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b. 1989)는 사진 매체를 바탕으로 동시대 기계 장치가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네트워크와 서버, 스크린을 경유하는 전자적 경험과 육안을 통한 직접적 경험 사이의 간극에 집중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Out of Photography》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1) © 정영호

정영호의 첫 번째 개인전 《Out of Photography》(송은아트큐브, 2021)는 기술의 발전이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시대의 이념마저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의문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정영호는 총 세 개의 카테고리를 뒤섞어 전시를 구성하였다. 먼저 불분명한 형체로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업 ‘Lightless Photography’(2019-2020) 시리즈는 빛이 없는 상태로 촬영된 결과물들이었다.


《Out of Photography》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1) © 정영호

빛을 통과시키지 않고 셔터를 누르면 피사체가 없어도 노이즈가 홀로 증폭되며 형태 없는 형상을 만들어 낸다. 이 중 무작위로 선정하여 확대시킨 결과물은 색감 하나로 조용히 강렬한 환경을 조성한다. 빛의 노출 없이도 예술의 형태가 구현되는 작업은 기술의 한계를 되짚어보는 실험이자 매체의 확장성을 드러내는 시도로 읽힌다.


《Out of Photography》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1) © 정영호

한편, 또 다른 연작인 ‘Unphotographable Cases’(2020-2021)는 2020년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범인 디지털 성범죄를 배경으로 한다. 이는 우리 눈앞에 일어나지 않아 간접적으로 체감한 사건으로, 관련 기사 이미지들마저 모두 그래픽 이미지로만 사용되면서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정영호는 이처럼 기술과 관련된 사건이 사진 매체로 담을 수 없이 진화하고 증가하며 우리의 생각, 믿음, 그리고 법에도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는 점을 대형 프린트로 풀어냈다.


정영호, 〈Number N〉, 202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4x130cm © 정영호

먼저, 그는 구글 트렌드에서 화제성이 높았던 사건, 그리고 현대 기술 기반으로 발생한 사건의 키워드와 기간을 입력해 검색 빈도와 강도를 나타내는 엑셀 파일을 저장했다. 이후 해당 데이터로 3D 모델링 과정을 거쳐 작가의 손길까지 더해지면 초기 모습에서 보이지 않던 정교하고 불규칙한 구조의 오브제가 탄생한다.
 
각기 다른 스토리와 데이터를 품고 있는 모형들을 촬영하고, 그에 맞춰 따로 찍어낸 배경 위에 올려두면 비로소 ‘Unphotographable Cases’ 연작이 완성된다. 이로써 데이터화 되어가는 사건들은 실재와 허상이 공존하는 동시대 속에서 혼란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Out of Photography》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1) © 정영호

마지막으로, ‘Face Shopping’(2020) 연작에서는 DMZ 근무 시절, 관측 장비의 조이스틱을 돌리며 소형 모니터를 통해 북한군의 삶의 모습을 처음 접하고 느낀 작가의 복합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있다.
 
당시 그가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란 전자 장치로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지만, 단지 그 뿐인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원거리에서 스크린을 통한 관찰은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혹은 감정적 단서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묘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작가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초상 모음집 웹사이트에서 사진을 가져와 다양한 크기로 전시장 곳곳에 걸어 두었다. 오직 그래픽 이미지로만 온라인에서 살아가는 ‘이것’들은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알 수 없는 따뜻한 아우라를 지닌다.


《Double Retina》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3) © 정영호

그리고 2023년 금호영아티스트 일환으로 개최한 개인전 《Double Retina》에서 정영호는 급변하는 기술 발전 시대의 현대인의 감각과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 연작 ‘Double Retina’(2023-)를 발표했다.


《Double Retina》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3) © 정영호

작가는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에 따라 논의와 소통의 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현실의 물질이 비물질 데이터로 간소화되고 유통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에 그는 스크린을 매개로 대상을 접하고 세상을 감각하는 현시대에 화면 아래 존재하는 비가시적이고 이질적인 영역을 사진 작업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전시 《Double Retina》에서는 기술로 경유한 세계와 육안의 세계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세상을 감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균형과 관계를 보여주었다.


《Double Retina》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3) © 정영호

그 중심에 있는 2채널 사진 작업 ‘Double Retina’ 시리즈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사진과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만든 이미지를 카메라로 재촬영한 결과물과 함께 작가의 일상을 아날로그 필름으로 담은 흑백 사진을 나란히 제시한다.
 
여기서 작가는 직접 몸으로 경험하며 체득한 촉각적인 감각을 우그러진 흑백 사진을 통해 제시하는 한편, 디지털 컬러 사진은 픽셀을 더욱 선명하게 강조하고 그 위에 흑백 사진을 덧붙이기도 함으로써 두 세계의 서로 다른 이미지 인식 과정에 물성을 부여했다.


정영호, 〈The Unknown No.9〉, 2024,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4x108cm, Edition 3 + 2AP © N/A

이와 함께 정영호는 생성형 AI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마치 뉴스에 보도될 법한 상황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오늘날, 실제 상황과 가상으로 만들어낸 상황을 구분하기 어려운 인지적 혼란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Double Retina’ 연작의 일부이자 연장인 두 작업 〈The Unknown No.9〉(2024)과 〈The Unknown No.10〉(2024)은 실제 세계에서의 미디어나 뉴스 속 실제사진과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로 이루어지며, 이를 스크린이나 모니터에 흑백 이미지로 띄우고 재촬영한 결과물이다.


