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초롱(b. 1987)은 다양한 형태와 물질로 변환할 수 있는 사진의 유연성을 탐구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특정한 주제에 맞춰 사진을 촬영하는 작업 방식을 따르기보다 사진 촬영 자체에 집중하며, 더미 단위의 다종다양한 사진을 다루고 궁극적으로는 스냅 사진을 매개로 실천으로서의 예술을 과업으로 삼는다.


안초롱, 〈Birds 2013-2019〉, 201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드라이 마운트, 나무 프레임, 59.4x84cm © MnJ문화복지재단

안초롱은 일상과 예술,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진 매체의 유연한 가능성에 주목하며 작업을 전개해 왔다. 특히 사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일상 속에서 실천 가능한 예술을 탐구하며 스냅 사진을 주요한 작업 방식으로 삼아왔다.
 
미리 설정된 연출 안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대신 우연에 기반한 스냅 사진은 일상의 다양한 면면을 자유롭게 포착한다.
 
작가는 작고 다양한 순간의 파편들을 담은 스냅 사진을 하드 디스크 안에 데이터 형태로 저장하고, 이후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할 때 사진을 다시 꺼내 분류하여 물리적 공간 위로 호출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안초롱은 무형의 사진이 유형의 신체를 얻게 되었을 때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에 관심을 둔다.


《Natural Gene》 전시 전경(취미가, 2020) © 안초롱

2020년 취미가에서 열린 개인전 《Natural Gene》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작가의 친구가 여행지에서 보내온 엽서들의 뒷면 이미지, 그리고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작가가 출장-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Natural Gene》 전시 전경(취미가, 2020) © 안초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보내온 친구의 엽서와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른 여행지에서 작가 안초롱이 촬영하고 선택한 사진-이미지들은 다양한 유형의 형태로 물화되어 공간 안에 펼쳐졌다.
 
먼저, 엽서의 뒷면 이미지는 로켓 팬던트 목걸이 안의 작은 풍경이 되거나, 울트라 와이드 스크린 비율로 확대된 전시의 배경으로, 잡지 보그걸의 판형에 따라 트리밍되어 축소, 확대된 프린트 이미지로 전시장에 구현됐다.


《Natural Gene》 전시 전경(취미가, 2020) © 안초롱

안초롱의 사진은 여러 출장-여행지에서 35mm 소형 필름 카메라로 동일한 대상을 촬영한 스냅사진 1st Try, 2nd Try 사진과 하나의 컷으로만 촬영된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가의 버릇처럼 2번씩 촬영된 사진은 초점과 구도가 조금씩 바뀌거나, 여행지의 행인이 등장하거나 사라지며 사진의 시선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다시 보여주고, 첫번째와 두번째 사진이 찍히는 동안 일어난 시시콜콜하고 진지한 시간을 메시지에 첨부된 이미지처럼 던져둔다.
 
하나의 컷으로 촬영한 이미지들은 여러가지 기성 액자속에 들어가, 친구의 엽서에서 받은 선셋 이미지 풍경 수평선 위 홈데코 악세서리처럼 제시되곤 하였다.


안초롱, 〈Beauty Not Beauty〉,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과 협업. 《트랜스포지션》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21). 사진: 양이언. © 안초롱

이처럼 여러 형태로 변환 가능한 사진의 유연성을 실험해온 안초롱은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 또한 진행해오며, 사진이 생성하고 연결하는 관계와 그 확장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예를 들어, 2021년도에 선보인 〈Beauty Not Beauty〉 프로젝트는 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과 함께 ‘K-뷰티’를 주제로 한 잡지 쿨 매거진의 6호 ‘뷰티(BEAUTY)’ 리서치 결과물을 담고 있다.
 
이 작업에서 안초롱과 양민영은 패션 업계에서 다루는 무드 보드의 형식을 참조해 한국에 유통되는 화장품 브랜드의 질료적 특성을 나타내는 팔레트를 첫 번째 레이어에 두고, K-뷰티 문화와 관련한 여러 이미지를 그 위에 겹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안초롱, 〈Beauty Not Beauty〉(세부 이미지),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과 협업. © 안초롱

〈Beauty Not Beauty〉에 사용된 1,000여개의 이미지 더미는 K-뷰티라고 칭해지는 것들과 이를 둘러싼 외모 꾸미기 현상에 대해 수 개월간 촬영하고, 수집하고, 나열한 리서치 결과물이다.
 
화장도구 이미지와 뷰티 업계의 문법 안에서 사용되는 여성의 파편화된 신체 이미지, 콜라겐의 추상적 형태 등은 ‘치장하기’로서 무드 보드의 그래픽 요소로 활용되어 레이어를 이루고, 이렇게 뒤섞여 만들어진 하나의 장면은 오늘날의 K-뷰티 현상을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Fem》 전시 전경(d/p, 2022) © 안초롱

한편, 2022년 d/p에서 열린 개인전 《Fem》에서 안초롱은 사진이 일상적 시선을 반영하는 매체라는 점을 바탕으로, 사진 속 여성들이 보는 것과 여성 사진가로서 안초롱이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전시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작가가 찍은 사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여성을 촬영한 사진, 여성으로서의 시선이 담겼다고 선택한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Fem》 전시 전경(d/p, 2022) © 안초롱

그의 사진 속에서 여성들은 일상에서 그저 일상을 사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집이라는 가장 편안하고 일상적인 공간에 있거나, 생활의 흔적이 묻은 집기와 가구, 작가 주변의 친구와 동료, 집 밖의 풍경이 번갈아 등장했다.
 
