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이 세상은 하나의 놀이터와 같아서 대학을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놀이기구 제작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 세상이 놀이동산 같고, 그 시스템에 우리가 순응하고,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끌려간다면 그 시스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시스템을 처음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또한 시스템 스스로든, 그것에 끌려가는 존재들과 반응하면서든 시스템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완결된 채로 끝없이 작동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LW : 시스템과 연결된 인과 관계들의 근원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모든 것은 수요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생존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데에 있어 특정한 집단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고안된 넓은 의미의 정치적 방식의 결정들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예를 들어, 원시 인류의 정치 구조가 지금의 구조로 진화한 과정을 상상해 본다거나 봉건군주제 시절의 한국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어떨까?
조선 시대를 지금의 기준으로 들여다보면 경제 성장률 0%, 인구 증가율 0%일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왕과 신분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라 판단되었을 것이다. 이후 봉건제도가 무너졌고 모두가 법적으로 평등한 시대가 도래했다.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생겼고 세상이 출렁였다.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수요가 요구하는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엔진이 발명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자들은 더 많은 원자재와 소비자가 필요해졌다. 세계 인구 증가율 그래프를 보면 석유 사용량과 거의 같은 증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구의 제국주의는 아시아의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적 경험이 심어놓은 강자에 대한 동경심 때문에 아직도 아시아는 서양처럼 되길 갈망한다. 유럽에서 한국의 백반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시아엔 파스타와 피자집이 정말 많다.
가장 성공적으로 서구화된 한국과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1900년대는 전송 속도 발달의 세기라 부를 수 있다. 모든 것이 속도 경쟁이었다. 화살에서 미사일로, 전보에서 위성 통신으로. 이동 속도의 경쟁은 자연스레 대형 유통 시장을 낳았고 세상은 더 많은 노동자, 소비자, 시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양에 의해 근대화를 이룬 아시아 국가들이 전 세계의 공장이 된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인 오늘날엔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인력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샌드위치를 먹는 아주 흔한 일상적 행위도 이런 시스템 안에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자유롭게 동의하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방식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한다. 이렇게 전략적인 구조 안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건 마치 놀이동산에 간 사람들과 같다. 놀이동산에 가면 설렌다. 그러나 동시에 무섭다. 내가 사회를 마주하고 느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놀이기구에 타서 그것이 작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세상은 이미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 세상이 작동시키는 기구에 올라탄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인과 관계에 의해서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이 세상(시스템)에 갑자기 출현했다. 과연 내가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동안 얼마나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을까?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절대 본질을 앞설 수 없다. 나는 세상에 제일 처음 출현했던 생명이 번식하고 환경에 의해 다양하게 진화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결과로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다. 나의 머리카락 색, 피부색을 비롯한 내 유전적 특징 등,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선택할 수 있을까? 만약 부모님의 만남과 선택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다시 놀이동산으로 돌아와서, 놀이동산의 입장에서는 내가 가든, 다른 그 누가 가든 중요하지 않다. 몇 가지 신체적 조건이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몇 가지 조건에 맞는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타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회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나는 돈을 내고 놀이기구-기계 구조-에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나는 즐거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환호성도 지른다. 그런데 같은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지점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같은 지점에서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나는 이것이 신기했다. 그것은 그저 기계 구조가 만들어준 것인데 어째서 서로 다른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구조 안에 들어가 거기에 모두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만약 2만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한 가족일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 나에게 온 모든 것들, 예를 들어 기술이나 관습,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에서 흘러내려 온 것이다.
LEE : 대화를 하면서 작가 이완의 표현법과 나의 표현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예를 든 조선 시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답변을 듣다 보니 이완이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은 최소 두 개의 시스템, 이미 만들어져 있어 누가 들어와도 상관없는 놀이기구와 같은 시스템과 필 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것 같다.
전자는 이 사회를 작동하게 하고 우리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며, 후자는 이완이 태어나기 위한 조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특별한 고유성이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 둘 모두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작가의 설명대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운명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는 것부터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LW : 그 두 개는 분리되기 어렵다. 나는 한국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내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을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이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조건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에 내가 태어난 거다.
