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나(b. 1987)는 영상과 설치를 기반으로, 타자화된 존재와 그에 얽힌 정치적 맥락, 그리고 심리적 분열성에 주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오늘날 양극화와 타자화 현상에서 기인한 불안정한 상태를 시각적으로 탐구하고 현실을 패러디한 형태의 실험적 서사로 풀어냄으로써 심리-정치적 풍경을 조사하고 전복한다.


《이상한 것들》 전시 전경(사일런트 그린, 2020) © 유하나

유하나의 작업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과 개념, 그리고 인간 중심의 분류 기준 등이 가진 인위성과 양면성에 주목하고, 그 경계가 전복되는 지점에 관심을 둔다.


유하나, 〈시체의 인류학〉, 2019, 단채널 HD 영상, 컬러, 스테레오, 10분 30초 © 유하나

이를테면, 2019년도 영상 작품인 〈시체의 인류학〉은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 소중한 것과 버려지는 것의 중간에 위치하는 ‘시체’라는 상징화된 개념을 사용하여 분류되어진 경계와 양극화된 카테고리 속의 수직화, 그 차별을 들여다 본다.
 
영상은 다소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레이션은 극도의 단순함과 순진함을 차용하고 무자비한 카테고리화를 자행하며, 역설적으로 그 사이의 관계들을 들춰낼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히스테릭 C》 전시 전경(디스쿠어스 베를린, 2020) © 유하나

한편, 2020년에 발표한 영상 작품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은 낙농장에서 젖소를 대상으로 맞춤형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제작해 가상의 푸른 초원 이미지를 보여주는 과학실험에 대한 러시아 농식품부의 뉴스 기사로 시작한다.
 
가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젖소의 불안을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우유 생산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그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유하나는 본 작업에서 그 실험 속 대상인 소와 과학자의 관계를 사변적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유하나,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 2020,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스테레오, 17분 17초. © 유하나

젖소는 정신상담가로 추정되는 메리(Mary)로부터 상담을 받고, 가상현실(VR) 처방을 받는다. 상담 세션이 진행됨에 따라 소는 계속해서 기억과 경험이 모호해지는 초현실을 넘나들고, 결국 스스로가 인간인지 동물인지, 환자인지 상담가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경계 지점에 놓인 소의 모습은 도리어 인간인 우리를 대입해보게 만든다. 기후 변화, 식량 체계, 전염병, 갈등, 이주, 기술 문제가 우리의 상호연결성을 강화함에 따라 인간 모두 점차 동일한 자연/문화 시스템에 종속되고 있다.


유하나,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 2020,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스테레오, 17분 17초. © 유하나

미술평론가이자 뉴욕대학교 교수인 마르타 슈벤데너는 이 작업에 대한 비평글에서 “기술을 인터페이스나 제어 장치로 사용하는 인간과 소 사이의 주체-객체 관계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식에도 반영된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불안을 잠재우고 우유 생산을 부추길 수 있도록 러시아 소에게 제시되었던 이미지는 대중 매체가 소비자로 하여금 점차 더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게 하여 그들을 노동자로 뒤바꾼다는 플루서의 '기술적 형상의 우주(Universe of Technical Images)' 개념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즉, 이러한 유하나의 작업은 오늘날 인간 중심주의에 따라 고안된 시스템이 단지 비인간에 대한 착취뿐 아니라 인간 내부로 향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챔버》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사진: 신병곤. © 유하나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열린 개인전 《챔버》(탈영역우정국, 2021)에서 유하나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생명과 생태계 경계에 균열이 발생하는 지점을 가시화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는 필연적으로 안과 밖이라는 양면성과 경계를 함의하는 단어인 ‘챔버(Chambers)’의 의미론적 확장성을 실험하며 전개되었다.


유하나, 〈낙하〉, 2021, 머신러닝으로 생성된 무빙 이미지, Unity, 무한 반복 재생. 《챔버》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사진: 신병곤. © 유하나

먼저, 영상 작품 〈낙하〉(2021)는 머신러닝 알고리즘 기술에 의해 학습된 3D 게임 쥐들이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조감한다. 작가는 132마리의 쥐를 66개의 방(챔버)에 각각 2마리씩 배치하고, 학습된 실험군 쥐로 하여금 쿠키를 발견해 다른 쥐에게 주도록 했다.
 
모든 쥐가 성공적으로 수행을 완수하는 것은 아니었다. 쿠키를 찾아 헤매다가 방 밖으로 이탈해 버리는 개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지정된 영역에서의 이탈은 단순한 실패가 아닌, 엄청난 높이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이어졌다.


