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Jungju, 1948, 2014 © An Jungju

헐렝한, 힘을 뺀 저항과 표현의 강력함

부스스한 머리, 커다란 뿔테 안경, 느릿느릿한 말투에 헛헛한 사람 좋은 웃음. 내게 안정주의 인상은 이렇다. 아무리 바빠도 뛸 것 같지 않고, 아무리 화를 내도 그리 무서울 것 같지 않은. 뾰족하게 날선 세련됨이란 왠지 안정주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봤을 때, 왠지 안정주라는 작가를 미술판에서 꽤 오래 보겠구나 생각했다.

Installation view of 《Distant World》 © MakeShop Art Space

오랜만에 그와 진지하게 작품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기획자와 작가로 그렇게 정색하고 마주하기는 처음인 것도 같았다. 3시간가량. 예전 작업부터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아본 후, 나는 안정주가 또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행여 ‘조급증’에 물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안정주는 늘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이미지의 작가였다. 한동안 안 보인다 싶으면 베를린, 후쿠오카, 헬싱키... 그는 여기저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소위 잘 나가는 제트플라이트 아티스트의 스타일은 분명 아니었다. 어디에 있어도 꼭 지역민 같은 모습으로 마치 옆 동네를 마실이라도 다녀오듯 해외 레지던시도 가고, 전시도 가고 그랬다. 다녀오면 그가 본 세상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담아왔다. 그것도 딱 그의 스타일로.

안정주의 영상작업에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그의 영상작업에서 탄탄한 시나리오, 뛰어난 연기력과 풀 스텝을 장착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면밀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확실히 요즘 유행하는 영화적 스타일의 영상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낯선 곳에 가면 만날법한 이국적인 생경함을 렌즈에 들이대지도 않는다.

한 번의 붓질로도 공간을 만들고, 형상을 만들어내는 동양화에서처럼, 한가로이 비디오카메라를 둘러메고 느긋하게 작은 (하지만 흥미로운) 장면들을 포착한다. 마치 비디오를 붓삼아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이런 안정주식의 스타일은 2005년 첫 개인전 《Music Video》에서부터 도드라졌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Their War' 시리즈는 에티오피아와 이스라엘, 그리고 파키스탄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있다. 군사, 전쟁, 기아, 이데올로기, 종교 등 다양한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가서 정작 안정주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길거리에서 테이블 축구게임을 하는 아이들, 인도/파키스탄의 국경지대에서 이루어지는 교대식,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일회용도시락 껍질이었다.

특히 〈Their war 2 - Israel〉(2005)에서 바람에 정신없이 뒹구는 일회용도시락을 뒤쫒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영상은 갈등이나 대립, 종교, 이데올로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작품을 보고 난 후에도 잔상은 오래갔었고, 더불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의 뭉치들을 좀처럼 떨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휙휙~ 거침없이 도시락 껍질을 몰아붙이던 바람소리의 여운과 함께.

바람소리. 소리, 사운드. 사운드는 안정주의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미지를 다룰 때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운드를 다루는 방식 역시 현란하지는 않다.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필수불가결한. 안정주에게 사운드는 그렇다.

예를 들어 건물 철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운드를 재조합 구성하여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리듬감을 만들면서 4채널의 영상이미지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Breaking to Bits〉), 컨베이어 벨트 위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주병들과 기계 소음을 재가공하여 언젠가 들어보았던 듯한 멜로디를 구사해내기도 한다(〈The bottles〉).

컨베이어 벨트 위의 소주병들의 움직임도,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도, 축구게임 놀이를 하는 모습에서도 이런 반복적인 패턴은 어느새 새로운 시각적 리듬감을 만들면서 소리와 어우러진다.

