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린(b. 1989)은 설치, 영상, 텍스트, 사진 등을 넘나들며 개념적인 접근의 다매체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공동의 조건을 겹쳐내어 사건으로 직조하고, 이것이 페미니스트 주체성 모델로 반응할 때 증폭되는 상상력의 잠재력을 탐구한다.


《너를 떠나》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 윤소린

예를 들어, 2021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개인전 《너를 떠나》에서 윤소린은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남성을 사랑할 때 마주했던 긴장과 갈등, 그에 따른 자기 분열의 과정에서 발생한 심리적 진동을 동력으로 전환시켜 ‘더 나은 로맨스는 무엇’인지 찾아 나가려” 했다.
 
윤소린은 자신의 사적인 연애 경험과 그에 따른 내적 갈등을 예술 작품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공유하며 여성의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 안에 얽힌 관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하였다.


윤소린,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 2021, 4K, 3채널 비디오, 8분 35초/3분 30초/3분 © 윤소린

먼저, 3채널 영상으로 구성된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2021)에서 작가는 그동안 이성에게 받아 놓고 버리지 못해 오랜 시간 가지고 있었던 꽃다발들을 분해하며 변환의 가능한 형식을 타진한다. 한 화면 속 인물은 마른 꽃 묶음을 해체하여 꽃과 잎, 줄기를 분류하고, 나머지 두 개의 화면에서는 각각 그 잔해를 물에 담아 가열한 후 잉크로 추출함으로써 일련의 변환 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윤소린, 〈재정의〉, 2021, 꽃에서 추출한 잉크, 스타킹, 가변설치 © 윤소린

한편, 설치 작품 〈재정의〉(2021)에서는 이전과 동일한 대상이지만 돌이킬 수 없이 변형된 오브제들이 사랑을 재정의한 여성들의 발화를 지탱하며 그들의 상황을 암시한다. 이 작업에 포함된 슬로건에는 “나의 낭만적인 사랑은 누구도 규정할 수 없고, 그 사랑의 상실을 애도하며 나는 다시 일어난다”, “낭만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의 좌절은 여성을 사랑하는 존재로 굳게 서게 한다” 등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윤소린, 〈재정의〉, 2021, 꽃에서 추출한 잉크, 스타킹, 가변설치 © 윤소린

이 문장들은 제니 홀저의 작업에서 발췌한 “낭만적인 사랑은 여성을 조종하기 위해 발명되었다(Romantic love was invented to manipulate woman)”는 문장을 한국 여성의 관점으로 수정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이를 마른 꽃에서 추출한 잉크를 사용해 피부를 연상시키는 오브제인 스타킹에 옮겨 적음으로써 사랑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안소연 비평가는 전시 리뷰에서 이러한 그의 슬로건 작업에 대해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서 벗어나 “상실”과 “좌절”을 동반한 사랑의 급진성을 재정의한다”고 설명한다.


윤소린, 〈노출〉, 2021, 목소리/글, 빌린 사진, 가변크기 © 윤소린

사진과 텍스트 혹은 말로 구성된 작업 〈노출〉(2021)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이성애에 대한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작업에서 텍스트는 참여자의 목소리 혹은 글의 형식을 띈다. 작가가 참여자를 만나 사랑에 대해 대화한 자리는 참여자의 물건과 함께 사진으로 기록되어 서로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일시적 장소로 제시된다.
 
참여자의 경험과 자취는 ‘노출시킬 수 있는 만큼’ 전시장에 드러나며, 그 양은 연대와 공감과 수용을 가늠하는 개인적인 척도가 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사회적으로 승인된 사랑의 경계는 어디인지, 달라진 사랑의 의미를 언제 발견했는지, 그리고 지금보다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내밀한 토론이 대화한 자리에서 전시의 장소로 이어진다.


윤소린, 〈세이프 서치〉, 2021, HD, 단채널 비디오, 4분 25초 © 윤소린

한편, 영상 작업 〈세이프 서치〉(2021)는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운전을 사례로 젠더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적이고 심리적인 불안을 표시하고, 〈식별 불가 퍼포먼스〉(2021)는 그 불안의 경계를 돌파하기 위한 관점을 모색한다.
 