정영호, 〈The Unknown No.10〉, 2024,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4x108cm, Edition 3 + 2AP © N/A

이처럼 작가는 사람의 눈으로 먼저 목격된 상황을 담은 보도 사진과 AI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를 촬영한 작업들을 뒤섞으며, 점점 ‘진짜 이미지’와 ‘가짜 이미지’를 구별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이 두 작업은 보는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마치 흑백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각적 환시와 함께 수 많은 RGB값을 표현한 픽셀의 합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은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정보와 뉴스들이 범람하는 오늘날 우리의 정보 인식과 해석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Dew Point》 전시 전경(N/A, 2025) © 정영호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열린 개인전 《Dew Point》(N/A, 2025)는 지각의 근원적 불확실성, 현실과 디지털 가상 세계 간의 경험 격차를 조명한다. 전시 제목인 ‘이슬점(dew point)’은 공기 중 수증기가 응결되어 물방울로 변하는 온도의 경계 상태를 의미한다.
 
정영호는 이 개념을 빌려 자신이 물리적으로 경험한 세계를 ‘내부’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접한 타인의 세계를 ‘외부’로 설정하며, 이 두 세계 사이의 ‘온도 차’를 시각적으로 탐색하고자 하였다.


정영호, 〈Feels right〉, 202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2x42cm, Edition of 2 + 2AP, 《Dew Point》 전시 전경(N/A, 2025) © 정영호

작가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TV, 스마트폰, 컴퓨터 모니터 등의 스크린을 현실과 가상을 가르는 경계이자 개인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감각적 통로로 간주한다. 그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RGB 픽셀은 스마트폰 스크린을 접사 촬영한 결과로, 화면 너머의 대상과 디지털 표면의 경계를 시각화한다.
 
픽셀의 존재감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흐려져 갔다. 그 결과, 스크린을 매개로 마주하는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졌고,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모니터 표면 아래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Dew Point》 전시 전경(N/A, 2025) © 정영호

고해상도의 선명한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도 선명하게 자리잡아 실제 내가 경험한 일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중첩된 이 시대에 경험의 진위를 구분하는 일은 점점 더 복잡하고 모호해지고 있는 흐름 속에서, 작가는 촬영한 사진과 가상세계 속 부유하는 이미지의 근원을 주목한다.
 
사진은 물리적 현실, 즉 ‘내부’에서 출발했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수집한 이미지는 ‘외부’에 기반한 데이터다. 그는 이 두 매체의 차이를 구분하려 하기보다는 각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에 집중한다.


《Dew Point》 전시 전경(N/A, 2025) © 정영호

고해상도의 선명한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도 선명하게 자리잡아 실제 내가 경험한 일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중첩된 이 시대에 경험의 진위를 구분하는 일은 점점 더 복잡하고 모호해지고 있는 흐름 속에서, 작가는 촬영한 사진과 가상세계 속 부유하는 이미지의 근원을 주목한다.
 
사진은 물리적 현실, 즉 ‘내부’에서 출발했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수집한 이미지는 ‘외부’에 기반한 데이터다. 그는 이 두 매체의 차이를 구분하려 하기보다는 각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에 집중한다.


정영호, 〈Because if you don't, I'll just have to kill you〉, 202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x350cm © N/A

이렇듯 정영호는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기술이 우리의 인식과 감각 경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하며, 이러한 현상을 다양한 실험적인 사진 작업을 통해 시각화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우리의 경험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점차 이동해 가며 스크린을 통한 간접 경험이 ‘눈’을 대체하는 오늘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믿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동시대 접촉은 무거운 신체 대신 풍경을 전송한다. 전송되는 상들은 가소적이고 매끈하지만 필름 입자들은 원본이 존재하고, 무게가 있고, 복제될 수 없고, 전송될 수 없는 형태의 물질 덩어리이다. (…)
 
사진은 그래픽을 닮아가고, 그래픽은 사진을 닮아간다. 고향이 다른 두 매체는 이미지라는 단어로 뭉툭하게 통칭된다. 무게를 지닌 필름이 담아내기 적당한 것은 업로드되지 않아도 될 장면들이다. 소요되지 않고, 전송되지 않으며, 장치를 경유할 당위가 없는, 온전히 사사롭고 비가시적인 순간들." (정영호, 작가 노트)


정영호 작가 © 우손갤러리

정영호는 중앙대학교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사진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Dew Point》(N/A, 서울, 2025), 《Double Retina》(금호미술관, 서울, 2023), 《Converted and Interpolated》(상업화랑 을지로, 서울, 2022), 《Out of Photography》(송은아트큐브, 서울, 2021)이 있다.
 
또한 작가는 《PHOTOGRAPHICNESS: PHOTO / THE PHOTOGRAPHIC》(라니서울, 서울, 2025), 《합성열병》(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5), 《Whispering Nosie》(N/A, 서울, 2024), 《Landscapes》(우손갤러리, 대구,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 전시 《SPACELESS + 60 Swiss Books》(광주, 2023), 《Summer Love 2022》(송은, 서울, 2022), 《Inter-face》(페리지갤러리,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영호는 제20회 금호영아티스트(2022), 상업화랑 Ex-UP(2021),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2020)에 선정되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은 송은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