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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문성식: 생사(生死)를 조용히 음미하는 드로잉의 진가
2007
반이정 | 미술평론가

The Artist © Sungsic Moon
문성식은 드로잉 전문 화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를 연상할 때 드로잉이 손쉬운 매개로 떠오르는 건 자연스럽다. 2000년대 중반 촘촘한 필치로 완성된 그의 아크릴 회화처럼, 그의 드로잉이 고밀도의 정교함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습작이 아닌 완성작으로서 드로잉의 면모를 개척한 것 같다.
드로잉을 하위범주에 예속시킨 미술계의 일반적 선입견을 접고, 밑그림 이상의 위력을 새삼 되짚게 만들었다. 문성식의 드로잉 노정(路程)은 평소엔 낮잡아 본 사물과 현상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단지 구식취향의 복귀나 향수의 부활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문성식,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 2007, 종이에 연필, 54 x 117 cm © 문성식
거의 모든 작품에서 생사(生死)를 둘러싼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 고민의 동력은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인 듯하다. 사냥과 노인처럼 하나같이 죽음과의 근접성이 높은 주제가 자주 반복된다. 영문 모른 채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겨냥한 구부정히 앉은 미숙한 사냥꾼. 사냥꾼 옆에 이따금 등장하는 귀 막은 소년은 살생(殺生) 앞에서 무력한 처지인 유년시절 작가인지도 모른다.
사냥이라는 일상적 레저문화가 결국 살생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어린 소년에게 불편한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수분이 빠져 피부가 자글자글한 노인도 자주 등장한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될 노인은 문성식의 작품이 천착했던 숲과 호흡을 함께 나누는 것 같다. 기하학적 패턴으로 화면을 가득 메운 가옥 그림을 보자. 집 안에는 여지없이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 나무로 꽉 들어찬 숲 그림과 동일한 구도를 취한다.

문성식, 〈숲의 내부를 위한 드로잉〉, 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53 x 65 cm © 문성식
유한한 삶이 풀 수 없는 미지의 세계는 숲에 홀로 남겨진 아이로 표상된다. 문성식에겐 미지의 숲과 노인의 인생은 동경과 연민의 상징이며 자기 점검의 거울인 것 같다. 그래서 〈숲과 아이〉(2010)는 무한한 숲 앞에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겸손한 자화상 같다. 한편 죽음의 맞은편에 있는 삶은 성적 농담이 묻어난 주제로 표상되곤 한다.
네 발 짐승의 교미는 한국에서 유년시절 동네 어귀에서 곧잘 관찰되는 광경이다. 개의 교미는 사냥이 남긴 인상처럼 어린 그에게 잔상을 남겼을 것이다. 네 발 짐승의 스스럼없는 정사 묘사에서 시작해서, 인류 문화사의 가장 중차대하고 위험한 주제인 섹스를 유쾌한 주제로 변주한다.

문성식, 〈사랑! 사랑! 사랑!〉, 2006, 종이에 연필, 29.5 x 21 cm © 문성식
〈사랑! 사랑! 사랑!〉(2006)은 러브호텔 내부를 익살맞게 투과한 드로잉인데 매우 한국적인 농담이다. 견고한 유교문화 때문에 동아시아의 성문화는 여전히 비공개로 실행된다. 숙박업소의 명판을 걸고 연인에게 성관계할 침실을 제공하는 (러브)호텔의 성업이 그것이다. 〈사랑! 사랑! 사랑!〉은 완고한 성윤리를 고집하는 문화 속에서 본능에 이끌려 각 층 각 방을 채운 연인들이 갖은 포즈로 정사하는 모습을 익살맞게 그렸다.
러브호텔 문화에 친숙한 현지 관객에게 공감어린 유모를 유독 안겨줄 것이며, 그렇기에 이 드로잉은 서구문화에선 이국적일 것이다. 이 같은 이국성은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2007)처럼 시골풍경이 분명함에도 한국의 도시 거주민마저 쉽게 공감하는 풍경화에서도 반복 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