그리고 산책이나 등산 같은 일상적 여가 활동 중에 엄마가 남기고, 딸에게 전해준 사진은 그녀가 자신의 일상에서 간직하고 전달하고 싶었던 순간을 보여준다.


《Fem》 전시 전경(d/p, 2022) © 안초롱

《Fem》은 이 사진을 작가의 사진과 함께 전시하여, 전문 작가의 사진과 일반인의 사진으로 구분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일상에서 기록하고 간직하고 싶어하는 이미지로서 사진이 존재하기를 택한다.
 
이러한 안초롱의 전시에서 여성 이미지는 ‘여성적인 것’의 사전적인 의미에 부합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인식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사회적으로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나 통념에 근거한 편협한 여성 이미지가 아닌, 내 옆에 실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AN CHORONG PLUS》 전시 전경(Dapalm, 2023) © 안초롱

이듬해 안초롱은 팝업/전시 공간인 다팜(Dapalm)에서 휴대폰 케이스를 사진의 액자로 전유하여 타인의 일상 속에 그의 사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서의 프로젝트 〈AN CHORONG PLUS〉(2023)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휴대전화 액세서리와 한 몸이 된 사진은 일상에서 사진이 존재하는 양상에서 더 나아가 ‘셀피와 함께 촬영된 사진 속 케이스에 삽입된 사진’으로 이미지가 연쇄하게끔 함으로써, 보편적 문화 행위가 되어버린 ‘촬영’에서 비롯된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상을 재고하게 만든다.


《Flesh》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5). 사진: 조준용. © 안초롱

이처럼 지지체에 기대어 이미지를 물질의 영역으로 진입시키는 안초롱의 시도는, 2025년 프라이머리 프랙티스에서 열린 개인전 《Flesh》에서도 이어졌다.
 
작가는 4인용 테이블을 눕혀 놓은 듯한 구조 위에 놓이고 끼워진 사진들을 통해 일견 일상생활 속 식탁의 상판과 유리 사이에 끼워진 사진 이미지의 존재 방식을 환기시켰다. 이는 사진이 지닌 속성, 즉 특정한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추억하고 기억하려는 태도에 견주어 보다 사적인 차원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끈다.


《Flesh》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5). 사진: 조준용. © 안초롱

이처럼 사사로운 습관과 행위에 기반한 그의 사진은 투명한 유리컵 속에 말려서 담긴 사진(〈뉴 홈〉, 2024)으로 이어지며, 이미지 자체의 해석적 의미나 미적 성취보다는 그것이 존재하는 물질적 양상을 경유해 우리의 내밀한 삶의 양식을 환기시키고 사진 이미지와 일상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Flesh》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5). 사진: 조준용. © 안초롱

또 《Flesh》 안의 사진들은 작가의 가족이나 지인, 그리고 사물과 풍경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일상의 ‘장면들’로 구성되었다.
 
그의 사진 속에서 인물은 과감하게 크롭되고, 그가 포착한 장면에서 배경은 중심부에 들어선 사물과 거의 동등하게 시선을 이끈다. 대부분의 피사체는 작가와의 특수한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기호라기 보다는 특유의 추상적 상황을 관통하는 정서만을 공유한다.
 
가령, 노쇠한 여인의 주름과 내비치는 핏줄은 극대화된 가죽의 물성으로 치환되고(〈살구와 여자〉, 2020, 〈면회 시간〉, 2024, 〈해피 버스데이〉, 2024 등), 노인의 발과 다리를 주무르는 손의 이미지(〈마사지〉, 2020)는 시간을 달리 담지한 두 신체의 접촉에서 비롯한 이질적 물질 감각으로 이어진다.


《Flesh》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5). 사진: 조준용. © 안초롱

한편, 누군가의 공간을 구성하는 물건들에서 부분 발췌된 이미지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개인의 신념이나 소망, 염원, 혹은 강박이나 취향은 원래의 기호와 상징체계에서 빗겨나 사물 그 자체의 이미지로 환원된다.
 
또한, 테이블 위에서 음식을 자르고 나누는 자세, 사물의 배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과 같이 신체의 부분만이 남겨진 장면들은 화면 밖 다양한 서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만의 기억이나 경험, 감정을 자극한다.


《Flesh》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5). 사진: 조준용. © 안초롱

이렇듯 안초롱은 스냅 사진을 통해 일상의 모습을 담으면서도 그 안의 구성 요소들 간의 위계를 해체하며 개인의 추억이나 사적 감상으로부터 이탈하고, 오히려 심리적, 정서적, 서사적 반응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이와 함께 다양한 일상적 사물과 사진 이미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사진을 둘러싼 일상적 감각을 환기한다. 이러한 안초롱의 예술적 실천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유연한 경계를 실험하며, 사진 이미지를 삶에 가까운 정서로 생동하게 만든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지나치기 쉬운 장면을 포착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제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안초롱,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안초롱 작가. 사진: 이은새.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

안초롱은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및 조소과를 전공하고 동대학원 조소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부터 사진가 김주원과 함께 팀 ‘압축과 팽창(CO/EX)’을 결성하여, 개인 작업과 콜렉티브 작업을 병행해 왔다.
 
개인전으로는 《Flesh》(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5), 《Fem》(d/p, 서울, 2022), 《Natural Gene》(취미가, 서울, 2020) 등이 있으며, 《레퍼런셜》(하이트컬렉션, 서울, 2026), 《호흡》(서서울미술관, 서울, 2026), 《THE NEUTRAL》(더 윌로, 서울, 2025), 《Natural Born Odd》(살리하라 아트센터, 자카르타, 2023), 《트랜스포지션》(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헀다.
 
안초롱은 2026년 두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ISCP), 2025년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 레지던시, 2023년 캐나다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 Fonderie Darling,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등에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