1979년의 시스템이 이리저리 혼합되면서 이완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난 이게 맛있어, 난 이게 좋아.’라는 식의 취향 문제도 모두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 나의 취향이나 성향, 말투, 생각까지 모두 내가 살아온 환경의 영향 아래에서 배운 것이다. 나는 배우지 않은 것을 욕망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LEE : 예술은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체제 안에서 해석되고, 금기를 깨면서도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획일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정한 범위 안에서 금기를 깨뜨리는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규범 혹은 전통을 벗어나는 행동을 기대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면 외면하거나 비난한다. 시스템을 연구하니 잘 알 것이다. 이완이라는 예술가가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결국 이완의 작품(생산품)도 사회 구조 안에서 존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예술의 저항적이고 일탈적인 행위가 사회를 완전히 벗어나 버리면 무의미한 발화가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사회의 시스템과 매뉴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잘못하면 블랙홀과 같은 시스템에 흡수될 수도 있다.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길 수 있는 딜레마나 한계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중의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인가?
LW : 나의 경우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나의 작업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진행된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발견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대상을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금방 감지하고 실행하는 편이다. 내가 지금 왼손에 들고 있는 고리대금 5분 대출이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과격한 정치 선동 메시지가 적혀 있는 전단지는 모두 오늘 작업실로 오는 길에 발견해 주워 온 것이다.
내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빨간 글씨로 적힌 거의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이 두 전단지의 내용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참 재미있는 지점이다. 나는 이 두 개의 전단지만으로도 이 세상을 블랙 코미디로 표현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전시에 이 작업을 출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작업 노트에 적힌 단어들을 풀어내고 인물을 등장시켜 설명하면 소설이 되고, 조금 더 줄여 함축적으로 쓰면 시가 된다. 이 노트의 내용을 매뉴얼 삼아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다큐멘터리가 되고 한 컷으로 함축시키면 사진 작업이 된다. 나는 항상 코어(core)에 집중한다.
LEE : 모든 것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표현처럼 다양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중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니 진부하고 쉬워 보이지만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놀이기구 중에 〈미끄럼틀 Slide〉(2005)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나 깜짝 놀랐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놀이기구를 그대로 재현해도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텐데 그렇게 변형시킴으로써 고정된 의미의 한계를 깨뜨리고 양가적 사유를 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다. 여담인데 놀이기구를 만들었을 때 안전상 문제는 없었는지, 실제로 관객이 타거나 작동하는 것들이었는데 안전사고가 난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LW : 위험할 수 있다. 한 명, 어른이었는데 빠르게 올라가다 넘어진 적은 있었지만 실제 사고는 안 났다. 〈미끄럼틀〉의 경우 작품 밑 부분에 유압장치를 만들어 설치했다.
LEE : 〈펫-토이 PET-Toy〉(2005)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나? 다른 작업에 비해 덜 알려졌다.
LW : 놀이동산 작업을 한 뒤 장난감 작업을 했다. 어린이들이 밀면 날갯짓하는 장난감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엔 많이 만들었는데 정식으로 전시해서 보여주지는 않았다. 당시에 페트병이나 피자 박스 같은 걸로 악기를 만들고 어린이용 장난감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학습한다. 말을 배우고 숫자나 지식을 처음 배우는 것도 이때다. 사회성을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살펴보면 장난감은 어린이가 사회화되면서 인간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어릴 때 존재하던 장난감은 두 종류로 분류가 가능하다. 하나는 전쟁 무기 형태의 장난감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 역할을 시뮬레이션 하는 장난감이다.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 나이가 되면 제일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배운다. 물론 무기는 방어라는 양가성을 갖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만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인간은 경쟁하고 이기는 것부터 배운다.
그게 아니면 엄마 역할, 의사 역할, 경찰 역할 등을 흉내 낸다. 연극적인 요소가 들어간 장난감들을 보면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역할들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이런 장난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이게 인간 사회를 가장 단순하고 귀엽게 만들어 놓은 샘플이겠구나 싶다. 그래서 귀여운 총 모형과 칼, 창과 방패, 그리고 악기나 소리가 나는 것들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이니 이미 오래전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