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의 깊이》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허우중

우리는 밝고 어두운 도상 중 무엇을 본 것일까. 만약 우리가 밝은 도상을 볼 수 있다면 어두운 도상은 볼 수 없는 것일 테고, 만약 우리가 어두운 도상을 볼 수 있다면 밝은 도상은 볼 수 없는 것일 테다. 여기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배치 구도를 잠시 차치해 본다면, 밝고 어두움은 그저 서로 대비하는 개념이라는 명제를 윤활을 위한 기유(基油) 삼아 이 상충적 조건을 주관과 객관의 문제로 미끄러뜨릴 수도 있다.

여기서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일반 기준을 다시금 예술의 범주에서 통용되는 용어의 상부 구조의 영역으로 포괄해 보자면, 그것은 소위 양화(positivity)와 음화(negativity)라는 대립적 관계의 구도로 전치된다. 이처럼 단순 배치 구도로 침수했던 밝음과 어두움은 미학-문법적 이전이라는 수식적 전치를 통해 수평적 대치의 스칼라(Scala)를 돌출과 함몰, 부상과 침전, 상승과 강하와 같은 수직적 스칼라로 회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의 구도를 한편으로는 순의 방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역의 방향으로 평면 회화라는 매체의 하위 구조의 영역에 적용할 때, 이 회전하는 스칼라는 표현이 구성 혹은 해체하는 도상 그리고 색채가 파열 혹은 축조하는 색채에 관한 논의를 우리 앞에 불어 세운다.      

일전 허우중의 작업은 여전히 (주관적) 관념을 시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지만, 사뭇 최근의 작업과는 꽤나 다른 형상을 취한다. 이는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미적 주체로서의 제 위치 설정에 있어서 일으켜진 변화에 기인할 것이다. 초창기 작가의 작업은 사회적인 여러 사건을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몇몇의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콜라주의 방식으로 붙여내어 새로운 서사-있음 혹은 서사-없음을 의미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그가 흑백 만화의 이미지적 특징을 차용하며 그것에 "픽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 사건들로부터 그것의 서사를 제하려는 자세와 관계가 있다. 화면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별 서사는 본연의 맥락을 소거 당하는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서사-없음의 서사를 한 컷의 삽화적 이미지로 대변한다.

이에 더해 평면에서 배경의 이미지를 삭제함으로써 단지 도상만을 어색하게 내버려 두고 스스로 무엇과도 무관하게 부유하는 콜라주의 집합 이미지는 인간 일반을 아울러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관념"이라는 작가의 주제 설정에 선형적인 연장 또는 쌓아 올림의 단초가 된다.

이후 등장한 허우중의 백색 추상 작업은 이렇듯 (존재에게) 상호적인 기준으로서의 (존재의) '없음' 그리고 (존재가) '그러하지 않음'과 같이, 누구나 한 번쯤 돌이키게 되는 관념의 문제를 향한 접착이 남긴 마지막 흔적의 일부이자 전체이다. 도상을 떼어내고 남은 선의 흔적은 벽과 도상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형성되는 지지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적 위상을 어지럽힌다.

허우중이 지워낸 이 인식의 체제 안에서 에르곤(ergon)은 곧 파레르곤(parergon)이 될 수도, 파레르곤은 곧 에르곤이 될 수도 있다. 옅고 어두운 선들은 더는 도상의 변을 나타내지도 숨기지도 않으며, 흰색 면은 이로써 도상의 면을 양화하기도 음화하기도 한다. 이때 '의미'는 그 자체로 (의미를) '하기도' (의미를) '하지 않음을 하기도'라는 동사와 함께 쓰일 수 있다.

그림자는 절대 그 원래의 형상일 수 없음에도 분명 그것을 이루는 일부인 것처럼 백색이라는 없음의 색채적 의미는 분명 어떤 도상의 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또한 절대 그 원형의 있음일 수 없는 것이다. 궁극에 그가 남긴 것은 흐름이자 지층이고, 다름이자 차이이며, 기척이자 자취일 뿐이다.

허우중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송은 아트큐브, 2020)에서 새로이 선보인 이번 신작들은 명료성에 관한 역전의 논리를 통해 지금까지 지속해 온 관념과 그 이면에 대한 태도를 한층 더 강렬한 대비로 현현케 한다. 이제 백색은 주변이나 음화를 위한 객체의 지위를 완전하게 벗어던진다. 이를 위해 최소한으로 허우중이 마련한 깊이감의 차원은, 청색과 붉은색의 배경 위에 흰색의 면을 덧칠했음을 있는 그대로 가시화하며 작가가 이로부터 무엇을 밝히고자 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 유색(有色)과의 대비와 함께, 무엇인가를 보이지 않도록 하기에 익숙했던 비가시성의 백색은 이제 전면에서 보통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시하는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면서 그것의 가시성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당연하게도 도상이라고 인지했던 것은 배경이었으며,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게도 도상이었다.

양화했던 것은 음화하고, 음화했던 것은 양화한다. 여백은 사실 채움이었고, 채움은 사실 여백이었던 것이다. 명확한 모호함도, 모호한 명확함도 논리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이 현실이라는 세계에서는 참의 명제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모든 기준과 판단은 상대적일 수 있다는 실재다. 그러한 실재는 관념이라는 선명하지 않은 범주 안에서 도리어 논리적일 수 있다. 불안의 표현으로서 출발했던 허우중의 구상은 철학적인 추상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다르게 인식도록 했다. 이 '다른' 인식으로부터 소위 불가한 것으로 여겨졌던 진리의 영역은 밝혀진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의심과 의심이 도달하게 한 그곳에서, 실체하는 것은 오로지 '나'일 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