An Jungju, 1990, 2014 © An Jungju

최근 있었던 《열 번의 총성》은 오랜만에 만난 안정주의 개인전이었다. 2005년 자금성에서 보았던 제식훈련 장면을 기록한 〈Drills〉나 〈Their War - Pakistan〉을 통해서도 작가적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쟁놀이라는 모티프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의외였지만, 여전히 개별 작품들 안에서 그가 이미지와 주제, 사운드를 다루는 방식들이 남아 있고, 심지어 훨씬 더 세련되고 짜임새 있어졌다는 것은 기대이상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왜 아이들 놀이의 노래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며 움직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놀이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궁금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궁금증이 슬며시 사라질 무렵, 안정주의 궁금증은 배가 되었고, 작품으로 풀어내었다. 〈잘자라 전우야〉, 〈All for One, One for all〉을 통해서 익숙한 놀이를 생생한 리듬감의 영상과 사운드로 표현했다.

특히 스크린의 사이즈나 위치, 배치방식 등 세심한 공간 구성을 통해 작품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전시의 대표 신작이라 부를 수 있는 6채널의 영상 〈열 번의 총성〉에서 보이는 새로운 변화였다. 우선 스케일이 커졌고, 훨씬 체계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세심하게 조작되는 시간과 전문 무용수들의 몸동작, 그리고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움직이는 카메라까지 그 동안의 작업방식과는 달라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다행히 새로운 시도는 지금까지 안정주의 작업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미까지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열 번의 총성〉은 이전 작업에 비해 훨씬 묵직한 느낌의 작업이었지만, 그것이 그동안 내적으로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꾹꾹 쌓아 놓았다가 한 번에 ‘후욱~’ 하고 뱉어버린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이렇게 뱉어낸 다음 안정주는 힘을 다시 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득한 세계》에서 안정주는 예상치 못한 작품들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괜한 걱정이 앞섰다. 개인전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새로운 작업. 그것은 분명 비디오 작업은 아니었지만, 엄밀하게 사진 작업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출력설치물이라 불러야 할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가볍게 유랑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잘 하는, 굳어진 어깨를 풀고, 힘을 뺀 상태에서 슬쩍 이미지로 말걸기를 또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아득한 세계》는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전현직 대통령들을 다루고 있다. 모두 오른손을 들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모습이다. 안정주는 인터넷에서 구한 이미지들을 크게 확대하여 A4 용지(대체로 이면지) 위에 출력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테이프로 붙여서 거대한 종이 현수막같은 것을 만들었다.

낱낱의 이미지만으로는 전체 이미지를 알 수 없지만, 수십 장이 모여서 만들어낸 대통령의 선서장면을 보는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얼마 전 있었던 지방선거에 앞으로 있을 보궐선거까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무수히 많았던 사건 사고들까지.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이미지 속 대통령들의 선거 모습은 파란만장한 한국현대사를 떠오르게 했다.

영상작업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그리고 다행히) 안정주의 스타일은 살아있다. 잘 찍은 사진을 찾는 대신, 자료원에서 이미지 자료를 받아왔고, 멋지게 수정을 보고 프레임을 하는 대신 이면지 위에 확대출력을 해 걸었다. 일일이 테이프로 조각 이미지들을 붙이는 방식 역시 영상에서 이미지를 분절시켰던 방식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퍼덕이는 바람에, 뜨거운 햇살에 이미지는 낡아질 것이다.

그들의 선서가 퇴색했던 것처럼. 그러나 그들을 뽑았던 것은 정작 낱낱의 이면지 같은 우리였다고까지 생각한다면, 너무 과한 이입일까. 관객들은 이 이미지들을 통해서 무엇을 읽어낼까.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볼 때와는 달리, 이미지가 주는 인상은 강하고,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 역시 쉽지 않다.

An Jungju, 2013, 2014 © An Jungju

돌아보면, 안정주의 작업은 늘 셌다. (그만의 방식으로) 국가와 제도, 사회, 이데올로기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안정주의 작업이 세다거나 정치적이라는 범주에 국한시켰던 적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그가 커다란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작은 이야기에 집중했고, 추상적인 이념을 언급하기 보다는 현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작 스스로는 저항이나 반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기존의 시스템에 묻히지 않으려고 저항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 로마. 어디에서도 안정주는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소리 높여 외치는 저항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헐렝한, 힘을 뺀 이런 방식의 저항이 더 오래 강력할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