유하나, 〈낙하〉(세부 이미지), 2021, 머신러닝으로 생성된 무빙 이미지, Unity, 무한 반복 재생. 《챔버》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사진: 신병곤. © 유하나

추락한 쥐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영역으로 소환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이렇게 가상의 실험동물이 계속해서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하는 상황은 전시장 한쪽 벽면에 영사되며 일종의 디지털 스펙터클처럼 펼쳐졌다.
 
여기서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검은 선들은 알고리즘 에이전트인 쥐들의 움직임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그들의 행동 패턴을 나타낸다.


유하나, 〈임의의반경의원〉, 2021, 3채널 비디오, HD, 컬러, 스테레오, 9분. © 유하나

인류와 오랜 시간 공생해온 동물 중 하나인 쥐는 〈낙하〉뿐 아니라 전시작 대부분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가령, 이상의 소설 『이상한 가역반응』(1931)에서 제목을 따온 〈임의의반경의원〉(2021)에는 한국 전래 ‘쥐 둔갑 설화’의 한 대목이 언급되며, 부주의하게 버려진 사람의 손톱과 발톱을 주워 먹고 그 주인으로 변신하는 쥐가 등장하며, 〈벌거벗은 생명〉(2021)에는 불결한 존재로 여겨지며 제거되는 도시 속 쥐의 모습과 동물실험에 흔히 사용되는 희고 검은 생쥐가 등장한다.


유하나, 〈벌거벗은 생명〉, 2021, 단편영화, HD, 컬러, 스테레오, 16분 28초. © 유하나

〈벌거벗은 생명〉에서 유하나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실험이 이루어지는 동안 쥐들의 얼굴에서 고통을 읽어낸다. 인간이 지각하지 못했던 쥐의 고통을 기계는 감지한다. 한편, 영상에는 이러한 쥐들의 이야기와 함께 얼굴을 가린 북향민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자유’에 대한 생각과 ‘안과 밖’의 상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한다.


유하나, 〈벌거벗은 생명〉, 2021, 단편영화, HD, 컬러, 스테레오, 16분 28초. © 유하나

그의 영상 속 쥐와 여성은 모두 ‘얼굴 없는 존재,’ 즉 장막 뒤에 가려진 타자들을 상징한다. 유하나는 가려진 이들의 사례를 다룸으로써 얼굴 없는 존재자들의 고통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아우르는 전시 《챔버》에서 유하나는 정치적 문제와 날로 심화하는 부의 양극화와 계층 간 갈등으로 인한 경계 짓기와 차별화하기가 더욱 심해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경계를 이탈하는 생명에 초점을 맞춘다.


유하나, 〈해부학 수업 챕터 2〉, 2023, 단채널비디오, HD, 컬러, B&W, 서라운드 5.1, 18분.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5). 사진: 조영하. © 유하나

나아가, 유하나는 〈해부학 수업 챕터 2〉(2023-2025)에서 서로 다른 맥락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불협화음과 폭력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영상은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개구리 해부 실험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서로 다른 문화권(한국, 미국, 영국)의 세 사람이 떠올리는 기억과 관점을 엮어낸다.
 
동시에, 작가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731부대의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한 자의적인 ‘이미지 해부’를 통해, 서로 다른 맥락, 크기, 그리고 다른 종에서 발생하는 폭력 또는 폭력이라고 말해지지 않은 행동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엘보룸》 전시 전경(아쿠드갤러리, 2022) © 유하나

이러한 유하나의 실험적인 영상 작업들은 가려져 있는 타자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경계로 이루어진 현시대를 그 틈에서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아가, 그 경계에서 이탈해 나가는 존재들의 궤적을 따라가 보게 함으로써, 결국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질문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진짜로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우리 자신임을, 그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유하나, 작가 노트)


유하나 작가 © Goldrausch Künstlerinnenprojekt

유하나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으며 현재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AdK), 베를린 예술가 프로그램(BPA) 펠로우쉽에 참가 중이다. 개인전으로는 《엘보룸》(아쿠드갤러리, 베를린, 2022), 《챔버》(탈영역우정국, 서울, 2021), 《히스테릭 C》(디스쿠어스 베를린,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A Place Never Fully Held》(쿤스트베어케(KW), 베를린, 2025),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성곡미술관, 서울, 2025), 제38회 트렌스미디알레 《(near) near but – far》(세계문화의집, 베를린, 2025), 《엘시와 마샬》(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4), 《비커밍 머신》(Artsect DAO 갤러리, 런던,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유하나는 2022년 베를린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독일연방 현대미술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