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b. 1989)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접하는 공동체와 장소를 달리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는 특정한 상황을 연출한다. 특히 작가는 동시대에 여러 갈래로 발생하는 이야기들과 그 층위에서 발생하는 것들, 그리고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존재들에 주목하며, 이를 미술과 디자인의 교집합에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김예슬, 〈추진력 연습기〉, 2023, 스케이트보드, 혼합매체, 300x300x120cm. 《stocker》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 김예슬

김예슬은 대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작업을 시각 예술로 풀어나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가의 관심은 설치 및 조각 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입체 작업에서 그는 기성품을 주 재료로 활용해 이미 만들어진 제품과 건축물에 적용된 디자인의 목적을 탐구하고, 이에 내재된 사회 시스템을 해체와 배제의 방식으로 그 열화된 구조를 드러낸다.


김예슬, 〈분실〉, 2019, 혼합매체, 가변설치 © 김예슬

이를테면, 과거 ‘고문 공장’이 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 창에서부터 특정한 날짜의 특정한 시간에 물줄기를 지상에 쏟아내도록 한 작업 〈분실〉(2019)은 이 건물에 상수도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착안해 제작되었다.
 
그리고 6년간 나이트클럽 포스터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에서 출발한 〈Constellation〉(2020)은 ‘지하경제’에서 작동하는 ‘비이상성’과 그 기간 동안에 남긴 촬영 기록, 업체들과 주고받은 견적서 등을 설치와 플립북 형태로 재구성한다. 


김예슬, 〈미술 시간〉, 2021, 영상, 컬러, 사운드, 4분 39초, 《두산아트랩 전시 2022》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2) © 김예슬

한편, 2022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두산아트랩 전시 2022》에 참여하며 선보인 영상 작품 〈미술 시간〉(2021)에서는 ‘어린이’의 목소리를 빌려 작가가 느끼는 미술의 무게와 거리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영상에는 작가가 작사한 노래 ‘미술시간’을 부르는 어린이 합창단 11명이 등장한다. 벨벳 원피스와 턱시도를 차려 입은 어린이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김예슬, 〈미술 시간〉, 2021, 영상, 컬러, 사운드, 4분 39초 © 김예슬

이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동요풍의 노래 ‘미술시간’은 “태권도 사범님/영어과외 선생님/미술시간 제일 좋아/죄송합니다”라는 가사로 시작해 도화지, 크레파스 등을 언급하며 각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러다 갑자기 “퍼포먼스는 알 수 없어/작가와의 대화 몰라/현대미술 포스트모던/대체 뭘까 아방가르드”와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며 동심의 세계에서 순간적으로 빠져나오게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소리에 엄마가 “예슬아!”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노래는 마무리된다.


《철갑신참 프래거 (鉄甲神斬 Fragger)》 전시 전경(얼터사이드, 2023) © 김예슬

이듬해 얼터사이드에서 열린 개인전 《철갑신참 프래거 (鉄甲神斬 Fragger)》에서도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전시에서 김예슬은 과거 서브컬처에서 양산된 성장형 소년물의 정형을 가져온다. 소년물에서 모종의 이유로 분투해야 하는 숙명을 갖게 된 주인공은 강화가 담보된 수련을 통해 성장하고, 적으로 상정된 이에게 승리를 쟁취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통과한다.


김예슬, 〈Sub zero excidian〉, 2023, 영상, 컬러, 사운드, 3분 7초 © 김예슬

이러한 일본 소년만화의 구성을 차용한 영상 작품 〈Sub zero excidian〉(2023)은 주인공 서연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다. 서연은 지구를 지키는 마이크로칩을 개발 중인 아버지를 따라 코딩을 학습하고 로봇을 조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 멸망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아버지와 함께 지구 멸망을 꾀하는 성진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서연은 그와 대결하게 된다.
 
서연과 민준은 블록 코드 아레나 챔피언십에서 맞붙게 되고, 결국 서연의 승리로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이 둘은 친구가 된다.


김예슬, 〈Sub zero excidian〉, 2023, 영상, 컬러, 사운드, 3분 7초 © 김예슬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는 줄곧 유소년기의 미성숙한 자아를 건드리며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김예슬의 작업에서 어린이 주인공들은 각자의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한 지점을 남긴다. 또한 코딩 학습을 통한 전투 방식은 코딩 학원에 내몰려 기술 학습에까지 분투해야 하는 이 시대의 어린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철갑신참 프레거》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문법을 따르면서도 오늘날 사회의 현실을 연상시키며 우리 스스로와 주변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즉, 이는 새로운 주인공이 아닌 대체자로서 아이를 효과적으로 훈육하기 위한 코드를 직조해야 하는 루프에 갇힌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예슬, 〈Tech titan〉, 2023, 영상, 컬러, 사운드, 3분 38초 © 김예슬

이처럼 김예슬은 어린이를 전면에 내세우며 오늘날의 현실과 사회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에 따르면, 어린이는 “가장 정치적인 존재”인 동시에 “가장 소외된 존재”다. 역사 속에서 어린이는 종종 국가의 대의를 위한 목적으로, 또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되어 왔다.
 