이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주체성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지, 지금보다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한다. 윤소린은 이러한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시장에서 감지되는 동력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감각으로 경험되기를 바라며,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윤소린, 〈오픈스튜디오: 반상회〉, 2023, 벽에 드로잉, 사진, 소책자, 가변설치.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한편, 2023년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리빙 위드 더 트러블》에서 윤소린은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감지한 층간소음이라는 ‘해결 불가능하지만 떠날 수 없는’ 트러블에 접근한다.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집단의 문제임에도 사적인 경험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지난한 팬데믹 기간 동안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강화시켰다. 더욱이 마주할 수 없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한 섣부른 예단과 혐오 감정은 상황에 극도로 과민해지거나 철저히 무감각해지게도 했다.


윤소린, 〈반응 일지〉, 2021-2023, 단채널 비디오, 모니터, 바닥에 출력물, 라인 드로잉, 가변설치.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이처럼 해결 불가능하지만 떠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무력감에서 출발하지만, 윤소린은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에 행위성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현실적인 상황에 포획당하지 않고 트러블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안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영상 설치 작업 〈반응 일지〉(2021-2023)에서 작가는 층간소음이 발생할 때마다 집 천장을 향해 날짜가 표시되는 도장을 찍으며,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속도와 힘, 방향 등으로 기록했다. TV 모니터는 소음이 감지되던 그 날, 그 시간, 그 반응을 재생하고, 집 천장은 전시장 바닥으로 전환되어 갈등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지연시키려던 노력이 가진 의미를 돌이켜본다.


윤소린, 〈인터-폰〉, 2023, 전시장 2층/3층에 각각 1개, 2층 인터폰 클립 9개/3층 인터폰 클립 11개.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그리고 인터폰으로 재생되었던 사운드 설치 작업 〈인터-폰〉(2023)은 층간소음 때문에 벽 너머에 사는 존재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상상해오던 이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2층 인터폰에서는 그의 아랫집 이웃의 인터뷰를, 3층 인터폰에서는 층간소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공동주택에서 일방적인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곤 하는 인터폰을 전용하여, 소음에 반응하는 이들의 감각을 능력으로 실연한다.


윤소린, 〈소리, 소음, 아니면〉, 2023, 벽 속에 AUX 젠더, 모니터, 플라베니아 판넬, 사운드 1 1’37”, 사운드2 2’58”, 사운드 3, 1’58”, 가변설치.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또 다른 사운드 설치 작업 〈소리, 소음, 아니면〉(2023)에서 윤소린은 소음이 전달되는 벽 속의 보이지 않는 구축물을 감지하여 그래픽스코어로 그린 다음, 다시 사운드로 변환하여 대항 소음으로 재구성하였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윤지영 작가와 협업하며, 소음이 발생하는 지형을 그려내고 다시 소리로 해석하는 과정을 ‘소리’와 ‘소음’에 대한 스터디로 접근했다. 그리고 전시에서 관객은 벽 속에 이어폰을 꽂아 이 둘의 시도에 도킹하게 된다.


윤소린, 〈어디를 보고 있는지〉, 2025, UHD, 단채널 비디오, 8분. 《돌봄 유지 보수》 전시 전경(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2025) © 윤소린

한편, 최근의 작업에서 윤소린은 동시대 아시아 여성의 시선으로 ‘돌봄’에 대해 사유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가령, 2025년에 열린 개인전 《돌봄 유지 보수》를 통해 작가는 불가피한 심리적·신체적 노동이자 생존의 문제인 ‘돌봄’을 개인의 안녕을 살피는 현대적 돌봄의 두 양상 ‘탈-친족관계’와 ‘탈-인간관계’라는 조건에서 재해석하였다.
 
특히, 의존과 거리의 역설적 관계― 의존이 주는 정서적 안녕과 동시에 남겨지는 신체적·감정적 자국 ― 을 통해 '어디까지 의존할 수 있고, 무엇까진 대체 불가능한지' 질문한다.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관습적이지 않은 돌봄 관계가 형성되는 삶의 순간과 그 안에서 유지되는 ‘거리’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갖기’는 거리 두기를 통한 단절이나 배제가 아닌, 혹은 단순히 기술적 대체 가능성이나 차가운 분석도 아닌, 상대와 맺고 있는 관계의 진심과 그 ‘거리’의 의미를 관찰하는 것이다.


