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연, 〈사건〉, 2013 © 민정연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가상적 건축 폐허를 묘사한 에칭 작품들은 인간이 만든 세계가 서서히 자연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들은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온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 전통에 오랫동안 강한 영향을 미쳐왔다.

만약 모더니즘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다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오히려 피라네시가 18세기에 상상했던 비전과 맞닿아 있는 생태적 불안으로 특징지어지는 듯하다. 하다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민정연의 개인전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깊이 기반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민정연은 최근 몇 년간 제작한 신작 회화와 종이 작업들을 선보인다. 그녀의 회화는 일반적으로 흘려 붓거나 부어 만든 아크릴 물감의 층 위에 극도로 세밀한 묘사를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노동집약적인 제작 과정을 즐긴다.

마치 자신의 방황하는 붓끝을 따라가며 작업에 완전히 몰입한 채 화면을 구축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 속 이미지들은 내장기관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 건축의 파편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서로 결합시킨다. 모더니즘 건축의 세부 요소들은 안개처럼 흐릿한 구름과 다중 소실점 사이를 떠다니며 화면 속에 배치된다.

보도자료가 다소 거창한 표현으로 민정연의 작업을 “우주의 장엄함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녀의 작업은 최근 회화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를 설명하자면 네오 라우흐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야요이 쿠사마의 생물형태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가까울 것이다.

〈Travaux 2〉(2010)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길한 구름 같은 형상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피라네시의 작품에서 사회가 폐허의 순간 자연에 굴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민정연의 작품에서는 유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탄생의 순간부터 서로 얽혀 있다. 하나의 성장이 다른 성장과 맞물리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의도한 심리적 긴장이나 이질감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은 다소 절제되어 있으며, 장식적인 성격이 강해 관객을 강하게 몰입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전시장 안쪽 공간에는 보다 작은 규모의 액자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이 드로잉들은 강렬한 그래픽적 특성을 지니며, 인간과 동물, 건축적 요소가 충돌하는 지점을 회화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대부분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소량의 색채가 강조점처럼 사용된다.

이 드로잉들은 집요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해칭(hatching)은 오목판화의 선묘를 연상시키며, 부풀어 오르는 형상들에 조각적인 질감을 부여한다. 조개껍데기, 털, 비계 구조물, 내장,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장기들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들이다.

민정연의 작업은 형식적 기교를 다소 내려놓고 수수께끼 같은 형상들에게 충분한 호흡의 공간을 허락할 때 가장 설득력을 발휘한다. 어쩌면 이 전시에는 사운드트랙이 하나 필요할지도 모른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작품이 내포한 심리적 긴장을 더욱 증폭시켜 줄 장치 말이다. 어둡고 강렬한 음악이 흐른다면 그 불길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될 것이다. 만약 거대한 버섯에게 집어삼켜질 운명이라면, 누구도 조용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테니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