아직 사회에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지 않은 어린이는 이처럼 어른이 만든 사회와 국가의 대리인으로 이용되어 온 것이다. 김예슬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차용함으로써 어떠한 이상점을 목적으로 가지는 구조와 그 모순을 드러내어 현실의 모습을 다룬다. 


《Dinosavr》 전시 전경 (N/A, 2024) © 김예슬

어린이에 대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2인전 《Dinosavr》(N/A, 2024)에서 김예슬은 작가 헤미 랑베흐와 함께 공룡의 시절과 우리의 유년 시절이 공시적으로 중첩된 세계관을 연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전시에서 공룡과 아이들은 단순히 한 세계에 공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유비가 됨으로써 순환적으로 얽혀 있다.


김예슬, 〈Crushed carbone-Renault〉, 2024, 자동차 보닛, 혼합매체, 110x151x60cm. 《Dinosavr》 전시 전경 (N/A, 2024) © 김예슬

공룡과 유년 시절의 ‘어린 나’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과거에 머문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 이 둘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렇듯 전시는 공룡과 아이를 매개로, 상실보다 부재가 앞선 모든 것들을 암시하는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예슬, 〈성계돌파 오버드라이브〉,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분 39초. 《제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6) © 김예슬

한편, 2026년 아마도예술공간의 《제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에서 기획자 강수빈과 선보인 프로젝트는 아직 마주하지 않은 시간이 현재를 선행적으로 조직하는, 이른바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 전시에서 김예슬은 미래를 하나의 완결된 도착점이 아닌 끊임없이 갱신되는 열린 가능성의 집합으로 간주함으로써, 단일한 시간선이 아닌 복수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태로 전제하는 영상 작업들을 선보였다.


김예슬, 〈성계돌파 오버드라이브〉,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분 39초 © 김예슬

이번 신작에서도 작가는 어린이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그의 작업에서 어린이는 사회적 기호와 규범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채 다른 가능성을 감각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가령 〈성계돌파 오버드라이브〉(2026)의 소년들은 정체불명의 인물을 마주하며 불확정적인 시간의 층위와 조우하게 된다. 이는 미래에서 도래한 성인이 된 소년들의 형상이며, 이를 통해 미래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현재와 뒤섞인 채 이미 작동하고 있는 상태로 드러난다.


김예슬, 〈광역공진 드리프티드〉, 2026, 혼합재료, 가변크기 《제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6) © 김예슬

한편, 〈광역공진 드리프티드〉(2026)에서는 선창과 후창으로 구성된 민요 형식의 노래를 기반으로 복수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축적되어가는 소리들은 〈성계돌파 오버드라이브〉의 현재와 미래가 틈 사이로 스며들어 만나듯, 때로는 맞물리고 때로는 빗나간 채 변주된다.
 
노래는 완성도 높은 가창이라기엔 다소 어긋난 음정과 박자를 유지하며 느슨한 구조를 취한다. 이는 능숙하게 다듬어진 발성이나 정확한 수행을 전제하기보다, 누구나 쉽게 부르고 전해왔던 구전의 방식에 가까운 발화의 조건을 따르기 위함이다.
 
이로써 김예슬은 거칠고 비정제된 형식을 통해 복수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태로서의 미래를 공유되고 증폭되는 집단적 리듬으로 퍼져 나가도록 만든다.


김예슬, 〈광역공진 드리프티드〉, 2026, 혼합재료, 가변크기 © 김예슬

이렇듯 김예슬은 일상 속 디자인된 사물 또는 어린이를 통해 오늘날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틈에서 피어나는 가능성들을 설치와 입체, 영상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사회적 규범과 이상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빗겨 나오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만든다.

"내가 사는 사회 시스템이 왜 이렇게 디자인 되었는지에 대해, 해체와 배제의 방식으로 그 열화된 구조를 드러내고 싶다. 어떠한 이상점을 목적으로 가지는 구조와 그 실패를 보여주며 현실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디자인과 그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현실의 모습을 다루고자 한다." (김예슬, 작가 노트)


김예슬 작가 © 월간미술

김예슬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디자인공학과 학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과 브뤼셀을 기반으로, 시각예술가이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플래티넘을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철갑신참 프래거 鉄甲神斬 Fragger》(얼터사이드, 서울, 2023)가 있으며, 《제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6), 《사랑의 기원》(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6), 《시공時空 시나리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4), 《Dinosavr》(N/A, 서울, 2024), 《stocker》(SeMA 창고, 서울, 2023), 《두산아트랩 전시 2022》(두산갤러리, 서울, 2022)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김예슬은 TOKAS(도쿄, 2026), 서울시립 난지창작스튜디오(서울, 2023), Tator Factatory(리옹, 프랑스, 2021)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