윤소린, 〈자국 기계〉, 2025, 개조된 손 마사지기, 텍스트. 《돌봄 유지 보수》 전시 전경(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2025) © 윤소린

예를 들어, 손 마사지기를 개조해 제작한 〈자국 기계〉(2025)는 돌봄 관계에서 발생하는 양가적인 작용을 신체의 필연적인 구조이자 상호 전환 가능한 맥락으로 탐구한다. 관객은 안마기에 손을 넣어 마사지를 받고 나면 피부에 텍스트가 자국으로 남게 된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피부에 남겨지는 텍스트는 동시에 확인할 수 없는 상태 ― 손바닥과 손등, 안과 밖 ―을 관계적인 양상으로 지시한다. 작가는 신체에 남겨지는 자국을 통해 상호 의존의 관계에 대한 재설정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윤소린, 〈돌봄제공자〉, 2025, UHD 3채널 비디오, 사진, 텍스트, 공간 설치, 22분. 《돌봄 유지 보수》 전시 전경(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2025) © 윤소린

한편, 영상 작업 〈돌봄제공자〉(2025)에서는 심리치료용 AI 반려 로봇과 인간 사이의 상호적인 의존 관계를 들여다 보고, 돌봄의 미래에 대해 질문한다. 3개의 화면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일본 AIST연구소가 개발한 AI 로봇 파로(PARO)를 중심으로 한다.
 
이 로봇은 물개를 닮은 외관에 접촉, 소리, 빛에 반응할 수 있는 센서를 탑재하고 있으며, 아기와 유사한 2.9kg이라는 무게와 체온을 갖고 있다. 이는 심리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들의 정서적 안녕을 지원하기 위해 반려동물과 같은 상호작용을 제공하면서도 생명체의 관리 부담을 덜어준다.


윤소린, 〈돌봄제공자〉, 2025, UHD 3채널 비디오, 사진, 텍스트, 공간 설치, 22분. © 윤소린

윤소린은 이 로봇이 ‘스스로 돌봄의 대상이 되면서 상대를 향한 돌봄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돌봄을 둘러싼 대인관계적인 전환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낀 그는, 로봇 파로와 시간을 보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AI 로봇의 심리치료 임상결과를 연구하는 호리상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돌봄 관계에 로봇 파로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증언하고, 파로와 8년간 생활한 네오상은 이별이 없는 애정 관계를 상상한다. 이러한 작업은 의존의 한계와 의존의 도구, 그리고 그러한 도구에 의존하는 관계를 매개하는 로봇 파로를 통해 돌봄의 미래를 둘러싼 질문을 살펴본다.


윤소린, 〈테이크〉, 2025, 영상설치, 구조물, 수정된 스크립트, 트랜스듀서, 공간설치. 《돌봄 유지 보수》 전시 전경(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2025) © 윤소린

이와 같은 윤소린의 작업은 내밀한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을 공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감각적 경험으로써 전하고, 동시대의 유의미한 논의들을 공유하여 다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그의 작업은 탈-위계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등의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며, 오늘날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의 양상들을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사유하게 하고, 타인과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대안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균열로 뒤덮혀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박혀있는 ‘고고학적 잔재’를 지나 비로소 ‘다른 국면의 실루엣’을 상상할 수 있을까. 대안적 시선의 자리는 어떻게 해야 손에 닿아 더듬어질 수 있을까." (윤소린, 작가 노트)


윤소린 작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윤소린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와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 석사 학위를 한 후, 미국 스코히건 회화 조각 학교에서 수학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돌봄 유지 보수》(요즘미술 + 요즘미술일층, 서울, 2025), 《리빙 위드 더 트러블》(온수공간, 서울, 2023), 《손, 손, 손》(홈세션, 바르셀로나, 스페인, 2023), 《너를 떠나》(탈영역우정국,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6), 《부드럽게 걸어요, 그대 내 꿈 위를 걷고 있기에》(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5), 《Shared Territories: Resonances, Layers and Echoes》(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4), 《Art New Emerging Art Festival》(바르셀로나, 스페인, 2023), 제21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아시아/뉴 대안영화전 : 지금-여기》(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 및 영화제에 참여했다.
 
윤소린은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레지던시(수원, 2026), 프로젝토 에이스피랄 (Proyecto'ace) 레지던시(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24),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VSC) 레지던시(버몬트, 미국, 2024) 등에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