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Yoo, The Fall, 2021, Machine learning generated moving image, unity, non-stop playing. Installation view of 《Chambers》 (Post Territory Ujeongguk, 2021). Photo: Byeonggon Shin. © Hana Yoo

수평으로 배열된 수많은 원형 상자들. 그렇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 스키너 상자와 같은 실험실은 어디를 가도 있다. 원이 편재한다 함은 원의 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원 안에 있는 점과 원 밖에 있는 임의의 점을 연결할 수 있는 한, 그 직선이 원의 경계를 열고 안과 밖을 연결하는 한, 원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원 안에 갇힌 것과 그 바깥에 있는 것을 동일하다 할 순 없다. 원 안에 갇힌 것에게는 원인과 결과를 대리할 자극과 행동의 두 변수만이 주어져 있고, 함수관계를 확인하는 차이 없는 반복의 단조로움에 포위되어 있지만, 원 바깥의 우리는 그 함수관계 바깥의 많은 변수들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우리는 아직 차이가 지워진 고통스런 반복이 아니라 반복마저 차이의 다른 이름이 되는 즐거운 반복의 세계 속에 있는 것이다. 

저 차이 없는 반복의 실험상자에서 ‘성공’이란, 닫힌 방 안을 안전하게 맴도는 것이다. 맴돌면서 확고한 함수의 구현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예찬이 일상의 보상에 더해 포상으로 주어진다 해도, 저 지루한 성공에 사로잡힐 쥐들은 없다. 그들은 맴돌지만 어느새 ‘학습’의 외연을 벗어나며 원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출구? 그건 아닐 것이다. 빠져나가면서 이내 원들이 정연하게 배열된 수평의 세계 아래로,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니까. 아니, 어쩌면 모든 출구는 추락으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형의 방마다 쥐들이 빠져나오며 낙하의 궤적을 그린다. 낙하의 궤적이 그저 곧은 직선이 아닌 것은 그것이 단지 중력이라는 하나의 힘에 끌려가는 것은 아님을 뜻하는 것일까? 덕분에 실험실이나 동물원 우리의 쇠창살을 만드는 직선적 ‘추락’과는 다른 구불구불한 ‘낙하’의 선이 되었다. 그래, 떨어지는 것마저 직선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겠어.

하나의 변수를 확인하는 신체일 때, 그 신체는 아무리 커도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결과치인 점과 연결되는 하나의 점. 그것이 x와 y간 일대일 대응을 모델로 하는 선형적인 함수관계의 요체다. 

따라서 원형의 방 안에서 쥐는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하나의 점일 뿐이다. 반면 함수관계에서 벗어나 추락할 때, 추락하는 쥐는 선을 그린다. 아무리 작은 쥐도 선을 그린다. 추락의 선 자체가 삐둘빼둘한 것은 함수관계의 방 안에서 이탈하여 발생하는 ‘낙하’라서 그럴 것이다. 직선을 뜻하는 선형적 관계에서 벗어난 것이니, 작은 이탈에서 다시 작은 이탈로 미시적 이탈을 거듭하는 선이라 그런 것이다. 

그렇게 낙하하는 쥐들이 그리는 수직방향의 선들이 나무들처럼 늘어서며 낙하의 숲이 조성된다. 정연한 원들이 만드는 세계 밑에,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출현한다. 1차원의 선형적 관계의 평면적 증식과는 또 다른 3차원의 세계가 그 곳에 있다. 낙하하는 쥐들이 만드는 세계는 3차원의 세계다.

물론 그것은 원형의 실험실마저 자신의 일부로 포함한다. 실험실 이전의 제멋대로의 선이 일차적이라 해도, 실험실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이탈하며 낙하하는 것인 한, 실험실의 원 없는 순수 낙하, 순수 이탈의 세계 같은 건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낙하하는 쥐들이 차원 수를 늘려가며 만드는 이 세계를 영상은 저 멀리서 포착한다. 정연한 평면적 세계로. 낙하하는 쥐들의 궤적도 저 멀리서 포착된다. 그러나 영상은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원들의 세계로 다가온다. 낙하, 아니 이탈의 이유를 보기 위해 원형의 방을 위에서 조감하는 신의 눈으로 접근한다. 그리곤 다시 슬그머니 낙하하는 것들을 따라 내려간다. 떨어지는 자들이 있는 곳에서 본다.

밧줄처럼 늘어선 낙하의 선 저 위로 실험실의 닫힌 원이 보인다. 실험실의 밑바닥이 보인다. 실험실 아래의 바닥-없음이, 떠받치는 근거의 공허가 넓게 보인다. 그 공허를 채우고 있는 낙하의 궤적들이 숲 속의 나무처럼 서 있다. 세상이란 저 공허를 채우며 숲을 만드는 낙하의 궤적들, 이탈의 선들인 것이다. 진정 원의 ‘살해’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직선이 아니라 이 이탈의 선들이 행한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