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연, 〈공중에 뜬 발〉, 2012, 종이에 먹, 색연필, 32.6 x 32.6 cm © 민정연

“현실과 허구를 나누는 경계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현실적인 세계 안에서도 완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민정연, 올리비아 샌드와의 인터뷰, 『Asian Art』, 2012

어느 여행 중 민정연은 마드리드 중앙역에 들렀다가 그 안에 자리한 거대한 온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시 기차에 오르기보다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계속 여행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인간의 이동이 교차하는 건축적 결절점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식물학적 오아시스의 발견은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이 경험은 대표작 〈마드리드 역〉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에서 유기적이고 꿈결 같은 ‘정글’은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요소들과 병치되며, 다층적인 화면 구성 속에서 서로 얽혀 있다.


민정연, 〈마드리드 역〉, 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 x 200 cm © 민정연

모든 존재에게 인상의 축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망각의 작용과 함께 결국 남는 것은 본질, 즉 중요한 것, 다시 말해 기억이다. 민정연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변형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보다 보편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세계에는 질서도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 물질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형되며 이동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허구와 현실, 구조와 형태, 이성과 비이성 사이를 오가는 지속적인 운동이다.


온실의 기억

프랑스어로 ‘mémoire’는 기억을 뜻하는 동시에 관찰과 탐구를 바탕으로 한 학술 논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중의성을 활용하여 민정연은 자신만의 개인적인 온실을 구성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표본들과 현상들을 기록해 나간다. 그녀의 공간은 유동적이며 자율적이고 인공적이다. 이는 작가의 현실과 세대 경험의 일부를 이루는 비디오게임의 가상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는 유기적이고 흐르는 선들과 결합하며, 마치 반복되는 ‘New Game!’ 속에서 만남과 충돌, 분리와 파괴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여성적 형상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남성적 구조를 소환한다.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이 힘들은 민정연의 독특한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이러한 세계는 비범하지만 초현실주의적이지는 않다.

형식적으로는 초현실주의 미술을 연상시키지만, 작가는 무의식을 재현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녀의 이미지는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에서 출발한다. 민정연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우리의 지각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며, 나아가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새롭게 열어 보이는 데 있다.


매체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민정연은 드로잉과 회화에 동일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녀에게 드로잉은 마치 호흡과도 같은 행위이다. 드로잉은 창작 과정에서 더 큰 심리적 자유와 즉흥성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매우 가는 펜을 사용해 먹으로 화면을 촘촘하게 구축해 나가며, 때로는 수채나 색연필의 제한된 색채가 화면에 더해진다. 이러한 작업들은 정교함과 그래픽적인 순수성으로 특징지어진다.

화면의 각 영역에 일정한 수의 미세한 선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는 작업 방식은 작가만의 논리에 따른 일종의 제약이자 규칙이다. 반면 아크릴 회화는 보다 엄격한 구성과 깊은 사유를 요구하며, 즉흥성이 개입할 여지를 상대적으로 적게 허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더 넓은 신체적 움직임과 색채를 다루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회화는 드로잉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