 같은 존재였던 페기 구겐하임의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미술 권력의 구조와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용덕 대중들에게 미술이라는 분야가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테라로사 독자들에게 미술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서상익 저는 시장의 트렌드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뭘 따라가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커플들의 미술관 데이트가 보편화된 것도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만의 감성 기준이 있기보다는 SNS에 올라오는 유명한 전시를 보고 유행을 쫓는 차원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시작점이 어떠하든 그렇게 트렌드를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취향이 생겨나고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생길 겁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국·공립 미술관을 가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인파가 붐비지 않는 시간에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공공미술관은 특히 공간이 커서,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작품과 오롯이 일대일로 대면하게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작품은 말 그대로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경험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과 냄새와 시간과 빛, 모든 게 작품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그런 경험들이 반복되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취향이 생기고, 그렇게 만들어진 취향과 감각은 개개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여유 있게 만들어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무작정 피하기보다는 ‘요즘 다들 미술관, 갤러리 간다는데 나도 한번 가보자’ 하며 무작정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어려운 것은 시작이지 미술이 아닙니다.

테라로사는 이번에 새롭게 오픈하는 제주 중문 에코라운지지점에 ‘페기 구겐하임의 예술가들’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품을 매장 내에 전시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의 삶이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듯, 테라로사는 커피를 통해 좀 더 많은 문화적, 예술적 교류가 우리 사회 전반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